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노점과의 공존, 안 되는 걸까

댓글 4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법대로 단속” “생존 위해 영업” 지난 11월부터 서울 강남구청을 시작으로 지자체와 노점상들의 겨울전쟁이 시작됐다. 단속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집기나 판매물품 파손에 따른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두 합법화해 세금을 걷으면 해결될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업형 노점, 생계형 노점이 따로 있고 수입규모도 노점형태도 천차만별이다. 상가 등 일반 상인들의 불만을 외면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노점상의 겨울전쟁은 끝낼 수 없는 것일까, 그 속을 들여다봤다.

노점의 겨울은 단속과 함께 온다. 시민들이 겨울 거리의 노점에 대해 호떡이나 붕어빵, 컵에 담긴 어묵 국물을 떠올릴 때, 노점상들은 예고된 단속 일정에 대비할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단속은 단속반과 노점상 모두 맨 얼굴을 드러내게 만든다. 법·제도의 이름으로 영업을 막으려는 쪽이나, 생존권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가려는 쪽이나 밀리고 밀어내는 동안 만큼은 ‘투쟁’이라는 인간의 본 모습에 더없이 충실해 있다. 합법과 불법의 다툼은 그 다음의 일이다.

물론 단속이 겨울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은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잦은 단속을 벌이는 계절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연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한 해 동안의 노점 단속 예산을 모두 집행하고, 또 그만큼의 실적을 바탕으로 다음해 예산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점상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기초지자체일수록 겨울이 오는 것도 빠르다. 단속 예산규모에서 수위를 다투는 서울 강남구청을 필두로 곳곳의 지자체들이 11월부터 강경한 단속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세금 낼 수도” “얼마나 번다고…” 엇갈려

노점상들에게 ‘대목’이라 할 수 있는 초겨울이 단속의 대목이기도 한 현실은 소모적인 충돌만 되풀이하는 결과를 낳는다. 단속에 필요한 용역인력을 쓰는 비용은 물론이고, 단속과정에서 파손된 집기나 판매물품 등의 비용 소모도 적지 않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노점문제를 합법과 불법의 두 영역으로 명확하게 구분해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현실의 노점과 노점상은 합법과 불법 양편에 모두 발을 디디고 있기 때문이다.

“노점 하는 사람들한테 세금 내면 단속 없애준다고 해봐요. 그럼 백이면 백 다 세금 낸다고 할 걸!” 노점상인 김모씨(54)는 단속과 강제집행이 지긋지긋하다. 서울 강남대로에서는 11월 들어 이미 두 차례 단속반이 들이닥쳐 강제집행을 실시한 바 있다. 11월 27일에도 또다시 단속이 예고돼 노점상인들이 전날 밤부터 밤새 농성하며 노점 주변을 지켰다. 27일은 겨우 강제집행 없이 넘어갔지만 단속 때문에 생기는 물리적·정신적 비용을 감안하면 ‘세금에 도로점용료 내고’ 합법적으로 장사하고 싶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11월 19일 용역인력을 동원한 강남구청의 강제집행 과정에서 용역반과 노점상 양쪽 모두 부상자가 나오는 등 충돌은 어김없이 불상사를 낳았다. 양쪽 다 몸을 사린 27일에는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노점상들은 단속인력이 철수한 뒤에도 한참 동안 농성을 풀지 않고 경계하는 태세였다. 노점을 닫은 채 모여 있는 노점상인들을 바라보는 행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지나가던 대학생 이학성씨(26)가 기자에게 “떡볶이 뒤엎고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봐도 어느 순간부터는 동정심조차 안 들더라”고 말하는 모습을 김씨는 침통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경향신문

서울 중구 명동거리를 지나는 인파의 한가운데로 어묵 등 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노점이 성업 중이다. / 이상훈 선임기자


김씨 말대로 노점상 전부가 ‘전면 합법화’라는 해결책을 원할까.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솔직히 말해 이 장사 하면서 세금까지 내야 되면 얼마가 남겠어요. 단속 피하는 재주는 다 있고 어쩌다 걸려도 과태료 5만원 내면 땡인데…. 노점이라고 다 같은 노점이 아니라니깐.” 서울 서대문구·마포구 일대를 돌며 저녁시간대에 화물차 뒤칸에서 순대와 만두류를 파는 노점상인 박모씨(49)의 의견은 정반대였다. 박씨의 표현처럼 “한 점 부끄럼 없이” 밝힌 박씨의 한 달치 노점 수익은 대략 180만~210만원 수준이다.

