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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2차대전 당시 소련軍에 동원된 고려인 1만5천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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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헌용 군사편찬硏 연구원, 민족운동사학회 학술회의서 발표 예정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2차대전 당시 소련군에 의해 1만5천여 명에 달하는 고려인이 동원돼 전쟁터에 투입되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노역에 종사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심헌용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일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소비에트 한인의 전쟁 참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심 연구원은 1941∼1945년 2차대전 당시 소련 정규군인 '노농적군' 등으로 동원돼 무기를 들고 전투 현장에 투입된 한인이 대략 400명인 것으로 추산했다.

후방인 노동전선, 산업전선에 동원돼 도로·항만·석탄광에서 노역에 종사한 한인도 1만4천∼1만5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전시 총동원령의 일환으로 소집 연령에 달한 청년이 징집됐다"면서 "이들은 열악한 근무 조건과 혹독한 규율하에 노역에 종사했다"고 설명했다.

심 연구원은 고려인 역사학자인 박 보리스 교수 등의 연구 결과와 징집자의 증언 기록 등을 토대로 소련의 대(對) 독일 전선에 동원된 고려인 규모를 이같이 추정했다.

그는 특히 "전선에 투입된 소비에트 한인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다"면서 "한인 여성들도 의사, 간호사, 문화 활동가, 노동자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인들이 투입된 전선은 대부분 독일군의 주력이 집중된 곳으로, 지속적으로 접전이 벌어지던 위험 지역"이라며 "극동 지역의 대 일본 전쟁에서도 정찰, 첩보, 전투 부대에서 활동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후방에서도 인력을 '수용소 체제'로 몰아넣고 관리했다고 심 연구원은 덧붙였다.

그는 "남녀 노무자들은 노동부대로 편성돼 '특별 이주자' 상태에서 고역에 시달려야 했다"면서 "노동부대는 전시에 등장한 특별 조직으로 노동 가능한 남녀 인력을 준군사조직으로 편성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투 현장이나 노무 부대에 동원되지 않은 한인들은 군수 물자를 생산하는 데 투입됐다.

중앙아시아 한인 공동체는 비행기나 장갑차 제작에 필요한 부품이나 병사들이 사용할 물자를 납품했고, 승리 기금·방위 기금 등의 명목으로 성금을 모았다.

이렇게 동원된 한인 중 일부에게는 훈장을 수여하는 등 공로를 인정하기도 했다.

심 연구원은 "집단으로 강제 이주된 한인들은 주거 이전의 자유 등 기본적인 시민권이 박탈됐기 때문에 전선에서 무기를 들고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이들은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보이기 위해 전선으로 몰려들었으며, 더 이상 열악한 상황에 처할 수 없었던 한인들에게는 전쟁이란 위기가 오히려 기회였는지도 모른다"고 풀이했다.

이 논문은 오는 3일 한국민족운동사학회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인 독립운동과 러시아에 대한 재조명'을 주제로 여는 학술회의에서 발표된다.

회의에서는 '러시아 지역 한인 언론과 유진률'(수원대 박환 교수), '한말 연해주 지역 한인 독립운동과 러시아'(독립기념관 김형목 연구위원) 등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newgla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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