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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목조 해골상에 숨겨진 '가공된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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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마지막 장인 The Last Master, 2014, Sophora japonica wood, mirror installation, a novel, 31(H)x70x116, 35(H)x480x415.6cm(pedestal)


갤러리 현대서 9월 28일까지 전준호 개인전 열려

문경원과 함께 작업한 영상 '묘향산관'도 공개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난 언젠가 꼭 한 번은 사람 뼈를 하나도 안 빼묵고 모조리 다 깎아보고 싶었다. 이게 무슨 복수심인지 아니면 원망인지 모르겠는데…. 평생을 뼈가 아파서 살았다 아이가. 이 굽고 비틀린 뼈로 멀쩡한 뼈를 깎는 기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노. 그래! 거 재미있겠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현대미술작가 전준호(45)가 최근 쓴 소설 '마지막 장인'에는 '지긋지긋한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 작업으로 나무 뼈로 인체의 골격을 깎는 '장인'이 등장한다. 이 장인은 나무 뼈의 마지막 조립을 앞두고 끝내 세상을 뜬다.

평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유려한 글솜씨에 A4 용지 10장 분량의 짧은 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려간 뒤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는 육각형 모형의 거울 위에 나무를 깎아 만든 해골상이 바닥에 엎드려 두 손을 내민 채 절을 하고 있다.

이는 '마지막 장인'이 남긴 목조 해골상일까. 왜 엎드려 절을 하고 있을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최근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만난 전준호는 "소설을 읽고 해골상을 보면 마치 '마지막 장인'의 분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실은 모두 허구"라고 했다.

소설에 해골을 깎는 장인과 아이디어를 내는 현대미술가가 등장해 마치 작가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것처럼 읽혀지지만 이는 전부 가상의 얘기일 뿐이다. 작가는 오히려 예술을 둘러싼 '가공된 신화'를 다루고자 했다고 한다.

"존 F. 케네디가 이런 말을 했어요. 진실의 가장 커다란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라고. 최첨단 사회를 살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신화가 존재하죠. 현대 미술에도 그런 예가 많아요. 이를테면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품이 몇백억원에 낙찰됐다고 하면 다들 그 작품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그 작품은 훌륭할까요? 거기에 숨은 권력이나 다른 의도가 있진 않을까요? 그게 바로 가공된 신화라는 겁니다."

갤러리 현대에서는 전준호의 개인전 '그의 거처'가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 6년 만에 여는 개인전으로, 소설·해골상·거울이 한데 어우러진 작품 '마지막 장인'을 비롯해 설치·조각 6점, 동갑내기 작가 문경원(45)과 함께 작업한 영상 작품 '묘향산관'을 선보인다.

전시장 2층에는 사방을 거울로 뒤덮은 공간이 마련됐고 천장에는 거대한 금속 링이 하나 매달렸다. 고정된 것 같지만 실은 가까이 가서 신경 쓰고 보지 않으면 눈치를 채기 힘들 정도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둥근 고리지만 관성적으로 돌아가는 링은 인간사의 모순과 고정관념을 반영하는 듯 하다.

작품명은 '코는 왜 입 위에 있을까?'다. 평소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것들, 당위적인 사실에 마치 화두를 던지듯 의문을 제기하고자 함이다.

"저는 사실 남을 위해 작업한 적이 없어요. 작품을 통해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죠. 그냥 저를 위한 작업이에요. 나의 증명이죠. 내가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증거요."

형광등이 관통한 헬멧 작품 '시의 조건'은 시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작가가 "작업이 시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처럼 '정제된 단어'를 나열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가상의 북한식당 '묘향산관'을 배경으로 한 미디어아트 겸 단편영화 '묘향산관'은 배우 고수와 한효주가 노개런티로 참여해 제작 초기부터 관심을 모은 작품.

개인전 개막식이 끝나고 베이징 시내에서 술자리를 가지다 '묘향산관'을 찾은 남한 화가(고수 분)와 친구들은 식당에서 아름다운 북한 여종업원(한효주 분)을 만나 신비스러운 일을 경험한다.

이들 앞에는 갑자기 남녀 무용수가 선보이는 현대 무용이 펼쳐지기도 하고, 예술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때는 멀찌감치 떨어진 다른 테이블에 위치하기도 한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인지, 단지 술에 취해 망상이 벌어지는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가운데 몽환적인 분위기는 이어진다.

앞서 문경원·전준호는 2012년 세계적 권위의 미술행사인 '카셀 도큐멘타'에 초청돼 선보인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 프로젝트로 광주비엔날레 대상인 눈 예술상과 국립현대미술관의 '2012 올해의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묘향산관'은 이달 초 개막하는 일본 후쿠오카 트리엔날레에도 출품될 예정이다.

문경원과 전준호는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로도 선정됐다. 둘은 2009년부터 개인 작업과 공동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전시는 9월 28일까지.

☎ 02-2287-3500.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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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원 전준호 MYOHYANGSANGWAN, 2014, HD Film. 22min 09s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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