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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New York Times의 시선] 중국의 제주 ‘침략’에 주민들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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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중국 ‘침략’에 두려워하는 제주.

27일자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 1면과 3면에 실린 제주 르포 기사의 제목이다. 26일자 뉴욕타임스(NYT) 6면에 먼저 실린 기사에서 NYT는 중국 관광객과 투자자가 급격히 증가한 제주도를 ‘침략’이란 용어를 사용해 보도했다. 중앙일보 제휴사인 뉴욕타임스 기사 전문을 소개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자리잡은 신용균씨의 딸기농장 인근에는 1930년대 중국을 공습하기 위해 일제 식민주의자들이 건설한 활주로와 군함을 숨기기 위해 조성했던 해변 동굴이 남아있다.

일제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지만 신씨와 주민들은 최근 새로운 외국인의 ‘침략’을 걱정하고 있다. 신혼부부와 야자수, 청록색 바다를 향한 골프 코스로 유명했던 제주를 휩쓸고 있는 중국 관광객과 투자 물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포장하던 신씨와 그의 부인은 “줄지어 착륙하는 여객기에서 내린 중국인들 중에는 이 근처 땅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며 “가끔은 이러다가 제주가 중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갑작스러운 중국인과 돈의 쇄도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정책적으로 초래한 측면도 없지 않다. 무비자, 콘도미니엄 구매자에 대한 영주권 부여, 중국 국적 포기 없이 한국인과 같은 의료 서비스와 취업 기회를 제공한 정책 등이 이러한 현상에 일조했다.

중국 자본의 유입은 많은 이들에게 노다지가 됐다. 중국에 비해 가격이 싼 명품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면세점과 새로운 호텔·콘도미니엄 개발이 제주의 평판을 크게 제고시켰다. 하지만 중국인의 급증은 멀지 않은 과거 역사 속에서 이웃 강대국의 잦은 침략을 경험한 한국에 새로운 패권 국가에 의한 수탈 우려를 함께 키우고 있다.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 610만 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 가운데 절반 정도가 제주를 찾았다. 2011년보다 다섯 배 증가한 수치다. 중국인은 또한 제주의 최대 외국인 투자자다. 그들은 최근 아시아 최대 가족 테마 공원과 카지노 타운을 착공했다. 중국 기업가들은 여러 곳의 고층 호텔과 콘도미니엄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최근 주민들의 우려가 중국인의 투자를 가로 막고 있다.

제주도내 중국인 소유 토지는 아직 1% 미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2009년 5에이커(2만㎡)에 불과하던 수치가 지난해 2050에이커(830만㎡)로 증가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된 제주도의 외국인 투자액 61억달러 가운데 70% 이상을 중국이 차지했다.

지난 역사에서 한국을 침략했던 나라 중 하나인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특히 복잡하다. 많은 한국인들은 지난 세기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의 역사에 계속해 분노하고 있는 반면, 중국이 지나치게 강해져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데에는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다.

중국은 수출 주도형 경제를 가진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과의 유대를 강화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도 여러 차례 가졌다. 중국인 투자를 환영하는 제주 주민 중에는 현재 건설 중인 해군기지를 미군 군함이 사용해 중국인 투자자를 쫓아내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주변 해역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인 행보는 많은 한국인들을 우려하게 만들었다. 중국이 결국 한국의 정책마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핵심 경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나온다. 특히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여전히 최고의 안보 파트너로 생각하는 미국과의 사이에 쐐기를 박으려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국제통상국의 김남진 중국협력팀장은 “제주는 한국이 중국과 접촉하는 최전방”이라며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이 바로 한중 관계와 대중국 정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관한 테스트 베드”라고 말했다.

관광이 바꿔놓기 전까지 제주는 목장과 어업을 주로 하는 잠자는 섬에 불과했다. 많은 남성들은 더 낳은 일자리를 찾아 뭍으로 떠나 바람·돌과 함께 여자가 많아 삼다도로 불렸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제주도는 신혼여행과 수학여행의 최대 목적지가 됐다. 지난해 4월 페리호 사고로 숨진 304명 중 다수가 제주로 향하던 학생들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주는 특히 중국인을 환영했다. 특히 제주를 국제관광지로 만들려는 의도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지금까지 차이나타운이 없었다. 제주는 번화한 쇼핑 지역 이름을 중국어로 지은 첫 지자체가 됐다. 바오젠(寶健) 거리는 2011년 중국의 의료품 제조업체가 1만1000명의 직원을 제주로 인센티브 관광을 보낸 것을 계기로 명명됐다.

최근 제주를 찾은 중국인 쉐리사(60)는 접근성 때문에 제주에 끌렸다고 말했다. 제주는 베이징과 비행시간이 2시간에 불과하다. 부유한 중국인들은 제주를 부동산 구매하기 좋은 장소로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언론과 비평가들이 집중적으로 중국인의 부동산 투자자들이 한국 땅을 “잠식”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국 여행사를 통해 온 중국 관광객 대부분이 제주 관습을 어기고, 중국인 소유의 호텔과 식당, 쇼핑센터에서만 머문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제주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68%가 중국인 관광객 증가가 제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을 정도다. 제주에서 사업을 하는 김홍구씨는 “가끔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해변 도로를 건너 차를 멈추고 마치 소떼처럼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며 “때로는 일부 중국인들이 길에서 침을 뱉고 담배를 피우는 광경을 목격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중국이 돈을 가지고 제주를 ‘차이나 타운’으로 만들려 한다고 비난했다.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대표는 중국 관광객이 공공 에티켓을 무시하는 이유가 “한국을 소국이라고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의심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한국인 사이에 제주에서 사는데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증가하고 있다. 중국인에게 토지를 파는 사람을 20세기 초 일본의 식민지화를 도와준 한국인에 빗대 ‘민족 반역자’에 비유하는 정서도 등장했다. 한 식당은 중국인이 인수했다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신문 광고를 게재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이 같은 ‘폐쇄적 애국심’을 경계했다. 중국인이 참여했던 프로젝트 가운데 일부가 무산되거나 지역 투자자에 의해 기피된 경우도 발생했다. 2010년 영주권 부여 정책 시행 후 콘도미니엄 934채 중 절반을 중국인에게 판매한 라온 프라이비트 홈 조의환 사장은 “중국인을 유혹해 이곳에서 더 많이 소비하게 하는 것이 적대감을 불러일으켜 제주에 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보다 지혜로운 행동”이라며 “지금 추한 중국인을 비난하지만 불과 수 십 년 전 ‘추한 한국인’이 해외에서 같은 행동으로 비난 받았다”고 말했다.

제주 지역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카지노를 운영하는 겐팅 싱가포르는 이달 중국 파트너인 란딩 인터네셔널과 합작 개발하는 18억달러 규모의 리조트에 1000 여명의 제주 주민을 고용할 것을 약속했다. 250만㎡ 부지에 카지노와 최고급 호텔, 테마 파크가 들어설 예정이다.

딸기를 재배하는 신용균씨는 마을이 둘로 갈라져 있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은 중국인 투자 붐이 토지 가격을 인상시켰다고 즐거워하고, 다른 이들은 농장 임대료 상승과 난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에 화가 난 상태다.

신 씨에게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부상하는 중국이 자신과 같은 주민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두렵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활주로와 동굴을 만들기 위해 일본에 징집됐던 제주 주민이었다고 말한다. “여기는 고통의 땅이다. 갑작스럽게 많아진 중국인이 그 고통을 더하고 있다.”

신경진 기자 xiokang@joongang.co.kr

신경진 기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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