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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위기의 IBM, '손해 보는 승부수’ 전략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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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잇 박상훈] 10분기 연속 부진한 성적표를 내고 있는 IBM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기존의 경쟁사와 전례 없는 파트너십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클라우드와 모바일 등 IBM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하는 분야이긴 하지만, IBM이 얻을 것은 많지 않은 반면 내주는 것은 크다는 점에서 ‘손해 보는 승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24일 IBM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전략적 협력을 체결하고 MS 애저와 IBM 클라우드 상에서 양사의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교차해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웹스피어 애플리케이션 서버, 웹스피어 MQ, DB2 데이터베이스 등 IBM의 주요 제품을 MS 클라우드인 ‘에저' 가상 머신 서비스 위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윈도 서버, SQL 서버 등도 IBM 클라우드에서 쓸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닷넷 런타임을 IBM의 PaaS(Platform as a Service)인 블루믹스에 올리는 것도 추진한다.

양사는 이를 통해 두 기업의 사용자를 서로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협력에는 라이선스를 서로 인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는데, 예를 들어 IBM 웹스피어 제품군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이를 애저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윈도 서버나 SQL 서버 라이선스를 갖고 있다면 IBM 블루믹스에서 사용할 수 있다. 양사는 이런 수요가 있는 기업을 위해 '블루믹스용 닷넷 프리뷰’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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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BM이 다른 기업과의 파격적인 협력 방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사진=IBM)

그동안 IBM은 자사의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를 블루믹스로 통합하려 노력해 왔다. 따라서 닷넷 런타임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블루믹스로 추가하는 것은 이런 노력의 연장선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클라우드 사업 측면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더 영리한 행보를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윈도 서버라는 강력한 클라우드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고, SAP와 오라클 등을 에저 생태계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델과 손잡고 하드웨어 어플라이언스까지 내놨다.

특히 전문가들은 에저 자체가 다른 클라우드와 연동해 사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로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유연성 측면에서 차이가 뚜렷한 두 클라우드 플랫폼을 연결할 경우 결국 더 유연한 쪽으로 사용자 쏠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인포월드과 같은 해외 IT 매체는 이번 IBM-마이크로소프트 간의 전략적 제휴에서 결국 마이크로소프트가 더 많은 이득을 얻을 것으로 분석한다.

IBM의 '손해 보는 제휴' 행보는 지난 7월 애플과의 협상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양사는 기업 시장에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판매하는 내용의 영업, 기술 제휴를 체결했다. IBM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자사의 기업 고객에게 판매하고, 양사 엔지니어가 여기서 사용할 업무용 앱을 공동 개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유통, 의료, 금융, 통신, 여행, 운송 분야 등에서 100여 개 기업용 앱을 개발하기로 했다. PC 시대의 앙숙이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승부수’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제휴 역시 IBM에게는 실익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애플은 숙원 사업이었던 기업시장으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한 반면 IBM은 자사의 핵심 경쟁력인 기업 고객과 자사 개발 인력을 내주면서도 모바일 사업 경험 이외에 신규 고객 확보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IBM은 iOS용 신규 앱 개발에 수천명의 개발자를 투입하기로 해 만약 제휴가 실패할 경우 고객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상당한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애플은 일단 기업 시장에 발을 들인 이상 앱스토어를 통해 다른 기업용 앱을 개발하는 차선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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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리콘밸리의 저널리스트 로버트 X 크린질리가 최근 출간한 'IBM의 쇠망'

전문가들은 IBM이 이처럼 ‘손해 보는 승부수’를 잇달아 던지는 이유 중 하나로 코너에 몰린 사업모델을 꼽는다. 경영상황이 벼랑 끝까지 몰리면서 무리한 제휴를 추진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1일 공개된 IBM의 3분기 실적을 보면 매출 224억 달러, 수익 35억 달러로 지난해보다 각각 4%, 17% 줄어들었다. 2012년 하반기부터 10개월 연속 사업성과가 1% 대의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 내용이다. 3분기 IBM 매출을 분석해 보면 서비스 부문이 2.9% 하락했고, 컴퓨터와 반도체 사업이 15% 급감했다. 메인프레임 매출은 35%나 줄어들었다.

반면 IBM이 새로운 성장사업으로 기대하는 분야는 시장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이다. 클라우드 분야가 대표적인데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기사에서 "IBM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가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 애널리스트와 고객사로부터 나오고 있다"며 "클라우드에 대한 투자가 오히려 고가의 인프라 서비스를 판매하는 IBM의 전략에 방해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IBM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쇠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X 크린질리는 지난 6월 'IBM의 쇠망’이라는 책을 통해 비용 절감을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인건비가 싼 나라로 아웃소싱하면서 IBM 제품과 서비스 품질이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한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의 개발 총괄 임원은 "IBM은 다른 SW 업체를 인수해 더 큰 SW를 만들어 내놓는데 치중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방식은 느리고 비효율적”이라며 “IBM의 방대한 제품군이 과연 최고 제품들의 조합인가에 대해 솔직히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nanugi@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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