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IS와의 전쟁, 시리아 접경지를 가다]터키, 도움은커녕 총알·최루탄 세례… 쿠르드인 ‘부글부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3) IS·터키 사이 샌드위치 된 쿠르드족

터키 수루츠의 거리에서 만난 한 쿠르드 노인은 자신의 삼촌 중 한 사람이 1950년 한국전쟁에 터키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적이 있으며, 지난해에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찢어지게 가난했던 많은 쿠르드인들이 터키 당국의 징집에 자발적으로 나서 수많은 쿠르드 젊은이들이 한국전에 참전했다”면서 “한국전에서 사망한 쿠르드 병사들도 꽤 많다”고 덧붙였다.

터키에 사는 쿠르드 민족은 전체 인구의 25%에 이르는 2000만명이 넘지만 터키의 그늘에 가려 거의 잊혀진 존재로 지내왔다. 터키뿐만 아니라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인을 모두 합친다면 4000만명이 훌쩍 넘어간다. 그런데 이런 대민족이 국가도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은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언제나 국가를 가져왔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태나 쿠르드 민족이나 유대 민족의 역사를 보면 국가 없이 산다는 건 곧 다른 국가에 의해 언제든지 학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가지안텝 시위 수십명 사상

‘보복전 이어져 내전 될라’장년층, 청년들 자제 호소

미, 코바니 지원 무기 투하… 전쟁 새로운 국면 접어들어


지난 19일 미국의 C-131 수송기가 터키 국경과 접한 시리아 쿠르드인 도시 코바니 상공에서 터키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쿠르드 전투부대에 무기와 탄약, 의약품, 음식 등을 공중에서 떨어뜨려 전달했다. 미국이 터키의 반대에도 쿠르드 측에 무기를 전달하면서 코바니에서의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터키 정부는 국경까지 폐쇄하면서 코바니에서 싸우는 쿠르드인들의 숨통을 조여왔고, 전투를 돕기 위해 코바니로 들어가려는 쿠르드인들을 철저하게 차단해왔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는 누차 코바니에서 싸우는 쿠르드인들이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테러리스트 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전혀 도울 의지가 없음을 밝혔다. 그럼에도 미국의 지원품이 쿠르드인들에게 공수된 다음날인 지난 11일 오후 터키 정부는 수루츠의 스포츠센터에 구금시켰던 쿠르드 난민 110명을 전원 석방했다.

또한 터키 정부는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의 군사조직인 페쉬메르가(peshmerga)가 쿠르드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코바니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다음날인 12일 쿠르디스탄의 수도 아르빌에서 페쉬메르가 군인들이 무기와 장비들을 싣고 수루츠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자, 수루츠 시내 곳곳에서 무리를 지어 앉아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의논하는 코바니 출신의 난민들을 볼 수 있었다.

터키 정부는 21일까지도 IS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국경선을 따라 탱크만 배치시켜놓고 있다. 한술 더 떠 국경마저 철저히 봉쇄해버려 코바니는 완전히 포위된 상태로 버텨왔다.

코바니에 가족들을 두고 떠나온 난민들은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돼 날마다 국경선에 모여 코바니를 바라보고 있다. 이에 터키군과 경찰은 쿠르드인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무자비하게 최루탄을 발사해왔다. 쿠르드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 진압과 구속 탓에 터키 경찰이나 군인들은 쿠르드인들에게 언제나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잡아왔다.

지난 9일 수루츠로 오기 전 터키 남동부의 최대 도시 가지안텝에 도착하던 날 공항으로 필자를 마중나왔던 세르한(36)은 팔을 다친 상태였다. 다른 쿠르드인들과 함께 수루츠와 코바니의 국경선 부근에서 시위를 벌이다 최루탄을 팔에 직격으로 맞아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날 밤 가지안텝은 잠 못 이루는 공포의 도시로 변해버렸다. 1만명가량의 쿠르드인들이 가지안텝 지역의 다수당인 민중민주당(HDP) 당사 앞에 모여 터키 정부의 코바니 사태에 대한 수수방관을 규탄하던 중이었다. 경찰 진압에 대비해 바리케이드를 쌓아두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과 함께 장검과 소총 등으로 무장한 500명 정도의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알라 아크바!(알라는 위대하다!)” “쿠르드인들을 죽여라!”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위협을 가했다. 살인적인 무기로 무장한 이들을 보자 쿠르드 군중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 도망하기 시작했다. 대열이 흩어지자 이들은 장검을 닥치는 대로 휘두르고 AK47 소총을 발사하면서 흩어진 군중을 추격했고, 당사 안으로 도망하던 여인들과 청소년들을 뒤따라가 총을 발사해 4명을 사살했다. 또한 이들의 공격으로 45명이 부상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필자는 당사를 방문해 피습당한 사람들과 당 대표를 만나 이들의 대책을 들었다. 당시 당의 중장년층이 가장 두려워하던 일은 쿠르드 젊은이들이 집단적으로 나서 터키인들이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보복하면서 내전으로 확대되는 상황이었다. 당 대표는 쿠르드 젊은이들에게 자제할 것을 호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지안텝에서 발생한 사건처럼 터키 동부지역의 다른 도시에서도 매우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38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당했으며, 60명이 구속됐다. 빙골에서는 터키 경찰관 2명이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사망자들은 대부분 터키 경찰이나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의 발포로 숨졌다. 쿠르드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디알바크키르를 비롯한 동부지역 6개 도시들에서는 지난 7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통금이 선포됐으며, 지금까지도 시행되고 있다.

통금이 선포된 후에도 쿠르드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정보부장을 비롯한 터키 정부의 핵심 인사 몇 명은 장기간 구속된 상태로 있는 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을 접견하고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오잘란의 호소가 있은 후에야 쿠르드인들의 시위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코바니시에서 IS와 전투를 벌이면서 버티고 있는 쿠르드인들은 지금 역사상 최초로 민족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 있다.

쿠르드군은 이라크 북부의 고대도시 모술(니느웨)에서 모든 중무기, 최신식 무기를 내버려두고 줄행랑을 쳐버린 이라크군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잔인한 살상으로 인류의 적으로 부상한 IS에 끈질기게 맞서 쿠르드 민족이 싸운다는 사실에 전 세계가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반면에 터키로서는 쿠르드 민족의 끈질긴 싸움이 민족국가 건설로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탓에 온갖 악수를 다 두면서 전 세계의 지탄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쿠르드가 올라가면 터키는 내려가고, 쿠르드가 강해지면 터키가 약해진다는 법칙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쿠르드족 정당의 대표인 이브라임 바란(41)의 주장에 공감이 가기도 했다.

<하영식 | 분쟁 전문 저널리스트>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