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건프라는 장난감이 아니야, 예술이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건프라의 세계

건담에 향수 지닌 30~40대 남성뿐 아니라 젊은층·여성·어린이로까지 번지는 건프라의 세계


이곳은 건담의 천국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이등신의 귀여운 건담부터 사람보다 큰 건담까지 사람들을 맞이한다. 20~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건프라 엑스포 2015’를 개막 첫날 찾았다. 건프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모빌슈트를 플라스틱 모형(프라모델)으로 만든 것을 뜻한다. 등장인물들이 사람처럼 생긴 기동병기를 타고 전투하는 게 기본 줄거리다.

박찬근(34)씨는 엑스포 한정판 건프라 모델 7가지를 2개씩 모두 14개 샀다. 하나는 조립하고 나머지 하나는 박스째 보관하기 위해서다. 집에 있는 건프라만 300개가 넘는다. 그가 건프라에 빠져든 건 2008년부터. “요리사·바리스타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다 보니 평일에 쉬어요. 친구들과 쉬는 날이 안 맞아 혼자 즐길 거리를 찾다가 이 세계를 알게 됐죠. 건프라를 만들고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게 정말 재밌어요.”

김나영(24)씨는 여성 건프라 마니아다. 중학생이던 2006년 건프라를 만들기 시작해 9년째 즐기고 있다. 집에 만들어놓은 게 10개 있고, 박스째 보관중인 것도 10여개 있다. “솔직히 조립할 땐 좀 힘들어요. 그래도 완성하고 나면 짜릿한 성취감을 느껴요. 색칠작업까지 하면 나만의 건프라가 생기는 거거든요. 그 기분은 말도 못해요.”

젊은층·여성·어린이도 건프라 사랑

건프라에 빠지는 이들이 늘고 있다. 건담에 향수를 지닌 30~40대 남성뿐 아니라 최근 몇년 새 젊은층, 여성, 어린이로까지 번지고 있다.

건프라 엑스포는 올해 6회째를 맞았다. 2010년 처음 열린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일본 반다이가 만든 건프라를 한국에서 유통·판매하는 반다이남코코리아의 김기범 과장은 “10년 전 1곳이었던 건프라 매장이 지금은 8곳으로, 매출도 3배로 증가했다. 전에는 30~40대 남성이 시장을 주도했는데, 요즘에는 20~30대 젊은층, 여성, 초중고생 고객도 부쩍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건프라 엑스포에는 초등학생들도 많았다. 김 과장은 “아이들이 건프라를 만들어 배틀을 벌인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건담 빌드 파이터즈> 시리즈가 최근 케이블 채널 등을 통해 방송되면서 건프라를 찾는 아이들이 급격히 늘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의 취미가 자녀에게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 21일 서울 홍대 앞 건프라 전문 매장 ‘건담베이스 홍대점’에서 만난 김재민(12)군이 그렇다. 건프라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선물용 건프라를 미리 만들어 놓았다. 유아기부터 건프라와 함께한 김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와 건프라를 조립하기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혼자 엠지(MG·숙련자급) 뉴건담을 완성했다. “하루 3시간씩 열흘 걸렸어요. 혼자 해내고 나니 날아갈 듯이 기뻤어요.”

‘기동전사 건담’ 애니메이션 속
기동병기들이 현실로 나왔다
정밀한 부품 짜맞추는 쾌감 ‘짜릿’
색칠까지 하면 나만의 작품 탄생
상급 모델 향한 도전정신 ‘불끈’


