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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액션뉴스] 매일 10시간 황토 뿌리는 ‘바다 위 소방수’들 “시꺼먼 거 보이지예, 적조가 시뻘건 게 아입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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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조와 전쟁’ 거제 해역 가보니

바지선에 4~5m 높이로 황토 쌓고

포클레인으로 바닷물 길어 씻어내

태풍 비켜가 9월 말 돼야 끝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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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조(赤潮)주의보가 내린 지난 20일 오후 3시 20분, 경남 거제시 동부면 율포리 가배(율포)항. 5t급 어선 209호(거제시청지도선)에 몸을 싣고 5분쯤 지나자 어선 꽁무니로 검붉은 포말이 일기 시작했다. 가배 해역의 쪽빛 바다는 어느새 검은 콜라색으로 물들었다. 지난달부터 남해안을 강타한 적조 때문이다. 적조는 바닷속 플랑크톤이 과다증식을 하면서 생긴다. 높은 수온과 인과 질소 등으로 바닷물에 유기양분이 많아지는 게 원인이다. 파도에 휘청이는 209호를 간신히 붙잡고 선 거제수협 김양호(41) 대리가 말했다.

“저 시꺼먼거 보이지예. 적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적조라고 사람들이 다 시뻘건줄 아는데 그게 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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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이잉-. 쏴아-.

209호와 10여m쯤 떨어진 해상엔 포크레인 한 대가 바지선에 올라 쉴새 없이 바닷물을 퍼올렸다. 바지선에 4~5m 높이로 쌓인 붉은 황토를 바다로 밀어내 적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황토는 바닷물 속의 영양물질과 미세 플랑크톤을 흡착ㆍ응집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적조 생물을 바다밑으로 가라앉게 하고 적조띠를 해체하는 효과가 있다. 황토는 싸고 구하기 쉬운 데다 생태계 영향을 덜 주는 등 장점이 많아 미국에서도 차용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황토가 나지 않는 일본에서는 대신 흔히 구할 수 있는 점토(고령토)를 쓴다. 국내에서는 황토가 현재로선 적조 확산 방지에 가장 효과적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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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는 적조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 지자체에서 미리 확보해 놓는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성분 분석을 마친 뒤 야적장에 비치해 놓으면 바지선이 2~3일에 한 번 꼴로 오가며 황토를 실어온다. 거제시는 올해 비축량 3만t 가량의 황토 중 4000여t의 황토를 사용했다. 우리나라 바다에서 주로 발생하는 적조 생물은 ‘코클로디니움’이라는 플랑크톤인데 이것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게 황토다. 국립수산과학원 윤석현 박사는 “국내에서 적조피해가 처음 발생 된 게 1995년이고, 황토를 살포하기 시작한 건 96년부터”라며 “황토는 싸고, 구하기 쉽고, 생태계에 덜 영향을 주는 등 장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보완할 부분도 있다. 일본에서는 방제에 사용하는 점토를 이미 표준화해 개별 포장한 뒤 사용하고 있다. 윤 박사는 “포장해놓으면 비바람에 쓸려가는 것도 없고 품질 변화도 없어 장점이 많다”면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황토를 보조할 방제물질 개발이 진행 중이고 내년 쯤에는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2일 거제 인근 해역에서는 붉은 황토가 쏟아져 내리는 바지선 뒤로 2~5t 규모 어선 8척이 계속해서 맴돌며 바닷물을 휘저어 놓고 있었다.

“황토랑 바닷물이 잘 섞이게 어선들이 ‘물갈이’하는 거에요. 요즘엔 배 한척이 하루 40마일(약 64㎞)씩 물갈이를 합니다.” 10년이상 적조 방제 작업을 했다는 거제시청 어업지도과 박장원(41) 주무관이 말했다.

“40마일이면 거제-통영을 왕복 두 번 합니다. 대마도까지 좀 못 미치는 거리죠.” 209호를 모는 거제시청 어업진흥과 조준희(34)선장의 설명이다. 이날 가배해역 뿐 아니라 거제시 둔덕면 앞바다에서부터 남부면 저구리 앞 바다까지 바지선 1대와 어선 7~8척으로 구성된 선단이 6~7군데로 나눠 적조 방제 작업을 했다. 적조 기간 남해 바다에서는 매일 오전 8~9시부터 오후 5~6시까지 이같은 적조 방제 작업이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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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적조가 꽃이 피고지는 것처럼 일종의 ‘자연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적조는 대개 오염이 심한 연안보다는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생성돼 연안으로 밀려온다. 국립수산과학원 윤석현 박사는 “적조는 한 번 지나가고 나면 오히려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가두리 양식장이 거의 없어 어류 폐사 피해가 없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적조 방제 개념도 없다”며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 양식장이 워낙 넓게 분포하고 빽빽하게 들어차 피해가 심각해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동해에서는 적조가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윤석현 박사는 “동해에선 코클로니디움이 자생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남해에서 생겨서 그냥 떠내려가는 것”이라며 "해류가 지그재그로 가다보니 동해에서는 ‘구룡포’와 ‘죽변항’ 지점에서 주로 피해를 입는다”고 말했다.

“거기는 상황이 어떻습니까? 여기는 좀 낫네예.”

김 대리가 휴대전화로 다른 어선과 통화를 했다. 김 대리와 조 선장, 박 주무관이 탄 209호는 일종의 예찰선이다. 방제작업을 하는 어선들 주위를 맴돌며 관리한다. 예찰선은 적조가 수온이나 햇빛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인근 해역을 돌며 적조가 많은 지역으로 선단을 옮기는 일을 한다. 이 때문에 다른 어선들이나 바지선과의 공조가 필수다.

김 대리는 어민ㆍ시청ㆍ수협 관계자 등 18명과 '카톡방'도 만들었다. 어선의 엔진소리 때문에 통화가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방에선 적조 상황과 어선 출항 상황 등을 공유한다. "가배 상황이 어떻습니까’"라고 누군가 물으면 바다 사진 등을 찍어보내는 식이다.

이런 공조는 적조가 본격적으로 생기는 7월 말부터 없어질 때 까지 최대 두 달간 지속된다. 간혹 강한 태풍이 휩쓸고 가면 적조가 완화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지난 25일 제15호 태풍 ‘고니’가 남동해안으로 북상하면서 강풍과 함께 많은 비를 뿌려 적조생물 분산에 다소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큰 효과가 없었다. 국립수산과학원 윤석현 박사는 “남해안 적조는 적조생물이 사멸하는 9월 말이 돼야 끝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적조와의 해전(海戰)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거제 취재·액션캠 촬영=채승기ㆍ한영익 기자 che@joongang.co.kr

[영상편집 정혁준 기자]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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