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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쓸로몬] 박근혜 정부의 '총리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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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철 기자] 쓸로몬은 쓸모있는 것만을 '즐겨찾기'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입니다. 풍부한 맥락과 깊이있는 뉴스를 공유할게요. '쓸모 없는 뉴스'는 가라!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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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국무총리 (청와대 제공)


이쯤되면 '총리 수난사'가 아닌 '총리 잔혹사'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 하다.

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가 취임 두달만에 결국 옷을 벗기로 했다.

병역, 투기 등 각종 의혹으로 인사청문회 내내 곤욕을 치렀던 이 총리는 결국 '성완종 리스트'의 직격탄을 맞고 총리직에서 내려와 '사필귀정'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어찌된 일인지 이 정권에서는 나라의 어른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인 총리 자리가 영광보다는 치욕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이른바 '총리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이후 지금까지 총 5명의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지만 3명은 후보자의 위치에서 낙마했고 정홍원, 이완구 후보자만 실제 총리가 됐다.

그나마 이완구 총리도 불명예 퇴진의 수순을 밟으면서 임기를 제대로 마친 총리는 박근혜 정부 들어 정홍원 전 총리가 유일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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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윤창원 기자)


사실 정홍원 총리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후 대통령이 낙점한 총리 후보자들이 연거푸 낙마하면서 다시 돌아온 총리, '빽도 총리'라는 우스꽝스런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이완구 총리 자진 사퇴' 기사가 뜨자 '정홍원'이라는 이름이 실시간 검색에 오르기도 했다.

◇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서 곧바로 총리 발탁된 김용준 후보자

박 대통령은 취임 직전인 2013년 1월 24일 첫 총리 후보로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지명했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총리 후보자를 발표하면서 김용준 위원장 본인이 '본인의 지명 사실'을 발표하는 모습이 연출돼 '셀프 총리'라는 얘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아들의 병역 문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면서 지명 5일 후인 1월 29일 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 물러나고 싶어도 못 물러났던 정홍원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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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사퇴 기자회견을 가진 정홍원 국무총리가 이동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김용준 전 위원장이 총리 후보직에서 낙마하자 박 대통령은 2013년 2월 8일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정 총리는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터라 공직자를 추천해야 할 사람이 최고 공직자의 자리에 오르는 모양새가 돼 야당에서는 '인물난'이라며 공세를 펴기도 했다.

정 전 이사장도 부동산 투기와 위장 전입 의혹, 아들의 병역 의혹 등이 제기됐으나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2013년 2월 26일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이후 정 전 총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책임을 지겠다"며 여러번 사의를 표명했지만 안대희 전 대법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 등 후임 총리 후보자들이 잇따라 사퇴하면서 '사퇴하고 싶어도 사퇴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박 대통령은 정 총리의 사의를 수용했다가 다시 신임해 '빽도 총리'의 탄생을 알리는 역할을 자임했다.

◇ 국민검사와 기자총리의 잇단 낙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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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


안대희 전 대법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대선자금 등을 수사하면서 '국민 검사'라는 애정어린 별명까지 얻었지만 이 정부에서 총리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변호사 업무를 맡은 지 5개월만에 16억원을 번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기자 출신 첫 총리 후보자라는 점에서 언론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과거 발언이 문제가 돼 지명 보름만에 자진 사퇴했다.

◇ '비타500'으로 63일만에 하차한 이완구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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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를 표명한 이완구 국무총리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관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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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총리도 인사청문회 당시 아들 병역문제 의혹, 부동산 투기 의혹, 왜곡된 언론관 등이 문제가 됐지만 가까스로 국회 인준을 받았다.

이 총리는 올해 2월 17일 제43대 국무총리로 취임하고 나서 곧이어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총리에게 3000만원을 줬다"고 밝히면서 일순간 '위기의 남자'가 됐다.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던진 부메랑이 결국 본인에게 돌아와 '척결 대상 1호'가 된 것이다.

이 총리는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초강수를 두며 버텼지만 2013년 4월 4일 성완종 전 회장과의 독대 정황이 CBS취재결과 속속 드러나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계속되는 말바꾸기로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결국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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