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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연봉5천만원' 받던 명문대생, 농가로 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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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유통 거품 걷겠다 … 청춘 건 엘리트 넷

서울대·포스텍 출신 20대, 직거래사이트 헬로네이처 창업

헬로네이처 4인방이 판매상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 지원만으로는 창업에 한계가 있다”며 “경험과 사회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태환·박병열·유준재·좌종호씨(왼쪽부터). [안성식 기자]


지난해 여름, 좌종호(26·서울대 농업경제학과)씨는 전공 수업 과제 때문에 시장조사에 나섰다가 깜짝 놀랐다. 산지에서 3500원(10㎏)에 불과하던 경기도 여주산 가지가 소매시장에선 3만6000원(10㎏)으로 둔갑한 것. 복잡한 유통과정 때문이었다. 가격은 10배가량 높아졌는데 농민들 손에 떨어지는 돈은 몇 푼 되지 않았다. 신선도는 되레 떨어졌다. 좌씨와 또 다른 청년 창업가 박병열(27)씨는 이 점에 착안해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싱싱한 과일·야채를 저렴한 값에 소비자의 식탁 위로 올릴 수 있다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영세한 농민들도 도울 수 있다면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가 된다. 이들은 창업과 농업에 관심 있는 조태환(20)·유준재(26) 두 명을 추가로 영입해 농수산물 직거래사이트 ‘헬로네이처’를 만들었다.

 헬로네이처 4인방은 흔히 말하는 ‘명문대생’이다. 박씨는 포스텍 산업공학과, 나머지 3명은 서울대 경제학부·농업경제학과 출신이다. 이들은 충분히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지만 창업을 택했다. 실제로 좌씨는 일본 교환학생 기간 중 ‘구글재팬’으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기도 했다. 박씨도 외국계 컨설팅회사 A.T 커니와 쿠팡에서 회사생활을 했다. 연봉 5000만원 이상을 받았고 미래도 어느 정도 안정적이었지만 ‘내 회사’를 꾸리고 싶어 박차고 나왔다. 박씨는 “높은 연봉을 받았지만 진정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안주하기보다는 열정과 오너십을 갖고 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변변한 사무실조차 없어 초기엔 친구 사무실과 커피숍을 전전했다. 공급자 확보를 위해 4개월 넘게 제주·강원·경기 전국을 누비기도 했다. 젊은 청년들이 단체로 시골을 어슬렁거리니 사람들은 사기꾼 취급을 했다. 농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농촌 일을 거들었다. 김장김치를 함께 담그고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그렇게 하나 둘 계약한 농가가 지금은 20여 곳에 이른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창업보육프로그램에 선정된 것도 이맘때였다. 100여 팀 중 4팀을 뽑는데 헬로네이처가 선정된 것. 덕분에 무료로 상암동DMC(디지털미디어시티) 누리꿈스퀘어에 사무실도 얻었다. 올 1월 정식으로 법인도 설립했다.

 헬로네이처는 기존 업체들이 농산물을 저장해 놓았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하는 것과 달리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수확해 소비자에게 직배송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 때문에 하루에 판매할 수 있는 양도 항목별로 정해져 있다. 귤·곶감·참다래 등을 취급한다. 박씨는 “우리 농산물 품질이 굉장히 좋은데 긴 유통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레 품질이 떨어진다”며 “이 때문에 국내 농산물이 평가절하되는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고품질 농산물을 골라내고 판매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품질위원회’도 설립했다. 조리사자격증을 갖춘 경험 많은 파워블로거나 요리책 저자들을 섭외했다. 품질위원인 김진옥씨는 “젊은 사람들의 열정에 공감했고 이해관계가 없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품질위원’이라는 이름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들 4인방은 “무작정 농민만을 위한다는 ‘공익성’으로 다가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비자에게 좋은 제품을 싸게 제공하면 계속해서 소비자가 찾게 될 것이고 결국은 농민들에게까지 도움이 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박씨는 “한 달에 일정 금액 납입하면 계속해 과일·야채 꾸러미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며 “아직은 수익이 나진 않지만 앞으로 연매출 500억원을 내는 유통왕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좌씨도 “농업은 젊은 사람들이 잘 안 가는 분야인 만큼 우리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최신 정보기술(IT)과 트렌드를 반영해 대형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채승기 기자

채승기.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안성식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ans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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