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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냉소와 유머로 생의 황혼을 건너가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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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모나코

김기창 지음/민음사·1만3000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코언 형제가 영화로 만든 소설에서 코맥 맥카시는 말한다. 노인 고독사를 소재로 삼은 소설 <모나코>의 주제가 그에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노인’으로만 일컬어지는 주인공은 ‘나라 없는’ 노인의 전형과는 사뭇 다르다.

동네 불량 청소년들과 대화하던 중 그가 시가를 피우다 구강암으로 숨진 프로이트를 입에 올리자 아이들은 프로이트가 누구냐고 묻는다. “우리 편”이라는 게 노인의 답이고, 그게 무슨 뜻이냐는 추가 질문에는 “사랑과 성욕은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거든”이라는 답이 나온다. 내처 미성년인 아이에게 시가를 주면서 하는 말인즉, “일찍 죽으라고. 나처럼 오래 살지 말고.”

요컨대 예사롭지 않은 유머감각과 쿨하다 못해 냉소적인 태도가 그를 여느 노인들과 구분시키는 특질이다. 이런 성격은 물론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경제적 여유 그리고 근사한 서재와 홈시어터로 대표되는 문화적 자산에 기반을 두었다고 보아야 할 테다.

이런 여유와 자산 위에 마음 공부가 더해졌다면 그의 말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으리라. 그러나 이 노인에게는 걱정 없는 상태가 곧 삶을 향한 의욕 상실과 다름이 없었으니, “언제부턴가 사는 것도 습관처럼 여겨졌다. 먹고, 자고, 걷고, 먹고, 걷고, 또 걷고. 어떤 날은 사는 이유를 생각해 냈다. 다음 날엔 또 잊어버렸다.”

젊은 미혼모 진의 출현은 미지근한 쌀뜨물 같던 노인의 삶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든다. “철 안 든 노인”을 자처하는 그는 자신의 성적 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진을 향한 마음을 표현하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긴다. “노인은 진의 이력에 관심이 없었다. 온전히 그 사람, 지금 이 시각, 같이 있는 바로 이곳만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불꽃과도 같았던 사랑이 결국 무위로 돌아가면서 노인에게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의미가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거실 창가에 앉은 채 심장마비로 죽은 노인이 그로부터 무려 두달 뒤에야 경찰에 발견되기까지를 그리는 에필로그 부분이 사족처럼 느껴지는 것이 그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맞는 순간 그의 머리에는 아마도 이런 장면이 맴돌지 않았을까.

“진이 노인의 허리에 머리를 기댔다. 아이는 진의 품에 기댔고, 진은 노인에게 기댔다. 노인은 바닥에 뿌리를 내리듯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신인 김기창(사진)의 <모나코>는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인물 유형을 등장시킨 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개성 넘치는 캐릭터는 세련된 단문에 유머와 페이소스를 버무린 문체와 결합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최재봉 기자, 사진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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