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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韓·中 영화합작 2.0] [上] 영화판 흔드는 차이나머니(China money)… 한국 창의력과 결합한 '韓·中 합작'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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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력·기술 부족한 중국, 800억 싸들고와 공동제작 요청

시장 포화상태인 한국에도 기회

中시장 개봉 수익 나눠가지고 스타배우 이어 스타감독 탄생 가능

이별계약·필선 등 잇단 흥행… '접속' '화산고' 감독 신작도 대기

"이젠 할리우드 아닌 中 갈 때"

"지난달 중국인 사업가 한 명이 찾아왔어요. 한·중 합작 영화를 준비하는 게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50억원을 주겠다는데, 막상 겪으니 당황스러웠죠."(국내 메이저 투자배급사 관계자)

"어느 영화 만든 누구 감독과 공동 제작하고 싶다는 구체적 문의가 많아요. 중국 영화계는 '합작한다면 한국과 하겠다'는 분위기예요."(김필정 영화진흥위 베이징사무소장)

'차이나 머니'가 한국 영화판에 앞다퉈 몰려오고 있다. 한국 영화계의 중국 시장 공략도 거세다. 작년 중국 영화 시장은 한화 5조원 규모. 6년 뒤엔 11조3400억원 규모로 성장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시장이 될 전망"(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이다〈그래픽〉.

조선일보

제작 편수도 2001년 88편에서 2011년 558편으로 해마다 급증한다. 돈은 넘치고 시장은 커지는데, 인력·기술의 성장 속도가 못 따라와 늘 '인재 부족'에 허덕인다. 반면 작년 1조6300억원 규모로 큰 한국 영화 시장은 이미 성숙기이고, 검증된 '크리에이티브 파워'는 탈(脫)아시아 단계다. 할리우드를 위협할 만큼 급성장 중인 자국 영화 시장에 '창의력 수혈(輸血)'이 필요한 중국과 포화 상태인 시장에 새 활로를 뚫어야 할 한국 영화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대결이 아니라 윈·윈 양상이다. 중국에서 한·중 합작 로맨틱 코미디 영화 '이별계약'(2013) 으로 '대박'을 낸 오기환 감독은 "과거 중국 영화에 한국 감독이 고용되던 '1.0 시대'를 넘어 진정한 '한·중 영화 합작 2.0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 영화판에 '차이나 머니'

중국의 민(民)·관(官) '큰손'들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국책 펀드 차이나미디어캐피털(CMC)이 한국 영화에 8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국내 벤처 캐피털인 이상기술투자 김종식 대표는 14일 "국영 중국개발은행이 핵심 출자자로 참여한 CMC가 우리가 운용할 2000억원 규모의 한·중 영화 콘텐츠 펀드에 800억원을 출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중국 알리바바가 한국 영화에 1000억원을 투자키로 하고 국내 한 중견 투자사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전략적 한·중 공동 제작 봇물

현재 중국에서 투자 지분 대비 수익을 얻는 방식으로 개봉할 수 있는 외국 영화는 연 34편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개봉 전 선금을 받고 넘기는 식이라 기대 수익이 신통치 않다. 그동안 중국에 간 한국 영화는 대부분 이 덫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 방한 때 양국 영화 공동 제작 협정이 체결되면서 한국 영화계는 다시 없는 기회를 맞았다. 양국 정부 승인을 받으면 외화 규제를 벗어나 '중국 영화'로서 중국 시장에서 승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유력 영화사 화이브러더스와 합작했던 최근 개봉작 '미스터 고'('국가대표' 감독 김용화)가 그 물꼬를 텄다면, 종영까지 1억9005만위안(약 320억원)을 벌어들인 오기환 감독의 '이별계약'은 그 첫 성공 사례였다.

2005년부터 중국 시장에 뛰어든 CJ E&M의 경우, 현재 '접속'의 장윤현 감독이 만든 '평안도', 한국영화 '수상한 그녀'를 리메이크한 '20세여 다시 한번'등이 후반 작업 중이거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CJ E&M 차이나 관계자는 "이미 올해 두 편의 합작 영화를 제작했고, 매년 4편 이상 제작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韓 감독이 만든 中 영화도 러시

한국 감독들이 건너가 만든 중국 영화도 러시다. 국내에서 '폰' '분신사바' 등을 만든 호러 전문 안병기 감독은 2012년 중국 자본으로 만든 중국 영화 '필선(筆仙)'으로 6000만위안(약 101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중국 호러 흥행 기록을 싹 갈아치웠다. 안 감독은 이후 2편, 3편을 잇달아 만들었다.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 '나의 여자 친구는 조기갱년기(我的早更女·가제)'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이다. '조폭마누라' 조진규 감독의 멜로 '아망천당'(雅望天堂), '화산고' 김태균 감독의 '두 도시 이야기' 등도 촬영 중이거나 개봉 대기 중이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장태유 PD도 중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 연출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4일 영화진흥위 베이징사무소가 현지에서 연 '한국 감독 쇼케이스'에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장철수, '변호인'의 양우석,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 등이 참석해 중국 현지 제작·투자사들과 만났다. 한·중 합작영화의 중심이 한류스타에서 스타 감독으로 옮겨간 것이다.

세계 영화 빨아들이는 중국 블랙홀

지난 7월 '트랜스포머4: 사라진 시대'(감독 마이클 베이) 중국 개봉 때의 일. 후원사였던 중국 7성급 호텔 판구다관 측이 "영화에 등장하는 호텔 장면이 계약된 20초보다 짧다"며 후원 계약을 깨려 하자, 마이클 베이가 직접 중국으로 달려가 사죄해 화제가 됐다. '트랜스포머4'의 개봉 1주차 전 세계 매출은 4억1268달러(약 4162억원)로, 3분의 1 이상이 중국에서 나왔다. 중국이 아니었다면 '트랜스포머4'는 실패작이 됐을지도 모른다. 이뿐 아니다. 월트디즈니가 지난 3월 상하이동방미디어그룹과 영화 공동 제작 협약을 체결했고, 드림웍스는 2015년 개봉할 '쿵푸팬더3' 제작을 위해 중국 합작회사 오리엔털 드림웍스를 세웠다.

김필정 영진위 베이징사무소장은 14일 "한국 제작사와 감독들은 지금 할리우드가 아니라 중국으로 갈 때다. 수년 내에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고 싶어도 먼저 중국에 가야 투자도 받고 제작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중 영화합작 2.0

한·중 영화 합작 1.0이 중국 영화에 한국 배우나 감독이 고용되는 방식이라면, 2.0은 중국의 자본과 시장을 바탕으로 한국 인력이 영화를 기획, 제작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 기획하고 중국에서 만들어진 ‘이별계약’이 대표적 예. 3.0은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한·중 합작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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