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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취재파일] 오늘도 고개 숙여 사과를…복지부 장관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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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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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절차에 문제가 있는 건 인정하셔야죠! 아직 안 온 게 아니라 한 번도 안 왔는데 뭐가! 정부 입법이 왔어요, 안 왔어요? 아직 안 오다니! 한 번도 안 왔잖아요!"

제가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장 앞에 도착했을 때,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은 이렇게 보건복지부 국장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니, 국장 지금 왜 이러는 거야, 빼 드릴까? 그럼 (법안) 의결을 안 해드릴까?" 하며 옆에서 거드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잠시 뒤 다른 의원도 "말도 안 돼~."라는 말을 내뱉으며 상기된 얼굴로 회의장에서 나왔습니다.

표면적인 원인은 보건복지부의 '절차 위반'이었습니다. 보건복지위의 안건은 모두 다섯 개였습니다. 이 가운데 '우선판매품목허가제' 허용 등의 내용이 담긴 약사법 개정안과, 오리지널 약제비 환수를 골자로 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이 문제가 됐습니다.

'우선판매품목허가제'는 한-미 FTA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음 달부터 한-미FTA가 시행되면 제네릭 허가신청이 들어올 경우 특허권자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 특허 도전이 끝날 때까지 제네릭 판매를 1년 간 유보하는 제도가 시행됩니다. 오리지널 의약품 특허권자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제네릭 위주인 우리나라 제약시장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가 제기되면서 보호조치 차원인 '우선판매품목허가제'가 나왔습니다. 제네릭으로 부르는 복제약이 특허에 도전해서 성공했을 때 첫 번째로 제네릭 허가를 한 신청자는 일정 기간 동안 독점 판매권을 부여하는 내용이죠.

보건복지부는 '우선판매품목허가제'를 골자로 한 약사법 개정안을 심의할 때,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병합심의하고 싶었습니다. 오리지널 의약품 제약사가 제네릭 제약사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하게 되면 소송 기간 동안 제네릭 제약사는 의약품을 팔 수 없습니다. 이 기간 동안 환자들은 제네릭보다 비싼 오리지널 약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비용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되죠. 그래서 정부는 오리지널 의약품 제약사가 소송에서 패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함으로써 보험료 손실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 의지가 담긴 게 건강보험법 개정안이지만 정부 입법 절차가 문제가 됐습니다.

지난 연말 입법예고를 했음에도 다국적 제약회사들과의 관계가 얽히면서 입법이 늦어진 겁니다. 결국 복지부가 택한 건 위원회 안으로 긴급 상정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마음은 급한데 시간은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의원입법도, 정부입법도 아닌 '위원회 안'을 생각해 낸 거죠.

그런데 26일 전체회의에 상정할 위원회 안이 불과 이틀 전인 24일에야 법안 소위에 도착했습니다. 가까스로 소위를 통과했는데, 26일 전체회의에서 문정림 의원을 필두로 한 여러 의원들이 문제를 삼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서 적은 회의장 앞 고성 장면이 등장하게 된 겁니다.

오전에 한 차례 정회됐다 오후에 속개됐지만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보건복지위 김춘진 위원장이 가세하면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본격적인 수난이 시작됐습니다.

"국회에 법안도 제출 안하셨습니다. 일정도 모르시나요? 업무 그렇게 파악하신 거예요? 국정 그렇게 보셔도 되는 겁니까?" (보건복지위 김춘진 위원장)

"병합하기 전에 안을 제출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유 여하 막론하고 송구스럽다는 말씀드립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


지난해 예산안 통과 때 논란이 됐던 담뱃갑 경고그림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당시 여야는 담뱃갑에 경고그림 부착하는 법안이 예산과는 상관없는 내용인데, 복지부가 부수법안에 끼워 넣은 데 반발하며 처리를 뒤로 미루겠다고 밝혔었거든요.

"지난해도 담뱃값 인상 때 예산부수법안이라며 경고그림 제출했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편법 쓰시려 해요. 복지부에 변호사 없습니까? 위원회 안인데 통과 직전에 법안 받아봤어요. 어떤 의원이 문제제기 안하겠습니까?" (보건복지위 김춘진 위원장)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 법안 통과에 공이 큰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복지부에 대해 사실상의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위원회 안 제출이) 상세하게 왜 늦었는지에 대해서 과정을 전부 서면으로 의원께 내주시고 담당 사무관부터 과장 국장까지 명기해서 내부 공문서 첨부해서 내주세요. 조금이라도 잘못했다면 담당자는 문책을 요구해야 합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

절차상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취지가 나쁘지 않은 만큼 처리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하는 의원들도 여럿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문형표 장관이 거듭 고개 숙여 사과한 것도 소용이 없었던 셈입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불과 보름 전쯤에도 건강보험료 개편 백지화 논란과 관련해 의원들의 집중 추궁을 받았습니다. 야당은 문형표 장관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건강보험료 개편 백지화 했다는 이유로,

"장관이 아무것도 청와대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했는데 (청와대) 연관설이 모든 신문에 깔리면 장관이 나서서 언중위에 제소해야죠. 항의 안 해요?" (김용익 새정치연합 의원)

여당은 오락가락 정책으로 국민에게 불신을 주고, 갈등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질책했었거든요.

"건보 부과체계 발표한다, 안 한다 재논의과정에서 지지도가 떨어졌다고 하는데 공감하는지. (중략) 책임 있지요? 저는 세상이 다 아는. 너무나 많은 정책혼선 있었다고 인정합니다." (김제식 새누리당 의원)

여야 의원 모두로부터 수난을 당하고 있는 문형표 복지부 장관. 정부가 원하는 법안 통과가 원래 이렇게 힘든 것인지, 아니면 자질과 능력의 문제인지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기겠습니다.

[최고운 기자 gowo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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