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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28g에 180달러 金모유… 美 모유상업화 논쟁 후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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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가공업체 프로락타 매출 40% ↑

모유 무상 공유 vs 댓가 지불 당연

저소득층 신생아 집중 피해 우려

"헌혈처럼 취급해야" 목소리 높아

한국일보

모유 수유가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면서 이른바 모유산업도 급성장 하고 있다. 그러나 모유의 상업적 거래가 타당하냐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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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사는 그레티 아마야는 직장에 무급 출산휴가를 내고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했다. 딸에게 먹이고 남은 모유를 파는 일이다. 아마야가 이렇게 5개월 동안 번 돈은 2,000달러. 그는 이 돈을 공과금을 내는데 보탰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미국에서 상업적 목적의 모유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모유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탓이다. 생명과학 벤처 투자자들로부터 4,600만달러 투자를 받아 설립된 모유가공업체의 대표 주자 프로락타 바이오사이언스는 최근 1년 매출이 40%나 올랐다.

프로락타는 모유를 가공해 미숙아들이 먹는 모유강화제를 생산한다. 모유강화제는 기존 모유에 부족한 지방과 미네랄 등을 보충한 고단백 제품이다. 원료인 모유는 냉동된 채로 공장에 도착한다. 이후 바이러스 감염, 니코틴, 약물, 희석이나 우유 같은 불순물 검사를 거치고 가공이 이뤄진다. 모유 제공자는 혈액 검사를 받고 본인과 아이가 건강하다는 의료 기록도 제출해야 한다. 본인의 모유인지를 확인하는 유전자 샘플도 채취한다. 아마야는 “먹고 있는 비타민까지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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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들어진 프로락타 제품은 신생아괴사성 장염같은 부작용을 피할 수 있어 우유로 만든 다른 모유강화제보다 안전하다. 특히 1,250g 이하의 미숙아들에게 효과적이다.

반면 비싼 가격은 단점이다. 프로락타 모유강화제 가격은 1온스(28g)에 180달러에 달한다. 금(金)모유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 재 H. 김 박사는 “모유에 할당된 병원 예산이 연간 2만5,000달러인데 프로락타 강화제를 매년 50~70개만 추가하더라도 50만달러를 훌쩍 넘는다”고 말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프로락타 강화제는 미국 내 150~900개의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쓰이고 있다.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모유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모유가 성인에게도 효과적인 치료제로 개발될 수 있다는 점이 관련 산업 창출을 부르고 있다.

프로락타의 회장 스콧 A. 엘스터는 “모유를 가공해 면역력 강화와 혈우병 환자들의 혈액 응고에 도움을 주는 면역글로불린 성분 의약품으로 만들 수 있다”며 “모유는 흰색 혈장”이라고 말했다.

이볼브 바이오시스템, 글리코신, 젠와인 바이오테크놀로지, 글리콤 등 미국 내 다른 여러 기업들도 모유에 풍부하게 함유된 소화기관에 유용한 박테리아를 추출, 복합당 형태의 제품 생산에 힘쓰고 있다. 모유 성분은 또 크론병 같은 장 질환 치료제로도 각광 받고 있다.

모유산업 발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비영리 모유은행들은 모유가 돈이 되면서 기업들이 모유를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모유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지면서 모유은행으로 기증되던 모유가 줄어들고 있다. 프로락타는 지난해 모유 6만8,038㎏을, 올해 말까지 9만6,388㎏을 가공한다는 계획이다. 예상대로라면 올해 말 프로락타의 가공 모유 양이 2013년 북미모유은행연합 소속 18개 모유은행의 총 기증 모유 양인 8만7,883㎏을 넘어선다.

텍사스주 오스틴 모유은행 대표인 김 업디그로브는 “모유은행과 기업이 모유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모유은행은 모유 기증자에게 어떠한 대가나 경제적 보상도 지급하지 않는다. 기업과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모유은행의 예산은 주로 기증 받은 모유를 검사하고 저온살균 처리하는 비용으로 쓴다.

모유산업 논쟁은 모유의 상업적 거래가 타당하냐라는 근본적 질문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상업적 거래에 반대하는 측은 여성들의 모유 판매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모유를 팔기 위해 질병을 숨기거나 우유를 섞어 모유 양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여성들이 모유를 아이에게 먹이지 않고 팔아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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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락타의 경쟁사인 메도락은 지난해 디트로이트에서 모유를 사겠다고 했다가 흑인모유연합으로부터 “흑인 여성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기업이 이익을 얻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흑인모유연합은 메도락에 보낸 공개 서한에서 “우리는 모유를 사들이는 업체 때문에 자신들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모유가 사실상 판매를 강요당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데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흑인 엄마들은 모유 수유율이 50%를 밑돈다. 백인 엄마들의 모유 수유율(80%)과 차이가 크다.

이들은 생명윤리 차원에서 모유가 반드시 선한 의도에 따라 무상으로 공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뉴질랜드에서 분유업체인 폰테라가 독극물 분유 협박을 받자, 모유 공유 사이트를 중심으로 자발적인 공유가 이뤄진 게 대표적 예다.

엘리자베스 커리드 서던캘리포니아대 공공정책학과 부교수는 “모유는 파트타임 일자리가 아닌 헌혈처럼 취급돼야 한다”며 “공급량이 부족하면 병원이나 보건단체를 통해 유축기나 모유 저장용 가방을 무상으로 제공해 모유 기증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유를 사고 파는데 찬성하는 측은 기업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모은 모유를 제공 받아 이익을 취했다면 공급자에게 돈을 지불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또 모유의 상업적 거래가 활발해지면 기증이나 판매, 어떤 형태로든지 사용 가능한 전체 모유 양이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엘레나 메도 메도락 대표는 “모유산업이 성장할수록 모유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브라질 펠로타스국립대 연구팀은 3,500명을 대상으로 30년 간 추적 연구를 한 결과 모유를 먹은 기간이 길수록 30세가 됐을 때 지능과 학력, 임금이 높아진다는 상관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런 경향은 어머니의 교육 수준이나 가족의 수입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나타났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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