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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친이 5년 전 ‘세종시 수정안 실패해도 박근혜에 흠집, 남는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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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친박 ‘권력 다툼’에 이용된 세종시 수정안

‘성공하면 정운찬 대망론으로 박근혜 견제’ 당시 회자

2004년 당대표 시절부터 ‘악연’… 대선 경선 때 전면전

이명박 전 대통령(74)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으로 세종시 수정안 문제가 또다시 여당 계파갈등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청와대에서도 ‘유감’이라고 반박에 나서면서 해묵은 갈등이 재연됐다. 이미 4년7개월 전 폐기된 세종시 수정안이 여전히 양측의 충돌을 야기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양측이 세종시를 ‘정책’이 아닌 여권 내 ‘권력다툼’ 차원에서 활용해 온 탓이다.

특히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등 당시 여권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실패 유무와 상관없이 ‘박근혜 죽이기’로 설계됐다는 인식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던 것이 문제의 근원이었다. 당시 주류였던 친이계도 이런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경향신문

서점에 깔린 ‘이명박 회고록’ 1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를 찾은 한 방문객이 서가에 진열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살펴보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우선 수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당시 이를 주도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 ‘대망론’을 띄울 수 있다는 것이 친이계 생각이었다. 부결되더라도 반대 여론을 이끈 박근혜 전 대표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다는 계산도 했다. 당시 친이계 한 의원은 “박근혜의 이미지가 ‘핍박받는 여성지도자’에서 ‘무소불위, 타협불가의 고집불통’으로 바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친박계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당시 박 전 대표는 ‘국가균형발전’ 원칙을 강조하면서 “세종시는 소신”이라고 강조했지만, 친박계 의원들은 친이계의 다른 속내에 더 발끈했다. 2010년 2월24일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양쪽의 정치적 속내가 드러난 자리였다. 5일 연속 열린 의총에서 친이계는 원안을 고수한 박근혜 당시 전 대표를 ‘제왕적 총재’에 빗대 비판했다. 친박계는 ‘새빨간 거짓말’ ‘흠집내기용 의총’이라며 아예 자리를 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강도론 설전’도 양측 간 골을 깊게 팼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던 2010년 2월 당시 이 대통령이 “강도가 왔는데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둘 다 피해를 본다”고 한 게 발단이 됐다. 자신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인 박 전 대표는 “집안 한 사람이 마음 변해 강도로 돌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맞받았다. 청와대와 박 전 대표가 서로 사과까지 요구하는 촌극이 벌어졌지만 소동이 가라앉은 후에도 양쪽에 생채기를 남겼다.

세종시 문제를 딛고 양측이 ‘표면적 화해’에 도달한 것은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지 두 달 만인 2010년 8월21일이었다. 이 대통령 초대로 이뤄진 1시간30분간의 청와대 회동에서 둘은 ‘정권재창출’을 위한 협력을 약속했다. 정진석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후 자신의 저서에서 “그날 이후부터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단 한번도 부담되는 언사를 한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8·21 회동’에 대해선 함구했다.

친이·친박의 악연은 2004년 박근혜 대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재오, 박형준, 심재철 의원 등이 대표적 ‘반박’ 인사로 박 대표를 견제했는데, 이들은 2007년 대선 경선 때 친이계 핵심인사가 됐다. 2006년 이재오·김무성 의원 간 원내대표 경선 역시 친이·친박 대리전으로 읽혔다. 2007년 대선 경선 때는 갈등이 전면전으로 비화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는 BBK 실소유주 의혹으로, 이명박 후보 캠프는 ‘과거사’ 문제를 내세워 네거티브를 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2008년 18대 총선에서 친박 중진이 줄줄이 탈락한 ‘친박 공천학살’도 벌어졌다.

그런 만큼 이번 갈등은 일과성이 아니며 앞으로도 ‘봉합’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친박 일각에선 이미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발언을 자제하라”고 했지만, 친이 쪽에선 “가만히 당하지는 않겠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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