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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그리스 부채협상, 獨과 과거사 전쟁으로 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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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프라스총리, 취임선서 직후 첫 일정으로 反나치묘역 참배 "강탈당한 돈 돌려받아야"

독일 "戰後 배상 끝난 일"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41) 신임 총리는 26일 취임 선서 직후 아테네 동남쪽 인근 소도시 카이사리아니를 찾았다. 1944년 약 200명의 그리스 레지스탕스(저항군)가 독일 나치에 의해 처형된 곳이다. 치프라스는 이들의 추모비에 붉은색 장미꽃을 올렸다.

치프라스가 총리로서 첫 공식 일정으로 나치 학살 현장을 방문한 것은 상징적이다. 그리스에 긴축 재정을 강요해온 독일의 약점인 과거사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 간의 빚 탕감을 위한 협상이 '역사 전쟁'으로 번질 개연성을 암시한 것이기도 하다.

헌화를 마친 치프라스는 "나치를 용서하기 위해선 2차 세계대전 중 그리스가 나치에 강탈당한 돈을 돌려받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강탈당한 돈'은 그리스 측이 아직 정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독일의 전쟁 배상금이다.

독일은 1960년대 그리스에 배상금으로 1억1500만마르크를 지불하고, 이와 별도로 강제 노역에 동원된 희생자에게 개별 배상을 했다. 하지만 이 배상금에는 나치의 강요에 의해 그리스국립은행이 무이자로 제공한 4억7600만마르크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리스 측 주장이다.

그리스 정부는 2013년 이 차입금과 사회 기반 시설 복구 비용 등을 포함해 현재 가치로 독일이 그리스에 총 1620억유로(약 197조원)를 전쟁 배상금으로 더 지불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는 그리스가 국제 채권단에서 지원받은 2400억유로(약 291조원)의 67.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반면 독일은 전후(戰後) 배상 문제는 국제 조약에 따라 이미 끝났다는 입장이다. 독일 재무부의 마르틴 야거 대변인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에 "그리스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추가 배상 요구가 없었으며, 전후 7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런 주장은 정당성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의 과거를 거론하며 그리스의 입장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최근 TV 인터뷰에서 "독일과 프랑스도 2차 대전 후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00%에 달했다"며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에 부채의 마지막 한 푼까지 모두 상환하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이성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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