만두를 찌는 찜기 사이로 올라오는 김을 맞으며 박씨가 말했다. “먹는 게 그래도 마진이 많이 남으니까 한 건데, 요 정도 벌어 가지고는 입에 풀칠이나 하지 뭘….” 박씨 말대로라면 노점도 저마다 수익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정책을 도입하더라도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늘 있을 수밖에 없다. “명동 같은 데 있는 노점들 봐요. 그 사람들한테는 세금 나와 봤자 푼돈일 거라고요. 단속도 폼만 내는 거고…. 반대로 나는 세금 더 내느니 단속 걱정 있더라도 차라리 지금이 나은 걸.” 이른바 ‘기업형 노점’과 영세한 ‘생계형 노점’ 사이의 거리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얘기다.

상권에 따라 수십만원~억대 수입 극과 극

과연 기업형 노점과 생계형 노점 사이의 간극은 어느 정도일까. 자신들의 수입을 밝히기 꺼려하는 것은 노점상인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상인들은 자신들의 수입을 줄여 말한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그나마 객관적으로 이들의 수입을 파악해줄 수 있는 납품업자에게 문의했다. 노점을 비롯해 일반 분식집까지 어묵과 국물 재료 등 식재료를 납품하는 업자 이모씨(44)는 어묵 하나만으로 한정해도 노점 한 곳당 월 매출은 수십만원에서 최대 800만원대까지 편차가 크다고 말했다. “가격 매기기에 따라 다르지만 어묵 한 꼬치에 500원으로 잡으면 국물 재료까지 해도 재료비는 30% 정도거든요. 많이 나가는 데는 겨울 동안 한 달에 거의 100㎏ 가까이도 나가니까 순수익만 해도 500만~600만원 되겠죠.”

이렇게 ‘대박’을 치는 노점은 건물에 매장을 갖고 있는 분식집보다 잘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수는 상권당 많아야 한두 곳에 불과하다. 서울지역의 경우 강남, 종로, 명동, 신촌 등 인파가 몰리는 상권에서나 ‘억대급 연봉’이 가능할 뿐 대부분의 노점은 도시노동자 평균임금(2013년 기준 월 329만9000원)에 못 미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어묵 외에도 계란빵, 붕어빵, 호떡 등 간단한 조리를 거쳐 파는 음식 재료를 납품하는 박씨는 거래 노점 80여곳 중 월 납품액이 100만원을 넘기는 곳은 20%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메뉴는 달라도 마진율은 거의 60~70%로 비슷하니까 재료비로 100만원도 안 나간다는 말은 순수익 200만원이 될까말까 한다는 얘기지.” 단속에 걸렸을 때 내야 할 과태료, 매대 이용료 및 보관료 등을 합하면 순수하게 노점상에게 떨어지는 돈은 더 적어진다.

‘노점 1번지’로 불리는 서울 명동에 자리 잡은 노점들은 기업형 노점의 대표격이다. ‘복지회’라는 이름을 달고 조직된 270여개의 노점들은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몰려드는 상권의 특성상 막대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점 공간을 점유한 상인이 가족들에게만 물려줄 정도로 알짜배기인 이 상권 노점의 매출규모는 폐쇄적인 노점상 조직의 특성상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명동 한가운데 거리는 들어갈 꿈도 못 꾸지. 좀 떨어져서 남산 가는 주변에 있던 공사장 펜스에다 ‘벽걸이’식 액세서리 노점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두 달 동안 1000만원 정도는 남겼던 것 같아.” 과거 직접 노점을 꾸리기도 했던 납품업자 권모씨(50)의 말로 미뤄 상권 중심부를 장악한 기업형 노점의 수익규모를 짐작할 뿐이다.

“소모적 단속 말고 신사협약부터 맺어야”

