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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죽은 예수의 국물만 마실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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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쉼과 깸

절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일요일 예배 때 이른바 사도신경이라는 신앙고백문을 암송한다.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 대속 그리고 재림을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예수의 인간적인 모습보다는 신적 존재로서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사도신경은 오랫동안 주류 교회의 핵심 테제로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잣대로 삼고 있다. 그만큼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사실 제정하는 과정은 아름답지 못했다.

기독교가 공인받은 이후 신성과 인성을 놓고 다툼이 벌어지는 가운데, 제국의 분열을 우려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제국과 하나의 종교를 원했던 황제가 예수의 신성을 중요시하는 파벌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 후예들이 오늘날까지 가톨릭과 개신교의 주축을 형성하고 있다. 신조의 형성은 다양한 종파들의 신학적 견해 차이를 정리하고 하나의 표준을 확립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국가의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는 과정에서 신앙의 다양성이 배제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혈사태를 불러오기도 했다.

예수의 신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인간의 무력함을 나타내는 징표가 되고 있다. 곧 예수는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신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를 신격화하면서 얻는 장점도 있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함으로써 원죄와 죽음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고 부와 영생, 건강을 기원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은 로마의 다른 신인 미트라나 주피터(유피테르)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결국 정치와 종교적 이유로 예수를 다른 신들과 맞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예수의 인성 거세에 적극 동조한 것은 정치범으로 처형당했던 역사적 예수의 위험성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면 예수는 단순히 예배 대상이 아니고 삶의 모범이자 스승이며 친구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노력 여하에 따라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예수의 과도한 신성 부여가 갖는 모순과 신앙적 왜곡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견해들이 나왔지만 그중에서 돋보이는 인물이 다석 유영모 선생이다.

다석은 “예수가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린 것을 믿으면 영생한다고 믿는 것은 나와 상관없다”, “왜 예수만 외아들입니까? 하느님의 씨를 타고나, 로고스 성령이 ‘나’라는 것을 깨닫고 아는 사람은 다 하느님의 독생자입니다.”(다석강의)

다석은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의로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속죄양이 된 것은 맞지만 그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주술적 신앙은 거부했다. 즉 개별적 주체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예수가 추구했던 본래적 속죄의 의미에 부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의 밑바닥에서 남을 위해 고통당하는 모든 존재들이 대속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오늘날 이웃에 대한 관심보다는 죽은 예수의 국물만 마시면서 도덕적 책임을 방기하는 기독교인들이 아로새길 만한 내용이다. 물론 이것은 비슷한 양태를 보이는 타 종교에도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백찬홍(씨알재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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