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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안심전환대출 vs 서브프라임모기지①]선심성 정책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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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위한다는 미명 하에 금융 근간 흔들기

예상 뛰어넘는 뜨거운 반응…당황하는 정부

[편집자 주] 지난 일주일 간 ‘안심전환대출’의 강한 파급력이 금융권을 휘감고 있다. 은행 대출 창구는 ‘안심전환대출’을 신청하려는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동사무소는 그에 필요한 서류를 떼려는 사람들도 북적거린다.

이는 선심성 정책으로 시작해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 탓에 금융 근간이 흔들리고, 급기야 각종 부작용 속출로 이어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본지는 4회에 걸쳐 ‘안심전환대출’을 둘러싼 각종 이슈들을 ‘서브프라임 사태’와 비교 분석해보려 한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저소득층을 위한 선심성 정책으로 시작했으나, 심각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야기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해 결국 파국을 맞았다.

‘안심전환대출’은 리스크의 부담 과정과 최종 책임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짧은 기간 사이에 ‘서브프라임 사태’의 진행 상황을 비슷하게 쫓는 모습이다.

◆‘저소득층 지원’에만 몰입…금융 근간 해쳐

지난 2000년대 초 미국 정부는 한 가지 정책을 세웠다. “모든 미국 시민이 자기 집을 가지게 하자”는 정책이다.

전세가 없는 미국에서는 태반의 시민들이 매달 고액의 월세를 내느라 시달리고 있다. “가난한 서민들에게도 안정된 주거를 가지게 하자”는 표어는 참으로 아름답게 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앞세워 서브프라임 계층, 즉 저신용계층에게 대규모의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곧 다른 금융기관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리고 실제로 이 기간 중 미국 시민들의 자가 보유율은 크게 올라갔다.

‘안심전환대출’도 “가계의 이자부담을 낮추고, 고정금리대출을 유도해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한다”는 거부하기 힘든 대의명분으로 시작했다.

증액분까지 합쳐서 40조원의 ‘안심전환대출’이 시장에 풀리면, 고정금리 및 분할상환대출 비중이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30%까지 올라갈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변동금리대출로 돈을 빌린 사람들이 상당한 이자부담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전에 미리 고정금리대출로 유인하는 것은 분명 옳은 정책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 정부는 “돈은 신용도가 높은, 즉 갚을 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빌려줘야 한다”는 금융의 대전제를 무시했다. 이들은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빚을 갚을 수 없게 되면, 담보주택을 압류해 매각하는 방식으로 채권을 회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또 주택저당증권(MBS)과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을 통해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 및 여러 금융기관들의 안이한 판단은 ‘집값 하락’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로 인해 무너졌다.

‘안심전환대출’도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금융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채무자들이 본래 약정한 금리를 크게 낮추는 것은 물론 중도상환수수료까지 면제해줬다.

그 결과 불러온 것이 현재의 뜨거운 열풍과 모럴해저드다.

◆정부의 엇나간 수요 예측

2001년만 해도 미국의 모기지대출 중 서브프라임대출 비중은 4% 이하에 불과했다. 미국 정부와 은행들은 이 비중이 크게 변화하진 않을 거라고 안이하게 판단했다. 또 당시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이 1%대인 것만 믿고 각종 모기지대출 수천 개를 묶어 만든 위험한 채권에 무디스와 피치 등 신용평가사들은 ‘AAA’ 등급을 부여했다.

하지만 막대한 유동성이 투입되고, MBS와 CDO 등의 고수익률에 금융기관의 관심이 쏠리면서 서브프라임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금융기관들은 아무리 신용이 낮고, 심지어 소득이 없어도 닥치는 대로 돈을 빌려줬다. 그 결과 2005년에는 전체 모기지대출 중 서브프라임대출의 비중이 14% 가까이까지 치솟아오르게 된다.

미국 정부는 수요 예측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세계파이낸스

(단위 : %, 자료=인사이드모기지파이낸스)


‘안심전환대출’도 ‘박근혜 정부’와 금융당국의 수요 예측을 훌쩍 벗어났다.

당초 금융위원회는 ‘안심전환대출’의 월별 한도를 5조원으로, 총 한도를 20조원으로 잡았다. 매달 5조원씩 대출 전환 수요를 소화해 7월말까지 20조원을 소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금융위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첫날, 지난 24일부터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안심전환대출’ 승인액이 4조원을 넘겼다. 월별 한도 5조원은 이틀도 지나기 전에 소진됐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월별 한도에 얽매이지 말고 대출해주라”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총 한도 20조원을 채울 때까지 걸린 기간은 지난 27일까지 단 나흘에 불과했다. 금융위는 부랴부랴 주택금융공사의 보증 배수를 최대한 동원해서 ‘안심전환대출’을 20조원 증액해야 했다. 그조차 다음달 3일이면 소진될 것이 확실시된다.

정부의 판단이 얼마나 안이했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결과다.

세계파이낸스

(단위 : 억원, 자료=금융위원회)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24일 아침에 ‘안심전환대출’을 신청하려는 고객들로 지점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며 “은행원 생활 25년 동안 개점 전부터 고객들이 지점 앞에서 기다리는 진풍경은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약 2.6%의 저금리에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뜨거운 반응에 각 영업점 인력만으로 대응하기 힘들어진 은행들은 즉시 지원 인력을 파견했다. 특히 가장 많은 주택담보대출을 보유한 KB국민은행은 본점 인력 180여명을 영업점으로 보냈다.

동사무소도 난리가 났다. 전환에 필요한 주민등록등본, 전입세대열람 등의 서류를 떼러 온 사람들로 건물이 꽉 찬 것이다. 동사무소 직원 A씨는 “심할 때는 주민등록등본 발급 창구에 대기자가 50명을 넘기도 했다”는 “이런 경우는 난생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안재성 기자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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