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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희망의 에너지가 지진 부메랑으로…셰일가스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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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6대 152.'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발생한 연평균 지진 횟수다. 1.6은 1970~2008년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발생한 규모 2.5 이상 지진의 연평균 횟수다. 152는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이 지역 연평균 지진 발생 횟수다. 지진 횟수가 급증했다. 지난해에만 650회나 발생했다.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다.

원인은 인류 에너지의 희망으로 불리는 '셰일가스'에 있었다. 퇴적암석층에 매장돼 있는 셰일가스·석유를 시추하는 과정에서 지진이 급증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셰일가스 시추가 지진을 일으키지 않는 단층의 이동을 유발하면서 대형 지진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이유대와 미국 칼텍,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등 공동 연구진은 셰일가스를 추출하기 위해 사용하고 남은 액체 찌꺼기를 지하 깊숙한 곳에 넣어 보관하는 '주입공(injection well)'이 지진을 유발한다고 밝혔다. 문제의 주입공은 '크리프(creep) 현상'까지 일으킨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크리프 현상이란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단층이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단층이 움직이는 것이 지진인데, 이 상식이 깨졌다는 얘기다. 이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근호에 게재됐다.

지표로부터 3~4㎞ 아래 셰일층 암석에 섞여 있는 가스·석유를 사용하기 위해 인간은 물과 모래 등을 섞어 고압으로 셰일층에 주입해 바위를 분해하는 '수압파쇄법'이나 셰일층으로 시추공을 넣어 가스나 석유를 뽑아내는 '수평시추법' 기술을 활용한다. 땅속에서 추출한 액체에는 석유와 가스를 비롯해 해수 등 여러 물질이 혼합돼 있다. 이 액체에서 가스와 석유만 뽑아내고 남은 찌꺼기는 다시 땅속으로 돌려보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오클라호마주에서 지진이 증가하자 많은 과학자들은 수압파쇄와 수평시추가 단층 이동을 유발해 지진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석유회사들은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과학자들이 과학적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엑스마르세이유대 등 연구진은 셰일가스·석유를 추출하는 기술이 단층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연구진은 프랑스 남부에 존재하는 지표 282m 아래 퇴적암층에 센서를 부착한 뒤 고압으로 물을 뿌려주며 인위적 환경을 만들었다. 이 단층은 안정된 지각 밑에 존재해 움직임이 없던 부분이었다.

실험 결과 단층에 주입한 액체 때문에 단층이 미끄러지는 현상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수압파쇄법이나 수평시추법 등으로 발생하는 물리적 압력보다 주입공이 지진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땅속으로 고압의 액체가 흘러들어가면 지각이 누르고 있던 압력을 밖으로 밀어내는 힘이 발생한다"며 "단층면에 작용하는 힘은 변화가 없는데 수직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 줄면서 힘의 불균형이 발생해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무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오클라호마주에서 발생하는 지진 진원지는 주입공 반경 5㎞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에서는 특히 지진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단층이 이동하는 크리프 현상이 주입공 지역에서 처음 관측돼 주목을 끌었다. 주입공에 존재하는 액체 찌꺼기는 지진을 일으킨 다음에는 힘의 불균형이 해소돼 더 이상 단층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가설이 틀렸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홍 교수는 "지진이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단층이 계속 이동하다 보면 힘이 축적돼 언젠가 규모가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무희 선임연구원은 "석유 확보를 위해 세계 각국이 셰일가스 개발에 나서고 있다"며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지진이 발생한다면 셰일가스 산업에 대한 전망이 나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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