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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미당 서정주 시 전집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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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시장 불황에 3년 전부터 출판사마다 거부

유족·제자들 물색 끝 ‘은행나무’와 계약

탄생 100주년인 내년 5월 출간 예정

2015년 새해는 시인 미당 서정주(1915~2000·사진)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다. 오는 24일로 타계 14주기를 맞은 미당은 한국 대표시인의 한 명으로 꼽히지만 그의 시 전집은 시중에서 살 수 없다. 한 시인은 “대학에서 강의교재로 쓰기 위해 학생들에게 <미당 시 전집>을 준비하라고 했더니 2년여 전부터 절판된 상태라 살 수 없다고 하더라”며 “한국 출판계에서 미당의 시 전집을 구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라고 물었다.

실제 인터넷 서점을 포함한 서점에서는 미당의 시 전집을 팔지 않는다. 민음사가 <미당 시 전집>(전3권)을 1983년부터 내왔지만 3년 전쯤 계약이 끝났다. 이후 저작권을 가진 미당 유족과 제자 측은 수년간 전집을 낼 출판사를 물색했지만 여러 차례 거절당한 뒤 올해 초 출판사 은행나무와 계약했다. 은행나무에서 나올 미당 시 전집은 내년 봄쯤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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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육명심씨 사진집 <육명심의 문인의 초상>에 실린 서정주 시인 모습 /열음사 제공


30년가량 미당 전집을 내온 민음사와의 계약이 종료된 건 전집을 확대하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족과 제자들은 2011년쯤 기존 전집에 포함되지 않은 시, 미당이 생전에 쓴 산문을 모두 포함시켜 전집을 새로 내자고 제안했다. 양측은 수차례 논의를 했지만 끝내 합의하지 못했다. 미당 제자인 윤재웅 동국대 교수(53)는 “미당 탄생 100주년인 2015년을 맞아 문화운동의 차원으로라도, 전집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그에 맞춰 발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미당의 전모를 담은 전집이 있어야만 이후 세대들도 미당을 제대로 알고 연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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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은행나무가 올해 초 펴낸 미당 서정주 시 선집(위)과 민음사가 출간했던 시 전집.


미당 전집은 1972년 출판사 일지사가 시인의 시·산문을 망라한 <서정주 문학전집>(전5권)을 낸 게 최초다. 이후 민음사가 미당의 시집 14권을 묶은 <미당 시 전집>을 내고 증쇄해왔지만 계약이 끝난 시점부터는 추가로 발간하지 않았다. 1994년 민음사는 시 외에도 전집에 <미당 자서전>(1·2권)을 포함시켜 발간했지만 이도 절판된 지 오래다.

유족들이 민음사에서 출판권을 회수한 뒤 윤 교수가 새 전집을 낼 출판사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출판시장이 어렵다 보니 미당 시 전집이나 자서전은 팔려도 15~20권쯤 될 제대로 된 전집은 잘 안 팔릴 테니 힘들겠다고 하는 거지요. 미당의 문학적 성취를 떠나 논란이 많은 분이니까 부담스러워하기도 하고요. 고은 시인처럼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거나, 소설가 김동리처럼 제자들이 돈을 모아 전집을 낸다면 모를까, 미당처럼 국내에 자녀도 없는 고인이 된 시인의 전집을 내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상황의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이런 문학출판계 상황이 창피한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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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은행나무가 올해 초 펴낸 미당 서정주 시 선집(위)과 민음사가 출간했던 시 전집.


은행나무가 낼 미당 전집은 총 30여권으로 기획 중이다. 은행나무 측은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올해 내내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내년 미당 탄생일인 5월 전후로 시 전집을 먼저 낼 것”이라고 밝혔다. 미당이 남긴 900여편의 시는 물론 전래동화와 여행기, 자서전, 시론 등을 전부 집대성할 계획이다. 표기는 미당이 작품을 쓴 당시 표기법을 살리기로 했다. 전집 편찬위원으로는 윤재웅·이남호(고려대)·최현식(인하대) 교수, 이경철 문학평론가, 전옥란 방송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윤 교수는 “시중에 미당 작품을 골라 내놓은 선집은 많지만 그것만으로는 미당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며 “미당은 친일 논란이 있지만 보물 같은 시인이기도 하다. 미당을 칭송하라는 게 아니라 완전한 전집을 통해 객관적 자료가 생기면 그걸 보고 비난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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