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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청일전쟁 120년] "패전의 원인은 軍의 분열… '해양 강국' 되려면 國恥도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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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옌타이대 왕밍싱 교수

조선일보

중국 근현대사 연구자 왕밍싱(王明星·사진) 옌타이(煙臺)대 교수는 "갑오전쟁(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진 것은 지배층이 사치와 호화를 누리고 사회 풍기가 나빠져 인심이 흩어진 까닭"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민은 청일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중화 민족의 치욕이자 국치(國恥)라고 여긴다."

―중국은 1880년대만 해도 일본보다 전력이 강하다고 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참패한 까닭은.

"패전 원인을 전력 열세에서 찾았던 사람은 리훙장이다. 그는 자기 과오를 변호하려고 '그들의 군대 장비가 우리보다 강하다'고 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중국 해군은 당시 세계 9위로 일본보다 앞섰다. 일본이 히로시마에 대본영을 설치하고 통일적 관리를 한 반면, 청은 육·해군 협조 방어 개념이 없었다. 일본군이 산둥반도에 상륙했을 때 리훙장은 이곳이 산둥 방어대 관할 지역이라고 여겨 도외시했다. 웨이하이가 위험에 빠졌을 때 산둥 방어대는 그곳이 리훙장의 영지인 까닭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청 군대는 분열했고, 관료는 부패했다."

―이 시대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교육하나.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중국이 4000년 깊은 꿈에서 깨어난 것은 청일전쟁 패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청 함대가 패배한) 류궁다오는 수치스러운 장소가 아니라, 중국이 해양 강국으로 가는 하나의 여정(旅程)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까닭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보복하려는 게 아니다."

―현재 중·일 관계가 청일전쟁 당시와 비슷하다는 견해가 있다.

"일리가 있다. 일본 정부는 침략 역사를 부정하고, 전후 국제 질서에 반하는 언행을 일삼고 있다.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를 둘러싼 아베 정부의 대중 정책은 청일전쟁 발발 당시 이토 내각의 침략 정책으로 변질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120년 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중국의 국력은 30여년간 부단한 노력 끝에 일본을 앞질러 세계 2위에 올랐다. 반면 일본 경제는 20년간 침체기를 걸었다. 갑오년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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