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단독]고려인 청년의 ‘재가 된 코리안 드림’… 유골이 되어서도 한국 단칸방 못 떠나

댓글 16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인력업체 임금 체불에 절망 우즈벡 출신 20대 투신자살

5일째 유골함 지키는 아버지 “아들이 일한 정당한 대가 반드시 받아내 고향 가겠다”

지난달 29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 주택가의 한 원룸. 3평(9.9㎡) 남짓한 방 한쪽에 하얀 보자기에 싸인 상자가 놓여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유가이라만(63)은 상자를 바라보다 왈칵 눈물을 쏟았다. 상자 속에는 열흘 전까지만 해도 숙식을 같이해온 막내아들 유가이비탈리(25)의 유골이 들어 있었다.

경향신문

고려인 유가이라만이 1일 광주 월곡동 원룸에서 아들 비탈리의 유골함을 바라보며 애통해하고 있다. | 강현석 기자


비탈리는 지난 4월 한국에 왔다. 어른 세 명이 누우면 몸 뒤척이기도 힘든 단칸방에서 라만, 비탈리와 형(35) 삼부자는 ‘코리안 드림’을 꿈꿨다. 우즈베키스탄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길이 막막해 한국행을 택한 비탈리는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를 얻고 싶었다. 방문취업비자로 입국한 고려인들이 취업하려면 산업인력공단에서 3일간 실시하는 ‘외국인 취업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수강할 수 있는 곳은 서울뿐이다. 게다가 러시아어로 진행되는 교육은 60명만 선착순으로 모집해 수강이 쉽지 않았다. 번번이 교육시기를 놓치며 초조해하던 비탈리는 지난 6월 한 고려인의 소개로 인력파견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불법이었지만, 업체의 소개로 비탈리는 광주 광산구 평동산단에 있는 한 공장에 자리를 얻었다.

일은 고됐다. 매일 야근을 해야 했고 토요일도 쉬지 못했다. 하지만 한달 뒤 통장에 입금된 월급은 120만원이었다. 정상이라면 200만원은 돼야 했다. 그나마 이 돈은 그가 한국에서 받아 본 처음이자 마지막 월급이었다. 두 달 반 동안 일했지만 인력파견업체 사장은 “나머지 월급은 곧 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사이 우즈베키스탄에 있던 어머니가 수술을 받아 병원비 700만원이 빚으로 쌓였다. 고향에 처자식을 두고온 형은 한숨만 내쉬었다. 신조야 광주 고려인마을 대표는 “비탈리가 밀린 임금을 받으려고 인력파견업체 사장을 몇번이나 찾아갔으나 ‘불법취업 사실을 신고하겠다’는 협박과 욕설만 들어야 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22일 밤 아버지 라만이 “어머니의 수술비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다음날 오전 5시 “일용직 일자리라도 알아보겠다”며 가장 먼저 집을 나선 비탈리는 인근 고층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몸을 던졌다. 스물다섯 살 고려인 청년의 ‘코리안 드림’은 그렇게 산산조각 났다. 주변 고려인들의 도움으로 지난달 27일 장례를 치렀지만 비탈리의 유골은 5일째 원룸에 머물고 있다. 유골상자를 바라보던 아버지는 “아들이 일했던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이 체불임금을 대신 받아주기 위해 발벗고 나섰지만 인력파견업체는 연락두절 상태다.

비탈리 부자를 돕고 있는 이천영 새날학교 교장은 1일 “어렵게 고국에 정착하려는 고려인들을 등치는 불법업체들은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