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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현금이 왕"…'매트리스 금고'에 깔린 日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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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디플레 초저금리에 가계 숨은 돈 332조원… 채무 부담 금리인상 제한 악순환]

'현금이 최고'라는 인식이 일본 경제를 옥죄고 있다. 일본인들이 매트리스 밑에 묻어둔 막대한 현금을 소비시장으로 끌어내는 게 경제선순환을 가속화하는 길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채무 부담이 금리인상을 비롯한 일본 정부의 대응 여지를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일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에 따르면 우에노 야스노리 일본 미즈호 증권 수석 시장 이코노미스트는 최신 보고서에서 일본 가계가 매트리스 밑에 쌓아둔 현금이 36조엔(약 331조758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대해 일본 다이이치 생명 연구소의 구마노 히데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는 마치 빙산과 같다"며 "결코 녹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CNBC는 많은 나라에서 매트리스에 쌓아둔 현금은 '지하경제'와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일본에서는 의미가 좀 다르다고 설명했다.

구마노 이코노미스트는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현금이 왕"이라며 아마도 더 많은 현금이 세제당국의 눈을 피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게 일본에서는 은행에 예금을 해도 웬만해서는 이자를 손에 넣을 수 없다. 미즈호 은행에 따르면 10년 만기 예금 이자가 0.10-0.150%에 불과하다.

구마노 이코노미스트는 "이자가 없는 데 뭐 하러 귀찮게 은행에 예금을 하겠느냐"며 "(은행에 안 가는 게) 은행에 가는 비용이라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즈호 증권의 우에노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인들이 처음 현금을 집에 쌓아두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자산거품이 붕괴된 직후라고 지적했다. 당시 일본은행(BOJ)은 일부 예금에 대한 보장을 중단했다. 그는 1993-2003년 사이 일본의 경제의 공식 레이더에서 사라진 자금이 24조5000억엔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구마노 이코노미스트는 물가가 폭등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초인플레이션)이나 엔화 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자본이탈이 발생하지 않는 한 매트리스 아래 숨겨진 현금이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매년 20엔씩 하락해 엔/달러 환율이 200엔에 이르면 사람들이 엔화를 쥐고 있는 데 대해 걱정하게 될 것"이라며 "(이 때) 사람들은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해외로 송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엔/달러 환율은 최근 120엔 선에서 움직이다가 이날 오후 2시30분 현재 도쿄 외환시장에서 119.91엔을 가리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인들이 현금을 집에 쌓아두고 소비하지 않는 게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나서 기업들의 임금인상을 압박해도 정작 소비가 이뤄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인상하면서 안 그래도 얼어붙은 소비심리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여파로 일본 경제는 지난해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네 번째 침체에 빠졌다가 최근 간신히 미약한 성장세를 되찾았다.

일본 정부가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소비세율 인상을 단행한 것은 세수를 늘려 사상 최악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일본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232.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럽 재정위기 진원지인 그리스(188%)보다 훨씬 높다.

다이이치 생명 연구소의 구마노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인들이 숨겨둔 현금을 끌어낼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사상 최저인 수준인 금리를 올리는 것인데 일본 정부는 더 이상 부채를 상환할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금리를 올리면 일본 정부의 부채 상환 비용(국채 금리)이 덩달아 불어나기 때문에 금리인상이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김신회 기자 rask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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