정교한 구조·조립하는 재미에 반해

건프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온라인 동호회로 모인다. 네이버 카페 ‘모두의 건프라’와 다음 카페 ‘민봉기의 건프라 월드’는 회원수가 5만명이 넘는다. 모두의 건프라 운영자인 윤성재(32)씨는 “최근 들어 하루 10명 넘게 가입 신청을 할 정도로 신규회원이 급격히 늘고 있다. 요즘 키덜트 문화가 퍼지면서 경제력 있는 30대들이 건프라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자가 많지만, 여자 회원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선망하는 연예인이나 남자친구가 건프라를 좋아하면 같이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사람들은 왜 건프라에 빠져들까? 우선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들 수 있다. 1979년 일본에서 처음 방송된 <기동전사 건담>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이듬해 첫 건프라가 선을 보였다. 국내에서도 애니메이션을 접한 이들이 건프라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 애니메이션에 별 관심 없어도 건프라에 빠지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윤성재씨도 그렇다. 그는 건프라의 정교한 구조와 온갖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구동성에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다리를 움직이면 안에 있는 실린더가 움직이는 식이죠. 이런 정밀한 모형을 내 손으로 직접 조립한다는 게 건프라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건프라에는 접착제가 필요없어요. 부품들이 정교하게 딱딱 들어맞는 순간 짜릿한 쾌감이 밀려오죠.”

이런 이유로 건프라의 인기는 세계적이다. 반다이가 주최한 지난해 ‘건프라 빌더스 월드컵’ 수상자 국적을 보면, 일본, 한국은 물론 미국, 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타이, 말레이시아 등 다양하다. 조립의 쾌감을 느끼는 데는 단계별 난이도 차이도 한몫한다. 건프라는 크기와 난이도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이등신의 귀여운 건프라 에스디(SD), 만들기 쉬우며 종류가 다양한 1:144 크기의 에이치지(HG), 에이치지와 크기는 같지만 좀더 정교한 아르지(RG), 1:100 크기로 세부 부위까지 정밀하게 표현한 엠지, 1:60 크기로 최고 난도를 자랑하는 피지(PG) 등이 있다. 초보자에겐 에스디와 에이치지가 무난하고, 아르지, 엠지, 피지로 갈수록 만들기가 더 어렵다. 건프라에 입문하면 다음 등급을 향한 도전정신이 불타오르게 된다. 가격은 1만원대부터 30만원대까지 천양지차인데, 피지를 제외하면 보통 7만원 아래다.

색칠작업 거치면 예술작품으로 승화

색칠작업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면 건프라는 예술의 경지로 승화된다. 건프라는 기본적으로 배색된 상태로 나온다. 여기에다 접합부 음영을 표현하기 위해 먹선을 그리고, 색깔을 칠하거나 전투로 더러워진 효과를 넣으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건프라가 탄생한다. 디자인·광고기획 일을 하며 홍대 앞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대영 대표는 이런 작업을 하는 이들을 ‘건담 아티스트’라 부른다. 색칠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갖춘 그의 작업실에는 건프라를 색칠하려는 이들로 늘 붐빈다. 김 대표는 기꺼이 공간을 내준다.

김 대표는 인터파크투어와 손잡고 ‘건담 투어’ 여행상품도 개발했다. 지난해 11월, 올해 4월 두차례 다녀온 이후 지난 20~23일 3차 투어를 다녀왔다. 일본 도쿄 오다이바의 실물 크기 건담, 아키하바라의 건담 카페는 물론 건프라 탄생 35주년 기념 전시회 ‘아트 오브 건담’에도 다녀왔다. “건프라를 엄연한 하나의 작품으로 대하며 애호가들끼리 여행도 다니고 하는 건담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오는 12월 그는 4차 투어에 나설 예정이다.

건담 카페가 일본에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에도 홍대 앞 ‘유니프라’, 경기 성남시 ‘코드지’ 등이 있다. 지난 3월 유니프라 문을 연 안건웅 대표는 취미를 사업으로 연장한 경우다. 2012년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을 무렵 아내가 “함께 뭔가를 하면서 힘을 내보자”며 이끈 곳이 건프라 매장이었다. 이후 건프라의 세계에 눈을 뜬 그는 자신이 만든 건프라 수백대를 활용해 건담 카페를 차렸다. 건프라를 전시하고, 건프라 새 제품과 음료를 판매하고, 테이블에서 건프라 조립도 할 수 있게 해놓았다. 주말에는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붐비지만, 큰돈을 벌진 못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걸 일로 삼아 행복합니다.”

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공식 SNS [통하니] [트위터] [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 [한겨레21]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