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산소를 발견한 사람은 영국의 조지프 프리스틀리로 알고 있다. 하지만 프리스틀리의 발견 이전에 이미 셸레가 산소의 존재를 책에 남겨뒀다. 그러나 인쇄업자 실수로 셸레의 논문이 출간되지 않은 사이 프리스틀리의 연구 성과가 먼저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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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령이던 포메라니아에서 태어난 셸레는 14살에 약제상의 실습생으로 들어간다. 그는 화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 여러 가지 물질을 실험하는 데 열중했다. 실험과 공부를 통해 셸레는 기술과 지식을 쌓게 된다. 그는 타르타르산에서 이타르타르산 칼륨을 처음으로 분리하고 이 논문을 당시 스웨덴의 명망 높은 화학자 토르베른 올로프 베리만에게 보낸다. 하지만 베리만이 셸레의 논문을 무시하면서 성과가 묻힐 뻔 했지만 이후에 안데르 요한 레치우스가 스톡홀름 과학 아카데미에 셸레의 논문을 보고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1775년에 셸레는 스톡홀름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됐다.
셸레는 수많은 원소와 화합물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1774년에 이산화망간을 분석해 염소와 바리타(산화바륨)를 발견했고 망간이 포함된 염의 성질을 밝혔다. 1775년에는 비산을 분석해 비화수소와 아비산구리를 발견했다. 1776년에는 방광 결석을 연구해 처음으로 요산을 발견했다.
셸레는 저서를 단 한 권만 남겼는데 이 책에 산소를 발견한 기록이 남아 있다. ‘공기와 불에 관한 화학적 관찰과 실험’은 1777년에 출판됐다. 하지만 책에 실린 연구는 대부분 1773년에 이미 마무리 됐다. 1775년에 원고가 인쇄업자에게 넘겨졌지만 인쇄소의 실수로 출간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이 책에서 셸레는 산소를 ‘불 공기’라는 이름으로 소개했고, 이에 따라 1774년에 산소를 발견한 프리스틀리보다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셸레는 화학 실험을 하며 재료의 냄새와 맛까지 분석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는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사망했는데, 독성 물질까지 맛을 본 것이 급작스런 건강악화의 원인으로 알려졌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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