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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친박’ 겨냥 칼날, ‘친이’ ‘친노’로 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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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완종 사면’ 콕 찍어 거론한 까닭은?

재보선 하루 앞두고 집중타겟

‘정치자금→사면’ 초점 옮겨

당시 비서실장 문재인 옭아매기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사면을 ‘만악의 근원’으로 규정하고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진원지로 꼽았다. ‘제대로 진실을 밝히라’는 대목은 누가 봐도 검찰에 대한 수사 지시로 읽힌다.

왜 박 대통령이 ‘성완종 리스트’ 국면에서 유독 사면 문제를 ‘집중 타깃’으로 공격하고 나섰을까. 야당은 전형적 ‘물타기’로 판단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친박 권력형 비리게이트 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전병헌 최고위원은 “사면 문제가 어느 정도 먹히고 있다고 판단한 박 대통령이 재보궐선거를 하루 앞두고 새누리당을 돕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단순히 재보궐선거만을 의식해 사면 문제를 들고나왔다고 보긴 어렵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 가운데 7명은 ‘친박’ 핵심 인물들이다. 성역 없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칼날이 의도와 달리 박 대통령 쪽을 겨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정권의 통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걷잡을 수 없는 권력누수 국면으로 치닫게 된다.

그런데 2007년 사면은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 사이에 이뤄진 일이다. 이 문제를 파고들면 ‘친박’을 겨냥한 칼날을 ‘친이’와 ‘친노’ 쪽으로 돌릴 수 있다. 사건의 초점도 ‘친박의 정치자금 수수’에서 ‘친이-친노의 사면 공방’으로 이동하게 된다. 2007년 사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두고두고 옭아매는 카드도 된다. 청와대 쪽에서 보면 ‘신의 한 수’에 가깝다.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고도의 기획과 정교한 조율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건강 악화’ 발표 직후에 내놓아 효과의 극대화도 꾀했다. 핵심을 ‘사면 문제’에 집중해 메시지 분산도 막았다. ‘성완종 리스트’ 관련 검찰 수사와 여야의 내밀한 분위기, 4·29 재보궐선거 정밀 판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흔적이 엿보인다. 여권 흐름에 밝은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이 평소엔 원칙적이고 큰 틀에서만 얘기했는데 이번엔 매우 구체적이다. 문재인 대표를 겨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청와대 고위급의 기획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사면 문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에 따라 법무부와 검찰도 어떤 식으로든 후속 조처를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다소 이례적인 사면에 대해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으니, 문제점이 발견되면 수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2007~2008년 정권교체기에 ‘노건평-이상득 형님라인’이 가동됐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해 검찰이 모종의 ‘사면 로비’ 정황을 포착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일부 나온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박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역풍이 불어닥칠 수도 있어 보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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