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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높아지는 “프리덤” 목소리…불안한 영국 ‘경제적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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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세계쏙] 내달 분리독립 투표 앞둔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의 독립 영웅인 윌리엄 월리스는 1305년 8월23일 런던에서 처형됐다. 스코틀랜드를 침공했던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는 저항군을 이끌던 월리스에 대한 증오심이 어찌나 컸던지 처형에 온갖 잔혹한 수법을 동원했다. 벌거벗겨 처형지로 끌고 가 나무에 목을 매달았고, 숨이 끊기기 전 끌어내려 거세하고 창자를 꺼내 불태웠다. 능지처사 뒤 주검 조각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각지에 내걸었다. 월리스는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순교자로 남았다. 멜 깁슨이 주연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1995년)에서 처형 직전 “프리덤!”(자유)을 외치던 비장한 영웅은 그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이후 스코틀랜드는 1314년 6월 잉글랜드에 대승을 거둔 배넉번 전투를 거쳐 독립을 되찾았다. 하지만 17세기 초에 두 왕국의 왕위계승권이 통합되고 18세기 초에 통합 의회를 세워 연합왕국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찬성론 왜?
반잉글랜드 정서 뿌리깊은데다
캐머런 보수당 정치노선에 반감
금융위기뒤 긴축정책에 삶 팍팍
우세하던 반대여론 점점 줄어


스코틀랜드는 켈트족,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으로 민족 기원이 다르다. 침략 역사에 대한 집단기억은 현재 스코틀랜드의 분리주의 정서, 반잉글랜드 감정의 뿌리가 됐다. 이제 스코틀랜드는 다음달 18일 배넉번 전투 700돌을 맞아 분리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2011년 영국 지방선거에서 민족주의 성향으로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압승하자 집권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 지역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이듬해 주민투표 방안을 허용했다. 통과가 불가능하리라 보고 던진 승부수였지만, 최근 찬성 여론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중앙정부와 정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주민투표 통과 시 2016년 3월 정식 독립국가를 선포하는 일정이 잡혀 있다.

사실 역사에서 연원한 지역·민족 감정 이외에 분리독립 정서에 불을 지른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보수당 정권이 추진한 긴축정책과 민영화 추진에 대한 반발이다. 스코틀랜드 지역에는 웨스트민스터 하원의회 650석 가운데 59석이 할당돼 있는데, 노동당이 41석이고 우파 연정을 구성한 집권 보수당(1석)과 자유민주당(11석)은 소수파에 불과할 정도로 좌파 성향이 강하다. 게다가 스코틀랜드 자치 의회에서는 민족주의 성향의 스코틀랜드국민당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가디언>은 “독립 찬성 캠페인을 벌이는 고위 인물들은 유권자들에게 오직 독립만이 스코틀랜드를 긴축과 민영화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확신시키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분리독립 찬반 논쟁의 핵심은 경제적 득실 계산이다. 스코틀랜드국민당 등 찬성 진영은 1조5000억파운드 상당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된 북해유전의 90%가 스코틀랜드에 귀속된다는 점을 기반으로 복지국가 이상을 실현하겠다고 주장한다. 세금을 낮추고 복지 수준은 북유럽에 상당하게 끌어올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 진영과 영국 정부는 독립을 선택하면 북해유전 투자비용을 회수할 것이며, 대표적 기축통화인 파운드화를 사용할 수 없고 국가 시스템 건설 비용도 15억파운드에 이르러 엄청난 경제 혼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 북해유전의 매장량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추정이 너무 과장돼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 통계청은 매장량 가치를 10분의 1 수준까지 낮춰 잡는다.

가장 큰 문제는 파운드화 지속 사용 가능 여부다. 스코틀랜드국민당 등 독립 찬성파는 파운드화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겠다고 했지만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해 별도 재정정책을 편다면 파운드화 사용은 어렵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비비시>(BBC) 방송은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재무장관이 분리독립 뒤 파운드화 사용을 불허한다면 스코틀랜드 몫인 1000억파운드의 국가채무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맞섰다고 26일 전했다. 영국 재무부는 독립시 즉시 스코틀랜드 몫의 국가채무를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해왔다.

분리독립 성패 가를 경제득실 이견
국민당, 북해유전 기반으로 한
복지국가 건설 청사진으로 제시
영국은 파운드화 사용 금지 등 경고
경제 혼란 우려가 풍향계 될듯


지난 25일 <비비시>를 통해 생중계된 두번째 분리독립 찬반 토론이 끝난 직후 <가디언>의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 독립 찬성 진영이 더 잘했다고 평가한 응답자가 56%로 반대 진영의 손을 들어준 36%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토론회 다음날인 26일에 유권자의 20%에 해당하는 우편 투표용지를 받은 이들이 70만명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영향력은 상당해 보인다. 지난해 말만 해도 독립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을 20%포인트 이상의 격차로 따돌렸지만 이달 들어서는 많게는 10%포인트 안팎 적게는 4%포인트까지 격차를 좁혔다는 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영국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스코틀랜드가 정말 독립하면 북해유전의 경제적 가치, 군사적 중요성 등으로 큰 타격과 혼란이 예상된다. 하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스코틀랜드에서 워낙 인기가 없어서 여론을 되돌릴 정치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당은 스코틀랜드 독립으로 좌파 지지세가 큰 이 지역의 의석들을 잃으면 정치적 타격이 크다. 이 때문에 집권 보수당 못지않게 몸이 달아 있지만, 독립 찬성파들에 맞서려고 보수당 정책을 옹호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다.

스코틀랜드가 독립 때 유럽의 강소국으로 재탄생할지, 혼란과 경제적 추락에 직면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이래저래 영국 정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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