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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동환의 월드줌人] '난 꼭 찾아야했다'…41년 인생, 엄마와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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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지난 25일(현지시각),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아르뚜로 메리노 베니떼스(Arturo Merino Benitez) 국제공항. 이날 넬리 레예스(61·여)는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꼭 잡은 두 손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쿵쿵 뛰는 심장은 계속해서 그의 머릿속을 울려댔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트래비스 톨리버(41)도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제 앞에 보이는 문만 빠져나가면 자기를 기다리는 엄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려 41년 만에 만나는 엄마다. 톨리버가 41세니 그는 인생 처음으로 엄마를 만나는 것이다.

이야기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9세였던 레예스는 그해 11월15일 오후 4시쯤 동네 산부인과에서 톨리버를 낳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레예스는 자기가 낳은 톨리버를 볼 수 없었다. 단지 “아기가 심장 이상으로 죽어버렸다”는 말만 간호사에게 들을 뿐이었다. 레예스는 아들의 시체도 사망증명서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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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리버는 태어난 직후, 누군가에게 납치당했다. 그가 태어난 시기를 전후로 1970~1980년대 칠레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를 팔아넘기는 일명 ‘Children of Silence’라는 행위가 만연했다. 현재로써는 톨리버도 이 같은 불법행위에 희생된 피해자로 추정될 뿐이다. 누가 톨리버를 납치했는지 밝혀진 내용도 없다.

그렇게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로 입양된 톨리버는 양부모의 보살핌 아래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자라왔다.

어느덧 스무살이 넘은 톨리버는 자신을 낳은 생부모를 만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만 알뿐, 어떠한 과거 이야기도 들은 적도 없었다.

사실 톨리버가 양부모로부터 아무런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던 건, 그의 양부모도 톨리버가 단지 길가에 버려져 미국으로 입양됐다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도 톨리버가 병원에서 태어난 뒤, 누군가에게 납치되었을 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

생부모 찾기에 나선 톨리버. 그러나 어떻게 부모를 찾아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톨리버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꼭 부모를 찾아야 했다. 자기에게는 친부모이자, 자식들에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톨리버는 미국 CNN의 ‘칠레 불법입양’ 관련 기사를 접하고 자기도 같은 피해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칠레 보건당국에 자신의 DNA 대조를 의뢰했고, 결국 긴 시간 끝에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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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만난 두 모자(母子)는 서로를 끌어안고 좀처럼 놓지를 않았다. 레예스는 “매일 아들을 안아주겠다”며 “난 아들을 정말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말에 톨리버도 기쁨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톨리버는 “이제야 정말로 내 고향에 돌아왔다”며 “내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나를 키워준 양부모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며 “세상 그 무엇도 양부모와 바꿀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칠레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꿈만 같다”고 한껏 밝은 미래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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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모자가 그동안 써 온 언어가 달라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톨리버는 영어를 썼고, 레예스는 스페인어를 써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랑으로 이를 극복하겠다며, 언어의 장벽은 모자간에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톨리버에게는 다섯 남매와 함께 즐거운 인생을 살 일만 남았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미국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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