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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유기농 밀과 국산팥 천연발효종 만나 탄생한 단팥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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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집 맛난 얘기]

서울 서초구 양재역 <밀내음 단팥빵>

얼마 전 서점가에는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일본 시골의 <다루마리>라는 빵집 주인이 쓴 책이다. 자연 재배 통밀을 직접 제분해 천연효모빵을 만들어 파는 빵집 이야기다. <다루마리>의 빵은 생각보다 덜 비싸고 훨씬 맛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환호한다. 저자는 빵집 경영의 중심을 이익이 아닌 행복추구에 두고 있어 더욱 화제를 모은다. 이 책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예비창업자,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생태론자,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는 사람 등 다양한 독자층을 형성했다. 서울 양재역 <밀내음 단팥빵>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이 책이 떠올랐다. 이 집도 천연발효종으로 빵 반죽을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이 집은 생태주의나 사회개혁 차원에서 빵을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건강에 좋은 프리미엄급 단팥빵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다루마리>와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1874년 일본서 탄생한 단팥빵, 이 땅서 새로운 변신 꿈틀

19세기 말 일본은 네덜란드로부터 들어온 제빵 기술을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 오카다 데쓰가 지은 ‘국수와 빵의 문화사’에는 당시의 이런 정황이 잘 나타나 있다. 1874년 기무라 야스베에라는 사람이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쌀누룩에서 얻은 주종 반죽에 팥소를 넣은 과자빵을 만들어냈다. 단팥빵이 세상에 처음 탄생한 순간이었다.

단팥빵은 서양식 빵에 일본에서 먹었던 만주나 다이후쿠모찌(大福餠, 찹쌀떡)가 결합한 형태다. 사실 겉 재료에 소를 채워 먹는 방법은 중국식이다. 단팥빵은 서양과 중국과 일본의 문화가 포개진 특별한 음식이다. 이것이 일제 강점하의 이 땅에도 들어와 노년층에겐 추억의 빵이 되었다. 그리고 젊은이에겐 여전히 스테디셀러 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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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방 만드는 과정


최근 프리미엄급 단팥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단팥빵이 이 땅에 선보인지 거의 한 세기가 되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런 현상이다. 저마다의 개성과 장점을 내걸고 고급화시킨 단팥빵들이다. <밀내음단팥빵>도 독특한 콘셉트로 단팥빵 애호가들을 모으고 있다. 유기농 밀가루를 천연발효종으로 발효시켜 국산 팥을 넣어 만든 수제 단팥빵이 이 집의 콘셉트다. 천연 원료로 세 번 발효시켜 만든 수제 단팥빵

단팥빵의 핵심은 아무래도 팥이다. 국산 팥을 24시간 물에 불린 뒤 세 번 삶는다. 이렇게 해야 팥에 내재된 쓴맛이 빠진다고 한다. 잘 삶은 팥에 국내산 천일염과 설탕을 넣고 팥소를 만든다. 이때 다른 제빵 업소와 달리 설탕의 투입량은 소량을 넣어 당도를 낮췄다.

빵의 몸틀인 밀가루는 유기농 제품을 쓴다. 여기에 국내산 천일염과 천연버터 등과 함께 자체적으로 배양한 천연발효종을 넣어 반죽을 한다. 충분히 치댄 반죽은 1차 발효를 시켜 풍미와 질감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발효가 끝난 반죽은 정확한 중량을 재 반대기로 만든 뒤 중간발효를 시킨다. 이 반대기에 팥소와 내용물을 넣고 성형을 한 뒤 2차 발효를 시켜 오븐에 넣고 구우면 단팥빵이 완성된다.

가장 일반적 단팥빵인 밀내음단팥빵(2300원)을 비롯해 모두 10가지 빵이 나온다. 그중 7가지는 단팥빵이고 3가지는 디저트식이다. 견과단팥빵(2800원)은 호박씨, 해바라기, 호두, 캐슈너트, 아몬드, 이렇게 5종의 견과류를 팥소와 함께 안에 넣었다. 빵을 깨물면 달콤한 팥소와 함께 고소한 견과류가 씹힌다. 팥소 위에 녹차와 커스타드, 그리고 단호박을 충진한 녹차단팥빵(2600원)과 커스타드단팥빵(2600원)이 있고 단호박단팥빵(2900원)도 있다. 하얀 코코넛 가루를 뒤집어쓴 채 노란 망고 크림이 든 망고바닐라단팥빵(3300원), 빵 위에 크렌베리가 올라가 있는 크림치즈단팥빵(3300원)까지 모두 7종이다. 빵류 외에 3종의 디저트가 있다. 팥은 넣지 않고 촉촉한 타르트 위에 블루베리와 치즈를 올린 블루베리타르트(3800원)외에 수제초코머핀(3200원)과 샤바랭(38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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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방 만드는 과정


폭신한 촉감에 달지 않아, 향후 다양한 팥 음식 출시 예정

즉석에서 직접 만든 수제 단팥빵은 바로 만들어 바로 먹는 특성상 첨가물 등을 따로 넣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제빵 과정에서 철저한 위생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빵 속에 넣는 팥과 크림은 잡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어서 더욱 세심한 주의가 요망된다. 이 집은 크림을 끓이고 삶는 솥은 확실하게 소독을 한 뒤 사용한다. 또한 팥소와 빵에 들어가는 크림이나 내용물은 모두 당일 사용분만 생산해 당일에 모두 소진시킨다.

빵 몸을 찢듯이 양손에 쥐고 살짝 잡아당기면 쉬 끊어지지 않고 오래 버틴다. 즉, 길게 늘어나는 연신율이 높다. 그러면서 폭신폭신하고 보들보들하다. 이게 입 안에 들어가면 부드러운 식감을 낸다. 팥소나 크림을 만드는 과정에서 설탕을 적게 넣어 빵 맛이 그리 달지 않다. 강렬한 단 맛을 기대했던 사람에게는 다소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먹고 나면 속이 아주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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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방


빵들은 겉으로 봐서는 단팥빵 같지 않다. 그러나 속에는 팥소와 함께 맛있는 크림들이 꽉 찼다. 이런 유형의 단팥빵은 국내에선 처음 봤다. 맛도 맛이지만 빵의 외형에 디자인 감각을 입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듯, 보기 좋은 빵이 먹기에도 좋은 법이다. 특히 디저트류 3종은 외양이 퍽 화려해 먹기 아까울 정도다.

주인장에 따르면 이 집은 ‘빵집’이 아니란다. 향후 국산 팥으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을 선보일 예정인데, 그 중 단팥빵이 먼저 나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밖에서 보면 얼핏 일반 빵집 같지만 100% 테이크아웃으로만 판매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반죽기, 발효기, 오븐 등 각종 제빵 기계나 기구가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는 빵을 성형하는 직원들이 매대와 이어진 작업대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장차 팥으로 맛을 낸 음식들이 어떤 모습으로 탄생할지 자못 궁금하다. 기왕이면 맛과 독창성에서 기무라 야스베에가 만들어낸 단팥빵을 능가했으면 좋겠다.
<밀내음 단팥빵> 서울시 서초구 강남대로 224 양재역 7번 출구 070-4131-0504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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