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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고침> 문화(시의 천재에서 김일성 찬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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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시의 천재에서 김일성 찬양까지…북방시인 이용악의 모든 것

곽효환·이경수·이현승, 월북시인 '이용악 전집' 첫 출간

"최상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회통했던 시인"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북방의 시인' 이용악(1914~1971)은 백석(1912~1996)과 함께 1930년대 후반기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북방의 호방함을 품은 담백한 서정과 당대 민초들의 힘겨운 현실을 세밀히 살핀 그의 시는 일제강점기 모더니즘의 한 획을 그었으나 월북 후 북한 문단의 주류로 활동한 경력 탓에 그의 이름은 국문학사에서 금단의 영역에 속했다.

한때 금기시됐던 이용악의 거의 모든 작품이 수록된 '이용악 전집'(소명출판 펴냄)이 국내에서 처음 출간됐다. 고려대대학원에서 최동호 교수를 사사한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상무(시인), 이경수 중앙대 국문과 교수(평론가), 이현승 고려대 민죽문화연구원 연구교수(시인) 등 세 명이 지난 2년간 작업한 결과다.

그동안 이용악의 작품은 한국전쟁 이전에 발간한 시집 '분수령'(1937), '낡은 집'(1938), '오랑캐꽃'(1947), '이용악집'(1949) 등과 해방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 정도만 책으로 묶였다. 그나마 이들 책은 절판된 상태였다.

이번에 출간된 '이용악 전집'은 다섯 권의 시집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 '이용악집' '리용악시선집'(1955)을 비롯해 시집 미수록 시, 이번에 발굴한 산문집 '보람찬 청춘'(1955)과 산문, 좌담 자료까지 망라한다. 그야말로 전집의 위용을 갖췄다. 1부는 이용악 시의 원문을, 2부는 1부의 내용을 현대어 정본으로 옮긴 내용을 담았다. 3부는 확보 가능한 이용악 산문과 좌담회 자료 등을 발표 순서대로 실었다.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이끈 곽 상무를 10일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에서 만났다. 그는 이번 전집이 이경수 교수, 이현승 교수뿐 아니라 자료를 함께 찾은 대학원생들과 함께한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용악을 공부했는데 그동안 변변한 연구자료가 없었다.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4년 완성을 목표로 2013년 이맘때 즈음부터 전집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직장인으로서 쉽지 않았다. 이경수 교수와 이현승 교수가 전집을 내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같이 모아서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2013년 한 해는 자료를 모으는 데 주력했다. 기존에 출판된 이용악 관련 텍스트와 논문, 북한 자료 등 닥치는 대로 모았다. 이 과정에서 이용악이 북에서 쓴 '보람찬 청춘' 등 다양한 자료를 입수했다. 지난해에는 찾은 자료를 분류하고 교정보며 원고 작업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산문집과 몇몇 산문도 발굴했고, 북에서 한 좌담도 찾았다. 자료를 찾는 게 가장 어려웠다. 찾은 자료를 분류하고 해석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어떤 산문은 원고지 7~8장 분량을 해독하는데 셋이 머리를 맞대고도 하루가 걸렸다. 해독이 안 되면 동시기 다른 작품을 참고했다. 그런 작업이 지난했다"고 설명했다.

이용악의 주요 작품은 지난 1988년 해금과 함께 출간된 윤영천 인하대 전 교수의 '이용악 시전집'에 소개된 바 있다. 이번 전집의 가장 큰 특징은 북에서 활동한 이용악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제"를 무찌르자는 내용을 담은 '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 김일성 전 주석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을 그린 '평양으로 평양으로'처럼 어용에 가까운 시들도 가감 없이 수록했다. 1930년대 후반 서정주, 오장환과 함께 문단의 삼재(三才)라 불린 한 문인이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어떤 변곡점을 거쳤는가. 그리고 역사의 격랑 속에서 지식인이자 문인은 어떻게 거친 파도를 헤쳐나갔는가에 대한 시선이 전집에 담겨 있다. 요컨대 전집의 후반부는 한 천재에 대한 기억이자, 역사의 물결에 휩쓸린 한 개인에 대한 '미시사'라 할 수 있다.

곽 상무는 "우리는 온전한 이용악이 아니라 반쪽짜리 이용악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작가론적인 관점에서도, 문학사적인 관점에서도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이 북에서 쓴 작품들까지 같이 묶어서 평가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함북 경성 출신으로 한국전쟁때 월북한 이용악은 1968년 공화국 창건 20주년 훈장을 받았다. 평소 잘 쓰지 않았던 산문까지 써가며 정권에 대해 찬양했지만 내각 부수상까지 지낸 홍명희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한 한설야처럼 문단 주류에 속하진 못했다.

지난 2005년 남북작가대회 참석차 북한을 방문했던 곽 상무는 "당시 70대 북한 원로작가로부터 이용악이 '평양에서 잘 살다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홍명희나 한설야처럼 고위직에 올라간 게 아니지만 문인으로서 큰 탈 없이 안정된 생활을 한 것 같다. 박태원이나 이용악 같은 문인은 정치적 욕망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체제에 순응하면서 몸을 낮추며 글을 썼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에서 보인 그의 행보는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적어도 1930년대 후반부터 40년대 말까지 그의 시는 "최상의 리얼리즘과 최상의 모더니즘이 회통(會通)했던" 역작이라고 곽 상무는 소개했다.

"차알싹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 가시내야 /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 아닌 봄을 불러 줄게 /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휘 날리며 /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전라도 가시내' 중)

일상어를 통해 놀라울 정도로 명징한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점에서 모더니스트적이고, 척박한 현실에 몸담은 시적 대상을 묘사하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리얼리즘적인 요소도 강하다고 곽 상무는 설명했다.

그는 "이번 전집을 토대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독자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 상무는 전집을 함께 쓴 이경수 교수·이현승 교수와 함께 이용악연구서 발간을 추진 중이다. 그는 이르면 올해 연말 출간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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