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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501호는 여자분 혼자 사니 문 앞에 두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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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50% 늘어난 물량, 10㎏상자 들고 쉴새없이 계단 오르내린 추석 택배체험]

머니투데이

28일 서울 도화동에 있는 CJ대한통운 중구지점에서 택배기사들이 배달할 택배 상자를 분류해 탑차에 싣고 있다. /사진=양영권 기자


“303호는 남자분인데, 좀 늦게 나와요. 501호는 여자 혼자 사시는데 문을 안열어줄거니 문 앞에 두고 오면 됩니다.”

김진수 씨(34)는 탑차에서 박스 2개를 내린 뒤 택배 배송 현장 체험 취재를 나온 기자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자신이 직접 배달할 물건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쉴새없이 계단 오르내리기…어느새 셔츠는 땀으로 흠뻑

택배 송장에 적힌 주소에 나온 대로 A빌라의 계단을 뛰어 올라가 303호 초인종을 눌렀다. 1분 넘게 기다리고 나서야 20대 남자가 문을 연다. 501호는 "택배왔다"고 하니 “문 앞에 두고 가세요”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씨는 CJ대한통운에서 택배 일을 하는 6년차 기사다. 서울 신당4동 일대가 그의 구역이다. 이곳엔 은행 등 상가는 물론 교회, 원룸, 다세대 주택 등이 몰려 있다.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배달을 한 덕에 각 사무실과 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다 꿰고 있다. 빌라 1층 현관문의 비밀번호까지 다 외우고 있을 정도다.

김 씨가 골목에 차를 세우자 아이와 함께 걸어가던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

“우리 집은 사람이 없을텐데 문 앞에 두고 가시면 돼요.”

김 씨는 기자에게 “B 빌라에 사는 아주머니인데, 자주 쇼핑몰 주문을 하는 분”이라고 귀띔했다.

28일 하루 동안 김 씨가 배달해야 할 택배는 200여 상자. 추석 선물 물량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아직은 인터넷 쇼핑몰이나 TV홈쇼핑 배달 품목이 많다. 정오께 서울 도화동에 있는 CJ대한통운택배 서울 중구지점을 출발해 배달을 하고 오후 6시까지 다시 지점에 복귀해야 하니 뛰지 않을 수 없다.

김 씨를 도와 배달에 나선 기자도 상가 건물과 빌라트, 연립주택의 계단을 10킬로는 족히 되는 선물상자를 들고 쉴 새 없이 뛰어서 오르내렸다. 어느새 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30초 이내에 대답이 없으면, 경비실에 맡기거나 해야 한다.

한 곳에 많은 배달처가 몰려 있는 아파트 밀집 지역이 더 편하지 않을까. "일장일단이 있어요. 아파트는 위아래만 왔다 갔다 하니 지루하고 정신은 몽롱해져요."

"추석만 잘 넘기면 택배 일도 할만 해…가장 꺼리는 건 '고추'"

김 씨의 하루는 오전 7시를 전후해 시작한다. 중구 지점에 대전을 비롯해 경기 용인, 군포, 충북 옥천 등 전국 곳곳의 물류 허브에서 트레일러나 11톤 트럭에 실린 택배가 도착하면 이른바 ‘가데기’라고 하는 하역작업이 시작된다.

택배 상자가 컨베이어벨트에 실리면 벨트 양 쪽에 줄지어 탑차를 대 놓고 대기하고 있던 택배기사들이 자신의 구역으로 가는 상자를 찾아 싣는다. 김 씨는 “배달할 순서대로 물건을 탑차 안에 쌓는 것도 요령”이라고 말했다.

추석을 앞두고 이미 50% 정도 배달 물량이 늘어난 상태이지만, 물량은 다음달 2일쯤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추석 택배는 농수산물 과일, 가공식품 세트가 많기 때문에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게 특징이다. 추석 배달이 얼마나 힘든지 택배 기사들 사이에는 “추석을 넘기면 택배는 계속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기사들이 가장 꺼리는 것은 아직 갈지 않은 고추다. 무게가 가벼워 택배 요금은 똑같지만 쇼핑몰 의류를 배달하는 파우치 팩 몇백개의 공간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김 씨가 속한 중구지점 영업2팀에는 기사 28명이 속해 있다. 택배 기사의 연령은 20대부터 56세까지 다양하다. 일이 힘들어 과거에는 ‘택배 기사의 정년은 40세’라는 말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50∼60대도 늘고 있다.

서울 중구의 경우 상대적으로 배달처가 밀집돼 있어 일을 하기 수월한 편이다. 자신의 차로 하루 200건 정도 배달을 하면 월 400만원 수입이 가능하다. 요즘은 부부가 함께 배달을 하는 경우도 늘었는데, 이 경우 500만원 이상 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물론 한달 20만∼30만원 정도의 유류비나, 무단주차 과태료 등은 택배기사 본인 부담이다.

'40세 정년'이라던 택배 업무, 지금은 50대도 늘어

경기가 좋지 않아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터넷 쇼핑몰 이용이 많아지면서 택배 수요는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3D 업종’이라고 알려진 탓에 일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양용필 중구지점 영업2팀장은 “택배 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한 달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며 "하지만 거기서 나름의 재미를 찾으면 나이 들어서까지 이만한 직업이 없다”고 말했다.

“택배는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들 배달을 기계로 대체할 수는 없지요. ”

박경철 CJ대한통운 중구지점장은 “택배는 성실하게 자기의 몸으로 사는 사람들의 직업이자, 앞으로 절대 없어질 수 없는 직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양영권기자 inde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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