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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앵커브리핑] 등골브레이커? '지우개, 필통…다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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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2부의 문을 엽니다.

"지우개, 필통…다짐대회"

지우개입니다. 가격은… 14만원. 만우절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14만원입니다. 해외배송을 받아야 하는 귀하신 몸이라고 합니다. 지우개 가루조차 아까울 만큼 이렇게 비싼 걸 누가 사나 싶었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초등학생도 쓰고 있는 물건이라고 하는군요.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명품 지우개에 걸 맞는 짝이 있어야겠지요? 30만원대 명품 필통에 넣어서 70만원 가까운 일제 명품 책가방에 넣습니다. 갈수록 태산. 말 그대로 점입가경입니다.

만일 초등학생이 이걸 가지고 다닌다면 이 안에 든 것까지 합치면 거의 100만원이 넘는 가격이 되는 거겠죠.

한 단체가 초등학생용 브랜드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초등학생 책가방의 최고가격이 7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얼마 전 품귀 현상마저 빚었다는군요.

명품 지우개와 명품 책가방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몇 년 전이라고 하니 어쩌면 제가 이미 오래된 이야기를 늘어놓은 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한 켠에서는 아이들 급식비를 놓고 전쟁이 벌어진 가운데 또 다른 세상에선 만우절 거짓말 같은 얘기들이 오갑니다.

결국은 이것도 내보이기 위한 과시욕이겠지요. 돈으로 계급이 나눠지는 이런 사회에서 아이들을 통해 지위를 나타내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부모들의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남들 눈에 보이는 겉만 열심히 꾸미는 문화. 뼈 아프게 느끼는 우리의 구태입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속은 엉망인 예는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듭니다.

전혀 다른 얘기 같지만 본질은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제(31일) 정부가 세월호 1주기 때 국민안전 다짐대회를 열 계획이라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다짐 '대회'… 무엇을 느끼시는지요? 저 먼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실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옛날 얘기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도 늘 이렇게 내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더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14만원 짜리 지우개와 30만 원 짜리 필통이 아이의 공부에 대한 자세를 좌우하지 않는 것처럼… 안전을 다짐하는 대회를 연다고 해서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백원짜리 지우개와 천원짜리 필통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가 더 예쁘고 소중한 것처럼. 묵묵히 안전대책을 세우고 실천하고 점검하는 정부가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초등학생용 브랜드 발표 내용을 보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걸까요?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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