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피부: 촉각문화론'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인간의 손은 점점 빈약해지고 있다. 잉카제국의 장신구나 중세의 수공직물을 보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와세다대 정치학부를 졸업했지만 이제는 경계를 넘나드는 사진가 겸 평론가로 활동 중인 일본의 미나토 지히로 다마미술대 교수(정보디자인학).
그가 촉각의 퇴화와 대체를 화두로 '피부'에 대한 문화적 고찰을 시도한 저작 '생각하는 피부: 촉각문화론'(논형)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저자는 피부란 무엇이냐는 존재론적 질문에서 출발해 촉각의 본질을 이루는 통증과 이를 상징화해내는 가시, 피부가 드러내는 사회정치적 의미로 논의를 전개해간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피부와 촉각이 어떻게 확장되어갈 수 있는 지, 또 아무리 확장되더라도 촉각이 갖는 본질적 의미는 불변이라는 깨달음을 도출해 보여준다.
통증은 개체의 존재함을 확인하는 빼어난 기준이다. 그런 맥락에서 가시는 외부로부터 개체의 촉각을 자극하는 유용한 통제적 장치로 활용될 수 있음을 저자는 직시한다.
프랑스 삽화가이자 작가인 토미 웅게러는 인형에 바늘을 찔러놓은 이미지로 공포를 자아냈다.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응콘데라 하는 조각상은 전신에 가시를 두른 형태로, 가시는 곧 '명령'을 상징화한다. 무수한 가시로 상징화되는 이 같은 전면적 외부의 통제는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 힘이며, 오로지 집단과 군중의 힘을 통해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히로 교수는 이어 피부색에 따른 인종의 개념에 주목한다. 서세동점 시기 인종적 연구는 서구의 우월주의를 입증하기 위한 목적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통증에 대한 상기를 통해 생생하게 부각된 '피부'는 이로써 정치적으로 더욱 그 의미를 확장한다.
저자는 나아가 화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와 같은 시기를 산 해부학자 오노레 프라고나르를 대비하면서 고통을 모르는 쾌락의 세계를 그린 회화 작품과 피부를 벗겨 낸 인체 표본을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행복은 아름다운 피부에 깃들지만 그 행복을 깨부수는 증오 또한 피부로 깃든다."
심지어 함께 프랑스 국립 예술평의위원회 위원을 지내기도 한 두 사람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장갑의 오른쪽, 왼쪽과 같았다.
지히로 교수는 피부를 벗겨 낸 인체에 이어 피부를 대신하는 인공물들에 대한 탐구로 시선을 돌린다. 원격 현장제어기술의 발달과 비행 시뮬레이터의 등장 등 이제 피부와 촉각을 대신하는 기술의 산물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손의 감각을 유지, 확장하고픈 인간의 욕구 또한 사그라지지 않음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 신체의 표면을 두드리는 희미한 신호를 감지하는 것은 인간의 최대 능력이며, 경계란 폐쇄적인 벽이 아니라 무수한 신호에 반응하는 감각적 장소라는 것. 이는 불변이라는 깨달음이다.
그리하여 저자의 상상력은 이어진다. "만약 정보통신망이 제2의 피부로서 지구를 연결한다면 그 손가락들이 따로 움직여 만든 제3의 피부가 언젠가 세계를 뒤덮는 날도 오지 않을까." (274~275쪽)
김경주·이종욱 옮김. 284쪽. 1만8천원.
jb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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