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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보현산에 여의도 3배 땅 … "구원파 왕국 만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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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일가, 청송 900만㎡ 매입 왜

"녹색회 회원 1만 명 들어와 살 것"

소방차·폐교·주유소까지 사들여

"시가 4배에 집 사고 안 팔면 소동"

30㎞ 거리 군위엔 대형 화훼단지

중앙일보

경북 청송군 현서면에 한국녹색회가 만든 집단농장 안의 집들. 2003년에는 40여 명이 거주했지만 주민들과 충돌로 지금은 10여 명만 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유병언(73) 전 세모 회장 일가가 환경단체 한국녹색회를 내세워 경북 청송군 일대에 900여만㎡ 토지를 매입한 배경은 뭘까. 이곳은 서울 여의도 면적(290만㎡)의 세 배를 넘는다. 외견상으로는 영농법인이지만 주유소·소방차·구급차까지 구입한 것으로 미뤄 장래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들이 모여 사는 종교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녹색회는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이 설립한 환경단체다. 23일 검찰에 따르면 한국녹색회는 2002년부터 2003년 6월까지 경북 청송군 현서면 보현산 일대 토지 등을 잇따라 사들였다. 모두 75억8000만원어치에 이른다. 현재 이 땅은 유 전 회장의 두 아들 대균(44)·혁기(42)씨 소유로 돼 있다.

청송군 지역현안사항 대책협의회 등에 따르면 보현산 일대 땅을 집중 매입할 당시 한국녹색회는 임야와 전답, 가옥은 물론 주유소와 식당을 샀다. 안동시에 위치한 폐교도 매입했다. 녹색회에 가옥과 토지를 판 갈천리 주민 20여 명은 청송을 떠났다. 청송군 주민 김모(69)씨는 “시가로 500만원인 주택을 2000만원 넘게 사들이곤 했다”며 “팔지 않은 주민들에겐 소동을 벌였다는 얘기도 많았다”고 했다. 녹색회는 불용(不用) 처리된 소방차 3대와 구급차 1대도 매입했다. 인근 월정초등학교를 임대해 병원으로 만들겠다며 의료법인 허가를 신청했으나 주민들이 반발해 성사되진 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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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녹색회는 거대한 땅을 사들인 이유에 대해 “유기농 공동체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현산 청정지대에서 유기농법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자연보호 활동을 전개하겠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농사를 거의 짓지 않았다. 청송군 주민들은 “녹색회가 마을 사람들의 통행을 철저히 막고 농사를 거의 짓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멧돼지 등을 사육하며 가축분뇨를 그대로 버려 악취로 주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03년 6월 청송군 주민들과 한국녹색회가 충돌하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전국에서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약자인 ‘EBC’가 찍힌 버스를 타고 녹색회 회원들이 내려오기도 했다.

청송 주민들 사이에서 보현산영농조합을 명분으로 구원파의 공동체를 건설하려 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청송군 주민 박모(70)씨는 “녹색회 사람들은 앞으로 회원 1만여 명이 청송으로 들어와 살 거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며 “보현산은 1940년대 ‘시온산성일제국’ 같은 신흥 종교가 자리 잡았던 곳이라서 구원파 왕국이 들어설 것이라고 얘기하는 주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영농법인 내 양옥 앞에서 수십 명이 의자에 앉아 성경책 같은 것을 보며 종교 행사를 하는 모습을 목격한 주민도 있다. 한 주민은 “수년 전부터 사람들이 조금씩 보현산을 빠져나가 지금은 10명가량 사는 것 같다”며 “이들은 양옥에 모여 아침저녁으로 종교 행사를 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한국녹색회는 2003년 보현산 일대 땅을 매입할 때 보현산영농법인을 통해 경북 군위군의 땅도 사들였다. 보현산에서 차로는 20여 분, 거리로는 29㎞쯤 떨어진 곳이다. 군위군에 따르면 당시 조합은 우보면 이화리에 있는 3만9669㎡(1만2000여 평)의 시설화훼단지와 고로면 석산리 전답(7272㎡·2200여 평)을 8억원에 구입했다.

군의 한 공무원은 “며칠 전 화훼단지를 갔더니 숙소용 가건물이 설치돼 있었고, 유리온실 단지 일부에서 오이·딸기 등을 재배하고 있었다”며 “비닐하우스 등 나머지 시설은 쓰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대구에는 유 전 회장의 장남인 유대균(44)씨 명의 주택도 있다. 98년 4월 대균씨가 직접 구입한 것이다. 2층 주택과 별채를 합해 건물 면적이 350여㎡(약 105평)에 이른다. 23일 대구시 남구 대명9동에 위치한 이 주택을 찾았다. 담쟁이와 정원수로 둘러싸여 있었고 마당 한편에는 야외 수영장, 차를 마실 수 있는 의자가 보였다. 주택 주변에는 종교시설·상가·주차장 등 5~6개가 한데 모여 있었다.

한 주민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 전 회장이 찾아와 머물기도 했다”며 “이 주택가 일대 상당수가 유씨 일가와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청송=김윤호·안효성 기자

김윤호.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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