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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다시 부상한 美 달러화…세계 경제 환율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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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서울=뉴시스】최현 기자 = 금융위기, 유로의 등장, G2로 부상한 중국의 경제 발전 및 영향력 증가 등으로 영향력이 위축됐던 미국 달러가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100년에 가까운 오랜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기축통화로 쓰여 왔던 달러가 다시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서려 하고 있는 것.

유로, 엔, 파운드 등 주요 6개국 통화와 달러를 비교한 달러인덱스는 올 3분기에만 8.2% 올랐다. 이는 1981년 5월부터 3개월간 13% 상승한 이후 최고치다.

이 가운데 환율전쟁 양상에 대한 미국의 경고가 나왔다.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경쟁적인 통화 절하를 자제해야 한다”며 “환율을 경쟁력 강화에 연계시켜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이 같은 우려는 지난 8일 공개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9월 회의록에서도 드러났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위원들은 달러 강세가 자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 미국 수출기업의 경쟁력 약화, 무역적자 확대 등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른 수입물가 하락까지 더해질 경우 물가 상승폭이 더 줄어 미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러 국가들이 환차익을 노리기 위해 통화를 절하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경제적 부담으로 나타나 미국 정부 차원에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달러 초강세 국면, 지속 전망…왜?

큰 그림으로 보면 미국 달러는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 이후 약세 기조를 이어왔고, Fed가 테이퍼링(단계적 양적완화 축소) 정책을 발표하고 나서 다시 전반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단순하게 얘기해서 미국 정부는 시장이 패닉에 빠질 것을 염려해 천문학적인 금액, 매달 85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시장에 풀어왔다. 이와 함께 기준 금리도 초저금리(0∼0.25%) 기조를 유지해왔다. 유동성을 확대해 시장에 돈을 돌게 하기 위한 묘안이었던 셈이다.

기업이나 은행, 투자자들은 제로 수준에 달하는 금리로 돈을 조달할 수 있었고, 이렇게 조달된 자금이 시장에 풀리게 됐다. 즉,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고 수익을 낸 뒤 대출금을 갚아버리면 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자금은 한국을 포함, 전 세계로 뿌려졌고 글로벌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이를 ‘달러캐리트레이드’라고 한다. 하지만 양적양화 정책 종료 시점이 막바지로 다가오면서 세계 각국은 충격을 대비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양적완화 정책을 끝낸다는 것은 세계 경제를 받쳐주는 자금이 거둬진다는 말이고 동시에 금리도 다시 상승하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순차적으로 보면 달러 유동성은 양적완화 정책을 펼칠 때보다 줄어들게 될 것이고, 이는 달러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풍작으로 귤의 공급량이 많으면 시장가격이 떨어지고 흉년에는 소비량이 공급을 초과하면서 가격이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즉,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여러 국가에 넣어뒀던 자금을 빼내 수익성은 다소 낮지만 좀 더 안전한 미국 등 경제적으로 탄탄한 국가에 재투자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에서 낮은 이자로 빌린 돈은 갚아야 하는 자금이고, 금리가 다시 올라가면 투자자들은 리스크와 수익성을 따져본 후 대출 규모를 줄이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달러 오름세 받쳐주는 다른 요인은?

전 세계 경제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몸통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경제 규모에 따라 미치는 여파가 차이는 있지만 한 국가의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이는 타 국가로,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Fed의 양적완화 종료는 달러 강세를 부른 가장 큰 요인이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유로존의 경기부진,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지정학적 리스크 등은 모두 달러 가치의 상승과 맞물려 있다.

극심한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는 유로존은 장기적인 불황을 맞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ECB가 각종 부양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ECB는 지난달 예상을 깨고 기준 금리를 0.15%에서 0.05%로 내리는 결정을 내놨다. 이는 ECB 사상 최저 수준이다.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디플레이션(물가하락) 가능성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 9일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비통상적 개입의 규모와 구성을 바꿀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금리 인하 조치에도 물가가 움직이지 않으면 미국과 일본처럼 국채까지 매입할 수 있다고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유럽연합(EU)의 이 같은 움직임은 결국 달러 강세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달러에 대응할 수 있는 기축통화로 평가되는 유로가 시장에 대량 풀리기 때문이다.

유로를 빌리는 이자는 바닥 수준이고 대량의 자금까지 풀리게 되면 투자자들은 유로존에서 돈을 빌려 세계 각국에 투자하게 되고, 안전한 자산 증식 장소로 여겨지는 미국에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사들여야 한다.

이는 곧 달러가치 상승 속도에 부채질을 하게 된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당시 일어났던 일이 주체만 바뀌게 되는 셈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시장에 뿌리고 있는 엔화도 같은 맥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면 된다. 아울러 우크라이나 사태, 중동의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사태,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분리·독립 바람 등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리게 하고 있다.

◇세계 경제, 어떻게 흘러가나?

이미 달러 강세의 영향으로 전 세계 각국이 여파를 최소화 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은행이 15일 기준금리를 종전 연 2.25%에서 2.00%로 인하한 것도 ‘글로벌 환율전쟁’의 일환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자국 통화의 가치는 수출과 수입물품의 가격을 결정짓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당연히 경상수지와 기업실적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환율전쟁은 자국의 수출경쟁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외환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 자국의 통화를 가급적 약세로 유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전쟁에서 승자는 ‘성장’이라는 과실을 얻게 되고, 일부는 경제 둔화나 U턴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선 지나친 달러 강세를 피하기 위해 애쓰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요동치는 금융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양적완화나 금리 인하 등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신흥국의 경우 이 같은 상황 자체가 악몽이 될 수 있다. 미칼라 마쿠센 소시에테 제네랄 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에는 달러 강세로 인한 영향이 Fed의 긴축으로 인한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Fed의 양적완화 정책 당시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국으로 흘러간 자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리스크는 있지만 경제성장률이 높은 국가에 돈이 몰린 탓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신흥국에 유입된 자금은 1조1000억 달러에 달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인 2003~2007년 유입된 자금(6970억 달러)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여기에 일부 경제 취약국의 통화 가치 하락을 점치고 있는 투자자들이 매도 공세에 나서고 있는 점도 신흥국 입장에서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올 들어 아르헨티나 페소를 시작으로 터키 리라, 남아공 랜드, 브라질 헤알, 러시아 루블 등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가 급락했고, 각국 중앙은행들이 성장세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금리 인상 카드를 내놓은 것도 이 같은 일로 인한 추가 여파로 보면 된다.

‘취약 5개국(F5)’으로 분류되는 인도네시아의 무하마드 차립 바스리 재무장관은 최근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줄면 인도네시아와 같은 신흥국은 자금유출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며 “내년에 성장을 희생하더라도 재정·통화 긴축을 통한 경제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태에서 한국은 비교적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전반적인 예상이다. 하지만 이미 달러 강세로 국내 증시가 7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고, 7거래일 동안 1조6243억원이 빠져나가는 등 상황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forgetmenot@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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