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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오구라 컬렉션 한국유물 4000점 등 조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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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토요판] 진짜 돌려받아야 할 문화재들

2010년 11월 일본 정부는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아, 우리 정부에 ‘인도’를 약속한 고서 1205책의 목록을 공개했다. 목록을 열람한 국내 연구자들은 깜짝 놀랐다. <조선왕실의궤>와 더불어 환수본들의 핵심인 구한말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반출본(이토본) 66종 938책은 전혀 몰랐던 책들이었다. 이토본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부만 돌아온 바 있다. 2000년대 이래 국내 학자들이 일본 궁내청을 찾아가 반출본을 조사했지만, 이토본이 소장됐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엄청난 반출 목록을 갖고서 선심을 썼다는 걸 직감했어요. 하지만 모처럼 우리 문화유산이 다수 돌아오는 상황에서 목록 공개를 요구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연구자의 회고처럼, 대마도 불상 반환에 얽힌 논란의 배경에는 과거 일본에 유출된 문화재 반환 교섭 과정에서 겪은 피해자의 수모와 이로 인해 악화된 국민들의 배일감정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정부는 50년대초 문화재 반환 교섭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정보 부족으로 일본 쪽에 몇 수를 지고 들어가야 했다. 국내 진보·보수 구도를 논할 때 비유하는,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과 같다. 10년여 전문가 협상을 거쳐 1965년 타결된 한일협정에서 한국 정부는 일제 강점기 대구의 거상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가져간 유물 컬렉션을 포함한 4479점의 반환 목록을 제시(확실한 통계는 아니다)했다. 실제로 반환된 것은 3분의 1 정도인 1432점이었다. 국내 실태 조사만을 주된 근거로 요구했지만, 문부성 산하 문화재보호위원들의 광범위한 조사로 소장품 정보를 두루 꿰고 있던 일본 쪽은 능란하게 요구를 피해갔다. 개인 소장품은 환수 대상이 아니며, 강제 반출 근거가 없다거나 정당하게 구입했다는 식이었다. 환수품 중에는 한송사 석조보살좌상 등 국보급 유물들도 있었으나, 막도장이나 짚신 등 값어치 떨어지는 유물들이 적지 않았다. 일본은 앞서 1958년 어민 나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반환한 유물 100여점까지 1965년 협정 때의 반환 목록에 포함시키는 꼼수를 부렸다. 유물 정보가 빈약했던 한국 정부는 이의제기조차 제대로 못했다.

올해 6월 현재 문화재청이 파악한 일본 내 우리 문화재의 총량은 6만7708점이다. 불법반출품이 아니라, 여러 경위로 일본에 건너갔다고 공식 확인된 문화재 수치다. 개인 소장품까지 합산하면, 일본 내 우리 문화유산의 수량은 30만여점에 이른다는 게 정설이다. 개인 소장품은 국공립 박물관 소장품보다 훨씬 더 공개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공식 집계치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추정에 설득력이 있다.

우리 정부엔 환수 대상 문화재의 공식 목록이 없다. 반출 경위 정보가 빈약하며, 체계적인 조사가 실행되지 않은 탓이다. 학자나 기관마다 환수 대상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며 정보의 편차도 심하다. 개략적으로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환수 대상으로 꼽는 것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정부가 반환을 요구한 것들이다. 4000여점으로 추산되는 오구라 컬렉션과 조선총독부가 1920년 발굴해 1938년 도쿄제실박물관(현 도쿄국립박물관)에 넘긴 경남 양산 부부총 출토품 등이 대표적이다. 또다른 거상 오쿠라 기하치로가 1918년 조선총독부로부터 불하받은 사실이 드러나 경기도 이천 시민들이 반환운동을 벌여온 도쿄 오쿠라슈코칸의 이천향교오층석탑, 경복궁에서 뜯어온 가마쿠라의 관월당 등도 반출 경위 등이 확실하다. 오구라 컬렉션의 경우 구체적인 유물 입수 경위 등이 도굴 등 설만 난무한 채 1982년 도쿄박물관 기증 당시에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국내와 일본 쪽을 오가며 체계적이고 집요한 반출경위 조사가 절실하다.

일본 정부 쪽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른 문화재 ‘인도’와 뒤이은 2011년 옛 조선총독부 반출본 고서 ‘인도’로 정부 차원의 교섭은 완전히 종결됐다는 입장을 굳혔다. 학계에서는 환수의 당위성만 외칠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현지 조사를 통한 세부적인 유물 정보와 유출 경위 파악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조해 일본의 ‘종결 논리’를 약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문화재청은 2012년 산하에 전담기관으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만들었으나, 인력 편제나 예산 지원이 빈약해 교섭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협정의 문화재 교섭사를 연구해온 류미나 국민대 교수는 “일본이 기본 정보를 독점해온 상황에서 감정싸움만으론 절대 이득을 얻을 수 없고 일본의 협력자들만 떨어져 나가게 된다”며 “조사인력 양성과 연구 지원에 진력하고, 철저히 객관적으로 파악된 사실에 바탕해 환수 역량을 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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