전국 단위로 노점의 분포와 매출규모 등을 파악한 자료는 아직 없다. 서울시가 파악한 서울시내 노점 수는 지난해 기준 약 8800곳에 달한다. 하지만 계절에 따라 노점 영업이 증감하는 폭이 큰 데다 축제나 대형 행사 등 이벤트 위주로 영업하는 노점의 수는 집계하기조차 어려워 현실적으로 정책 대상이 될 노점의 수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여기에 일반 상가 건물에 매장을 갖고 있거나 임대 중인 상인이 매장 앞 보도를 이용해 노점을 여는 식의 영업형태까지 있다. 노점상인들의 구성은 천차만별인 데 비해 노점정책은 강경 단속과 암묵적 인정 사이에서만 왔다갔다 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만 놓고 보면 (노점상들이) 불법인 거 우리가 잘 알죠. 그런데 강제집행해도 얼마 안 있으면 또 그 자리에 들어와버리니까 사실 예산 낭비인 면도 있어요. 그렇다고 전면 합법화하면 일반 상인들이나 주민들 민원에다가 법령에 조례에 엄청 복잡해져서 들들 볶일 텐데, 그건 그거대로 정착할 때까지 문제 많을 거예요.” 익명을 요구한 한 구청의 관계자도 속내는 복잡했다. 그는 오히려 법이 현실을 그대로 다 담을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서 물리력을 쓰지 않기로 하는 양쪽 간의 신사협약을 맺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노점단체 관계자와도 의견이 통했다. 전국민주노점상연합의 최인기 사무처장은 “일단 소모적인 단속만이라도 멈추고 서로 조금씩이라도 신뢰를 회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은 서로가 너무 불신이 커 한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말했다. 거리를 불법점유한다는 인식을 조금만 전환하면 거리를 합법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금이 노점상들의 아킬레스건인 건 맞아요. 인정 안하는 것도 아니고, 자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대기업들은 더 많이 탈세하고, 일반 상가의 상인들도 길에다 비품 내놓고 도로 무단점유하는 부분도 많잖아요. 형평성 차원에서 그 정도만이라도 양해를 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경향신문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이 분식을 판매하는 한 노점 포장마차를 찾아 음식을 사 먹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노점을 보는 시민들 인식은 ‘긍정과 부정 사이’



지난해 2월부터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일대에 ‘컵밥 단속’이 시작됐다. 컵밥은 종이컵 모양의 일회용 밥그릇에 밥과 반찬을 담아 간편하게 먹는, 노량진의 대표적인 노점 음식이었다. 컵밥 노점은 단속을 피해 수주에서 수개월간 자리를 떴다가 돌아오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불만이 커진 당사자는 다름 아닌 주머니가 가벼운 고시준비생과 재수생들이었다.

“값도 싸지만 공부할 시간 아낀다는 것 때문에 길거리에 서서 후다닥 컵밥을 먹는 거였거든요. 매일은 아니라도 한 번씩 먹기엔 나쁘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없어졌을 땐 뭔가 씁쓸했죠.” 다행히 지금은 시험에 합격해 노량진을 떠난 임지연씨(28)는 컵밥 노점이 사라진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일반 식당에서도 컵밥 메뉴를 팔기도 했는데, 가격을 올려서 파는 걸 보니 ‘이 돈 주고 사 먹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컵밥 외에도 떡볶이, 토스트 등 간단한 요깃거리 음식들도 자취를 감췄다. 단속이 뜸해진 틈을 타 돌아온 노점을 임씨의 코가 먼저 반겼다. “골목을 돌아서 노점 음식 냄새가 나니까 저도 모르게 침이 넘어가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노점을 바라보는 인식이 임씨처럼 호의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노점상들도 피부로 느낄 정도로 여론은 악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지역을 서울 서초구에서 관악구로 옮겨 영업 중인 노점상인 신모씨(62)는 자리를 옮긴 이유로 노점 주변 상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민원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곱창이랑 순대볶음을 주로 저녁시간에 파는데, 주변에 상가가 별로 없는 주택가 주변에서 장사를 해도 경찰이 오더라고요. 신고 들어왔으니까 (장사를) 접든가 옮기든가 하라데요.” 경찰이 직접 과태료를 부과하진 않지만 반복되는 민원과 신고에 신씨는 결국 자리를 옮겼다.

딱히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노점단체 회원들과의 논의 끝에 ‘경쟁’ 때문에 여론이 나빠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신씨가 이전에 자리 잡았던 골목 주변으로도 품목은 다르지만 노점이 늘었던 바 있다. “알고 보니 제가 영업 안하는 낮시간에도 고물상부터 해서 각종 ‘차장사’ 트럭들이 늘었더라고요. 그러다 주민 차량이랑 사고도 나고 주차 시비도 생기고 그랬다니까, 그러면 자연히 민원이 많아졌겠죠.” 그렇다고 해서 영업할 자리를 옮기기는 쉽지 않다. 단속을 쉽게 피할 수 있고, ‘자릿세’를 안 내도 되는 구역을 찾다보면 또다시 노점이 몰려 경쟁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에는 경기가 안 좋으니까 노점문제도 더 해결이 안 되는 거겠죠. 이 바닥도 부익부 빈익빈인데 일부 기업형 노점들에 대한 안 좋은 시각이 영세 노점에도 쏟아지니까….” 한 노점단체 관계자는 그나마 노점 조직에서는 영업시간과 교대제 등 규약이 있는데 그마저도 거부하며 탈회할 경우 경쟁 과열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거리만의 규칙’마저 사라진 곳에 따가운 시선만 남은 셈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