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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토토가ㆍ뮤지컬 투잡, 힘든 만큼 행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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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주연 바다

아이돌그룹 S.E.S 때 노래ㆍ안무

뮤지컬 연습 후 새벽 2시까지 준비

무리했지만 결과 좋아서 다행

프랑스 뮤지컬 스타일 혹평에

장면 삭제ㆍ대사 템포 등 수정 중

5월엔 가수 복귀, 콘서트 열어요
한국일보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릿 오하라를 연기하는 바다. 쇼미디어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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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와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모두 향수라는 키워드로 설명이 돼요. 어린 시절 즐겨 들었던 음악, 과거에 누구나 한번쯤 읽고 보며 눈물 흘렸던 소설과 영화를 추억하는 거잖아요. 누군가의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준비과정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지난해 연말 바다(35)는 말 그대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올 1월 개막한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릿 오하라로 분하기 위해 매일 연습에 매진했고 동시에 MBC 무한도전 ‘토토가’편 출연을 위해 S.E.S 시절의 노래와 안무를 다시 익혀야 했다. 일에 있어서 만큼은 철두철미하기로 소문난 바다인 만큼 어느 한 쪽도 소홀할 수 없었다.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뮤지컬 연습을 끝내고 다시 새벽 2시까지 ‘토토가’ 무대를 준비했다.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러나 바다는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를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만큼 즐거워했다. 그는 “‘토토가’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뮤지컬 제작사 대표님께 ‘추억과 관련한 방송분인 만큼 작품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씀 드렸다”며 “결국 두 일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에 양쪽 모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준비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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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 나온 것처럼 임신 중인 유진을 대신할 인물로 서현을 섭외한 것도 바다다. 그는 “성실한 사람이 유진의 빈 자리를 채워줬으면 했는데 같이 뮤지컬을 준비하던 서현(서현은 바다와 함께 스칼릿 역에 더블캐스팅 됐다)이 눈에 들어왔다”며 “마침 SM 후배이기도 해서 어려운 부탁을 했다”고 말했다.

‘토토가’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1990년대 음악이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을 장식했고 길거리에서도 당시의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지는 등 대중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다”며 웃은 바다는 “다소 무리하다고 할 수 있는 스케줄을 추진했는데 결과가 좋아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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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일이 다 순탄하게 끝난 것은 아니다. 찬양일색인 ‘토토가’와 달리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개막 첫 주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내러티브가 밋밋하다” “뜬금 없는 퍼포먼스가 극의 흐름을 깬다” 등의 지적도 있었다. 바다는 “준비 기간에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부분”이라며 “그럼에도 라이선스 뮤지컬 특성상 함부로 작품에 손을 댈 수 없었기 때문에 배우와 스태프 모두 일단 최선을 다해 연습에 매진하는 게 관객에 대한 도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생각은 모두 접어두고 완벽한 스칼릿이 되기 위해 소설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고 영화를 100번 넘게 봤다.

작품에 쏟아졌던 혹평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한 평가라기보단 프랑스 뮤지컬 자체에 대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바다는 “한국 뮤지컬과 프랑스 뮤지컬은 유명한 대사나 넘버를 다루는 스타일이 다르다”며 “예를 들어 한국 뮤지컬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는 대사를 임팩트 있게 전달하려 한다면 프랑스 뮤지컬은 크게 힘을 주지 않고 대사를 처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 제작자들은 힘을 주는 장면이 많거나 지나치게 극적인 엔딩이 포함된 뮤지컬을 촌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디까지나 양국의 정서적인 차이,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미권 뮤지컬과 차별화한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스타일이다.

바다는 작품이 개막하면 이 같은 차이점을 분명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원제작자가 한국 관객의 반응을 보면 분명 한국 정서에 맞게끔 작품을 수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며 “결국 막이 오르면 해소될 문제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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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개막 일주일이 지나면서 극이 수정되기 시작했다. 내러티브를 살리기 위해 대사와 넘버의 템포를 조정했고 “뜬금 없다”고 지적받았던 스칼릿의 공중부양 장면을 삭제했다. 스칼릿의 딸이 죽은 후 흐르던 힙합음악도 타악기를 빼고 멜로디만 남겼다. 매일 바뀌다시피 하는 작품을 숙지하느라 힘들 법도 하지만 바다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현재 계속 작품을 수정하며 정서적으로 이해가 안 갔던 부분을 풀어나가는 중”이라며 “이제 정말 제대로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바다의 인생에서 S.E.S를 빼놓을 수 없다. 1997년 데뷔한 S.E.S는 미국 진출이 논의될 정도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걸그룹이었다. 만약 그때 정말로 미국에 진출했다면 바다는 지금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있을지도 모른다. 미국 진출 무산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바다는 전혀 아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당시 유진이 ‘전 세계 사람이 우리를 알아보면 과연 행복할까? 해외 어딘가에는 우리를 못 알아보는 곳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며 “아마 내가 계속 설득했다면 유진도 결국 믿고 따라와줬을 테지만 그 말을 듣고 내 스스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들이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생각해서 항상 감탄한다”며 “다만 아직도 멤버들끼리 모이면 긍정반 부정반으로 ‘그때 미국 진출했으면 우리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됐을까’라고 말하며 웃는다”고 덧붙였다.

S.E.S 멤버들은 해체 이후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섰다. 유진은 연기자로, 슈는 한 남편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바다는 안양예고 시절 전공이었던 연기를 하기 위해 무대로 뛰어들었다. 연기자로 첫 발을 내디딘 매체가 TV나 스크린이 아닌 무대라는 점도 놀라웠지만, 첫 번째로 선택한 작품이 ‘페퍼민트’라는 창작 뮤지컬이었다는 점은 더욱 의아했다.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던 톱스타가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아닌 한국창작극에 도전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행보다. 바다는 “밑바닥 작업부터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었다”며 “이유리 교수와 글도 함께 써가면서 참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으로는 연기 인생을 길게 본 그의 혜안이기도 했다. 그는 “창작극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야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 후에 평론가들이 나쁘지 않게 글을 써준 것도 ‘페퍼민트’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걸그룹 출신 중에 뮤지컬 배우로 온전히 자리를 잡은 사람은 바다와 핑클 출신 옥주현 둘뿐이다. 걸그룹 시절부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탓인지 언론은 뮤지컬에서도 이들을 라이벌 관계로 엮으려 한다. 이 흐름에 편승해 얄팍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배우 옥주현을 어떻게 평가할까. 바다는 “동갑내기 친구임에도 보면 볼수록 정말 현명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배역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배역이 정해지면 온 힘을 기울여 작품을 준비하는 최고의 배우”라고 평가했다.

뮤지컬에 온 힘을 쏟고 난 후 바다는 다시 가수의 자리를 찾아갈 계획이다. “5월에 콘서트를 열 계획”이라는 그는 “슈도 육아스트레스를 풀러 온다고 했다”고 귀띔해줬다. 뮤지컬 여배우의 최고 전성기라는 30대 중반 나이로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바다지만, 팬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 하는 모습에는 여전히 S.E.S 리더였던 10대 소녀의 수줍은 웃음기가 묻어났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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