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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전통시장 뛰어든 젊은이들 “여기가 기회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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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임대료 저렴해 위험부담 적고

어르신 상인한테 노하우도 배워

서울 금천교시장 감자집 김윤규씨

개업 2년만에 매장 5곳으로 확대

완주시장 수제버거카페 노지혜씨

지역농산물로 농민들 판로 열어

아버지 가게 ‘메뉴 업글’ 성공담도


‘감자 살래, 나랑 살래’ ‘손님이 짜다면 나도 짠 거임’. 서울 종로구의 금천교시장 ‘청년장사꾼 감자집’(옛 열정감자)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유니폼에는 눈길을 끄는 글귀들이 담겨 있었다. 감자튀김과 치즈스틱 같은 간단한 튀김에 맥주를 파는 이곳은 대학생 김윤규(28)씨가 친구 넷과 함께 2년 전 문을 열었다.

“스펙 쌓을 만큼 쌓았지만 취직 생각은 없었어요.” 지난 11일 <한겨레>와 만난 김씨는 처음부터 창업을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틈틈이 손난로, 무릎담요 등을 파는 노점 등을 하며 장사를 익혔다. 자본, 기술, 경험이 없는 20대가 할 수 있는 장사를 고민하다 2012년 10월 이 감자집을 열었다. 점포세가 비교적 싼 시장에서, 누가 튀겨도 웬만하면 맛있는 감자튀김으로 승부를 봤다. ‘청년장사꾼’이란 회사를 꾸린 뒤 낸 첫번째 가게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잇따라 ‘꼬치집’ ‘골뱅이집’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지금은 서울에 5개의 매장을 운영한다.

장사를 잘해야 지역도 살고, 지역이 살아야 장사도 잘된다는 생각에 지역 살리기에 적극적이다. 서울 서촌에 속해 있는 금천교시장에 이어 이태원에선 ‘계단장’이란 벼룩시장을 열었고, 용산의 인쇄공장 골목에서 6개의 점포를 빌려 닭집, 백반집, 스테이크집, 펍 등을 하나씩 여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요즘 시장에선 김윤규씨 같은 청년 상인을 적잖이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장사만 잘하는 걸로 끝내지 않고 지역상권이 더불어 사는 고민도 해나간다. 시장에서 키워낸 브랜드로 가맹점 사업도 하고, 도농간·세대간 거리 좁히기에도 한몫하고 있다. 대형마트로 손님을 뺏겨 한산해진 시장이 유명해진 청년들의 가게 덕분에 조금은 온기를 되찾고 있다.

서울에서 광고 프로모션 회사에 다니던 노지혜(27)씨는 직장생활 1년 만인 지난해 고향인 전북 완주로 돌아갔다. 로컬푸드 사업을 해온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건강한 먹을거리를 유통하는 일을 준비했던 그는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잡히자 주저 없이 서울 살림을 접었다. 다섯달가량 준비 끝에 지난 9월 완주 농산물 직거래 장터인 ‘농부의 딸’이란 블로그도 열었다. 동시에 완주 고산시장에도 같은 이름의 수제버거 카페 ‘농부의 딸’을 차렸다.

“시골에선 시장이 가장 번화가예요. 여기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죠. 제가 만드는 떡갈비버거는 우리밀 빵부터 양파, 양상추 등 들어가는 재료 모두가 완주 농산물이에요. 그 맛으로 농산물을 알리는 거죠. 농번기엔 아버님들이 새참으로 사갈 정도로 잘 팔려요.”

‘농부의 딸’은 고령농과 소농들의 농작물을 위주로 판을 벌인다. 농촌에 젊은이가 없다 보니 판로가 좁아 애를 먹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직접 상품을 확인한 뒤 농가가 가격을 제시하면 구매하고, 적정 마진을 붙여 소비자에게 보낸다. 지금은 대전의 한 아파트 단지와 고정거래를 맺을 만큼 단골들도 늘고 있다. 현재 월매출이 1000만원을 웃돈다.

노 대표가 하는 일은 상품 디자인부터 쇼핑몰 운영, 농가 견학 등 다양하다. 쇼핑몰과 카페 운영을 혼자 할 수 없게 돼 지금은 가족기업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최근 떡갈비의 시장성을 인정받아 중소기업청의 청년창업 지원 제도인 ‘창업사관학교’에서 국비 7000만원도 지원받았다. 다음달 떡갈비 공장을 준공할 예정이다.

인천 신포국제시장 ‘산동공갈빵 만두’ 이규호(38) 대표는 아버지가 하던 시장 가게를 2010년 물려받았다. 속이 빈 공갈빵과 만두를 파는 이곳은 아버지가 40년 가까이 운영했던 가게다. 아버지가 가게를 해보겠느냐고 처음 제안했을 때만 해도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거절했다. 남들에게 인정받기도 힘든 고된 일이 싫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가게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갑자기 서글퍼졌어요. 그래서 가업을 이었죠.”

그는 먼저 시장은 비위생적일 거란 인식을 벗기 위해 위생을 최우선으로 신경 썼다. 좋은 재료로 빵을 만들고, 남은 물건은 다음날 팔지 않는다는 원칙도 철저히 지켰다. 2년간 날마다 새벽 6시에 나와 밤 12시에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한 개에 1500원인 중국식 호떡, 찐빵, 공갈빵과 1인분이 4000원인 만두는 그날 준비한 재료가 떨어질 만큼 잘 팔려나갔다.

시장에도 개운한 디저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서울 홍대의 유명 소프트아이스크림을 가게에 들였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곧 열매로 이어졌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만두가게는 인천 신포국제시장의 명물이 됐다. 이 대표는 “장사가 잘되지만 좋은 상권에 나가 분점을 내거나 하는 욕심은 없어요. 지금 있는 시장 자리에서 변치 않는 맛을 내고 싶어요. 장사가 잘된다고 건방져지면 안 된다는 걸 간접경험으로 잘 아니까요.”

김윤규 청년장사꾼 대표는 예비 청년창업자에게 “취업이든 창업이든 자신이 그 일을 오래 즐기며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라”고 조언한다. 시장은 경험과 자본, 기술이 없는 청년들에게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노지혜 농부의 딸 대표는 “시장의 장점은 저렴한 점포세예요. 청년들이 과도기를 겪기에도 부담이 적은 편이죠. 시장에서 잔뼈 굵은 상인들의 장사 노하우도 배울 수 있어요”라며 시장의 매력을 덧붙였다.

하지만 전통시장과 젊은층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조사한 2012년 통계를 보면, 전통시장 상인의 주류는 여전히 50~60대 연령층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9살 이하가 0.8%, 30대가 6.8%에 불과하다. 중기청은 청년 상인 3000명가량을 늘려 2017년에는 2만4000명까지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령화돼 가는 전통시장의 세대교체와 빈 점포를 활용할 청년창업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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