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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사람이 쓰러졌는데 지나칠 수 있나요… 당연한 일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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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쓰러진 할머니 구한 용인 백암고 박지현·한수지양

지난달 24일 박지현양(17)은 친구 한수지양(17)과 함께 서울로 옷을 사러 가기로 했다. 두 사람은 오전 8시 경기 용인시 집 근처 백암터미널에서 만나 버스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터미널 앞 횡단보도 맞은편 인도에 쪼그려 앉은 할머니 낌새가 이상해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두 사람이 대화하다 다시 인도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할머니가 바닥에 쓰러졌다. 두 팔,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박양과 한양은 곧장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사람들이 할머니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어른들은 있었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어떡하나”라며 발만 동동댔다. 어른들도 허둥대는 상황에서 한양이 휴대전화로 119에 신고했다. 박양은 전화로 연결된 119 대원이 지시하는 대로 차근차근 응급처치에 들어갔다. 할머니를 똑바로 눕히고 고개를 젖혀 기도를 열었다. 할머니 호흡이 좀 편안해지나 싶더니 입에서 거품이 올라왔다. 박양은 당황하지 않고 119 대원이 말하는 대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5분쯤 지나 119 구급차가 도착해 할머니를 병원으로 옮겼다. 당뇨병을 앓는 김진여 할머니(74)는 세상을 떠난 남편 생일을 맞아 일산 납골당으로 가려다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김 할머니는 두 여고생의 침착한 대응과 응급처치 덕분에 큰 탈 없이 건강을 되찾았다.

경향신문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머니를 응급처치로 구한 경기 용인시 백암고 박지현(왼쪽), 한수지 학생이 지난 1일 교실 창가에서 활짝 웃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1일 용인 백암고 교정에서 만난 한양은 “할머니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시고. 혹시나 잘못 되시면 어떡하나 걱정이 계속 들었다”고 말했다. 한양은 여군 장교가 장래 희망이다. 당찬 성격이지만 횡단보도를 지나 달려갈 때 겁이 너무 많이 났다고 한다. 박양은 “사람이 쓰러졌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특별히 칭찬받을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손사래쳤다.

박양은 동물이 쓰러져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길에 버려진 아프고 굶주린 강아지, 고양이를 집에 데려가곤 했다. 지난해 12월 집 근처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고양이 걱정에 한 시간 넘게 동네를 뒤져 결국 찾아냈다. 고양이는 동네 비닐하우스의 한 구석 비료포대에 깔린 채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한양과 박양은 단짝이다. 열흘 뒤로 다가온 학교 축제에서도 함께 춤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 할머니 응급처치 때처럼 호흡이 척척 잘 맞으면 좋겠다고 했다.

백암고는 두 사람에게 줄 특별 선행포상을 준비하고 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두 학생은 상을 받는 기쁨보다 곧 시작하는 중간고사 걱정이 더 크다며 웃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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