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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죽어서 짐 되기 싫어" 시신기증 신청하는 '독거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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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천주교공원묘지 내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시신기증자들을 위한 납골당 '참사랑묘역' 전경. / 사진 = 안재용 기자


"여기에 안치된 분들은 진정한 성인(聖人)입니다."

경기도 성남 분당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 묘지 안쪽으로 5분쯤 걸어 들어가 '참사랑묘역' 앞에 다다르자 안병주(프란치스코) 관리소장이 기자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내뱉은 한마디다.

공원묘지에서도 중심에 마련된 참사랑묘역은 천주교인 중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 연구목적으로 써달라며 '시신기증'한 2700위가 안치돼 있는 납골당이다.

참사람묘역은 한눈에 보기에도 차분하고 안정적이었다. 납골당 하나마다 사연을 담은 사진이나 헌화가 놓여있었다. 종교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시신을 기증한 이들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이 묻어났다.

납골당 앞에는 너른 공터가 눈에 띄었다. 매년 11월 1일에는 가톨릭 의대와 성모병원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그해 기증된 시신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대미사가 열리는 곳이다. 장례비용과 사후 납골당 등은 모두 가톨릭대학에서 제공한다.

안 소장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을 위한 선택을 하신 분들을 위한 곳"이라며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시신 기증이라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하며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시신기증 괜찮아" 달라진 인식…의학계 변화도

사망 후 연구목적으로 시신을 기증하는 것에 대한 국민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의학계와 사회적 분위기도 변했다. 과거 기증이 부족해 무연고자 시신을 연구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이제는 사실상 쓸모가 없게 됐다.

국내 대학 중 가장 시신기증 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가톨릭대도 매년 수백명의 신청자 중 200여구만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받지 못한다. 가톨릭대는 이를 의대 해부학교실 실습과 의학실험 등에 1~3년간 활용한 뒤 장례절차를 밟는다.

이처럼 시신기증을 받는 의과 대학들의 시신보관소(냉동고)가 부족해 신청을 받지 못할 정도이고, 이를 연결해 주던 시민단체들도 6~7년 전부터 대부분 손을 떼고 장기·조직 기증 쪽으로만 관리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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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천주교공원묘지 내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시신기증자들을 위한 납골당 '참사랑묘역'에 마련된 추모비. / 사진 = 안재용 기자


장기·조직기증에 비해 시신기증 신청자 수가 비교적 적은 이유도 있다. 사망 후 심장이나 각막, 혈관, 뼈 등을 환자에게 전달하는 장기·조직기증과 달리 시신기증은 오직 대학 연구목적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신기증을 받는 전국 50여개 의과대학에서는 8~15명가량의 학생들이 1구의 시신으로 1~2년가량 실습을 진행한다. 실습을 포함한 연구 등으로 대학들은 연평균 50~100여구의 시신을 보관·관리한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과대학교 가족이나 관계자만으로 시신기증자가 많기 때문에 20~30년 전처럼 무연고자나 시민단체를 통하지 않는다"며 "수도권과 달리 일부 지방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증자로 연구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지자체를 통해 인계된 무연고자시신을 연구목적으로 사용한 의과대학은 단 한곳에 불과하다.

권민정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사무관은 "연구용 시신이 부족해 1962년 무연고자 시신을 기증하는 법안이 마련됐지만 현재로선 전혀 실효성이 없다"며 "화장 문화가 자리 잡고 인식이 바뀌다 보니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와 새생명장기기증운동본부 등 시민단체 등은 과거 진행하던 시신기증 병원 연결사업과 캠페인을 하지 않는다. 기존에 신청을 받아놓은 일부 기증자들만 사망 후 연결해 주고 있다.

시민단체 중에서 그나마 시신기증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생명나눔실천본부도 점차 사업규모를 축소하고 있는 상태다. 이마저도 병원측 사정으로 시신기증이 성사되는 경우가 적다는 게 시민단체의 설명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6~7년 전부터 시신기증 신청을 받지 않고 있고 15~20년 전부터 계속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며 "종종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인근 대학병원을 알려주는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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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제공 = 생명나눔실천본부


◇"죽어서까지 짐되기 싫어"…시신기증하는 독거노인들

화장 문화 확대와 인식변화 등으로 시신기증자들이 늘어났지만 급증한 노인인구에 따라 씁쓸한 사회적 민낯이 드러나기도 한다. 독거노인들이 사망 전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시신기증을 신청하는 경우다.

반대로 장례를 치르기 어렵다며 자식들이 부모 사망 후 대학이나 시민단체를 통해 시신기증을 문의하기도 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평소 관계가 소원해 장례를 치를 수 없어 문의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한 시민단체는 지난 달 80대 독거노인이 시신기증을 신청했지만 결국 대학과 연결에 실패했다. 대학의 거절사유는 노인의 유족과 연락이 되지 않아 사망 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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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한 독거노인이 자택 부엌에서 물을 끓이고 있다 / 사진제공 = 뉴스1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안타깝게도 독거노인들이 직접 시신기증을 받는 곳에 연락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측의 조건 중 유족동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기증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부는 사망 후 기증을 신청하기도 하는데, 대학에서 시신을 사용한 뒤 유골을 전달하려고 해도 유족들이 거부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학에선 이들 독거노인의 시신기증에 대해 존중의 뜻을 내비치면서도 법적 문제로 다소 난색을 표하기도 한다. 시신기증을 받아 놓은 뒤 사망 후 연구목적으로 사용하려 했으나 유족들이 반대 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시신기증을 신청한 부모가 사망 한 뒤 유족들이 찾아와 취소하는 경우가 70~80%가량에 달한다"며 "연구를 위해 대학에서는 시신이 꼭 필요한 만큼 이를 위해 반드시 유족의 동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윤 기자 mton@,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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