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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흑인을 고릴라로 인식한 구글, 초스피드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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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인데도 총책임자가 직접 소통… '구글의 DNA'로 발빠른 대응]

-위기를 기회로 바꾼 구글

포토 서비스 총책임자가 항의 접수에 긴급회의 소집

직원 5만3000여명 거대 조직… 벤처처럼 빠르게 수습 나서

조선일보

엘신이 여자 친구와 찍은 사진에 '고릴라'라는 태그가 붙은 모습. /재키 엘신 트위터


일요일인 지난 28일 오후 6시 22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흑인 프로그래머 재키 엘신이 여자 친구와 찍은 사진 한 장과 함께 "구글 포토(구글의 사진 서비스 이름), 당신들 모두 ×됐어. 내 친구는 고릴라가 아니란 말이야"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엘신과 흑인 여자 친구 얼굴이 등장하는 사진 아래엔 '고릴라'란 태그(꼬리표)가 달려있었다. 구글은 지난 5월 구글 포토에 사용자가 사진을 올리면 사진 형상을 자동 인식해 관련 태그를 붙여주는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했다. 그런데 이 서비스가 흑인 얼굴을 고릴라로 잘못 인식해, 사람 얼굴 사진에 고릴라 태그를 붙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작년부터 잇따르는 백인 경찰의 흑인 살해와 최근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 발생한 백인우월주의자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종차별 문제가 어느 때보다 민감해진 시점이었다. 구글 이미지에 먹칠을 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

구글의 대응은 빠르고 정직했다. 엘신이 사진과 글을 올린 지 1시간 30분 만에 구글 포토 서비스의 총책임자인 요나탄 중커 구글플러스 수석설계자는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당신 계정에 접속해도 되겠느냐"는 메시지를 엘신 트위터에 올렸다. 휴일임에도 중커는 구글 기술팀을 소집해 문제 해결에 착수했다. 그리고 다음 날 사진 자동 인식 오류를 바로잡는 패치를 내놓아 문제를 해결했다.

중커는 긴급 패치를 만드는 동안 엘신에게 수시로 전개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했다. 또 "아직 자동 인식 기능이 정교하지 않아 문제가 많다. 지난번엔 사진 속 백인 얼굴을 개나 물개와 혼동한 적도 있다"며 이번 오류가 흑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구글의 발 빠른 대응과 사과에 엘신은 화를 풀고 "신속한 대응에 감사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1998년 실리콘밸리의 한 주택 차고에서 설립된 구글은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했다. 직원 수만 5만300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자칫 큰 위기로 번질 수 있던 이번 사건을 조기 진화한 것은 구글이 관료주의적인 대기업 문화에 물들지 않고 여전히 벤처기업 같은 '초심'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구글의 위기 대응 시스템은 '상승-고백-동의' 모델로 불린다. 비행기에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비행기에 문제가 생길 때 조종사가 가장 먼저 취하는 조치는 고도를 올리는 것이다(상승). 다음 관제탑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교신한다(고백). 마지막으로 관제탑의 지시를 받아 안전하게 후속 조치를 취한다(동의). 에릭 슈밋 구글 CEO(최고경영자)는 "구글은 문제가 생기면 선(先)조치-후(後)보고 절차를 밟는다"고 말했다.

[뉴욕=나지홍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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