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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기고/4월 24일] 수학여행, 꼭 필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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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여객선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요즘 우리 사회 일각에서 수학여행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교육청 홈페이지에는 수학여행을 없애 달라는 학부모들의 청원이 이어지고, 학교현장에는 계획된 수학여행 취소를 바라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걸려온다. 마침내 교육부가 전국 초·중·고에 대해 1학기 계획된 수학여행 전면 금지령을 내렸다. 현장체험학습 시스템 역시 점검이 이뤄질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 수학여행이 도입된 것은 1910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학교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였다. 일본학교들이 시행하는 수학여행이 국내 학교들에 접목된 것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송도고등학교 100년사' 기록에는 1924년 5월12일 졸업반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다녀왔다는 기록이 있다.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던 그 시절, 수학여행은 학생들이 기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사였을 것이다. 수학여행을 통해 학생들에게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체험활동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학교의 '수학여행'이 '수학(修學)'은 없어지고, 여행(旅行)만 남게 되었다. 이전 시대와는 달리 자가용을 이용한 가족단위 여행이 빈번해지고, 토요 휴무제 또한 보편화하었다. 굳이 하룻밤 내도록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가지 않더라도 개별적으로 가고 싶은 곳을 다녀올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오늘날 정규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연중행사로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아마도 일본과 대한민국뿐이란 생각이 든다. 중국도 수학여행이 없고, 미국을 비롯한 서양 여러 나라들에서도 우리네처럼 전 학년 단위의 장거리 여행을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인솔교사들의 지도에 고분고분 따라주던 이전의 학생들과는 달리 개성도 강하고 욕구도 다양한 요즘 학생들은 틀에 짜인 수학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탈 집단화 시대에 천편일률적인 수학여행 자체가 시대착오적 발상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학교마다 소그룹 학생단위의 다양한 목적형 수학여행을 진행한다는 것 또한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 이전의 교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 틈틈이 업무처리를 하곤 했지만, 요즘의 교사들은 업무처리 틈틈이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만큼 업무에 과부하가 걸려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문화체육관광부는 가족단위 여행을 독려하는 공문을 일선 학교들에 보냈다. 진정 바라기는 가족 단위의 여행이 활성화되어 학교 단위의 대규모 수학여행과 빈번한 체험학습을 대체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학부모야말로 자녀에게 도움이 될 여행지와 필요한 체험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학교가 아무리 꼼꼼하게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학여행을 추진한다 해도 학년단위의 대규모 장거리 이동은 항상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선박뿐만 아니라 비행기, 열차, 버스 모두가 대형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 언제까지 학교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부담을 떠안아야 하겠는가. 체험학습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충남 태안에서 발생한 해병대캠프 사고로 5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걸 생각하면 차제에 수학여행과 체험학습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요즘 일선 학교현장은 우리네 가정과 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너무 많이 떠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밤늦도록 야간자율학습을 시켜야 하고, 식당을 운영해 자녀들의 급식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고, 육아 문제로 초등학교들은 '돌봄교실'까지 운영하고 있다. 차제에 수학여행을 진행하기 위한 학교의 여행사 역할 하나만이라도 짐을 덜어주길 바란다.

오성삼 인천 송도고등학교 교장
ㆍ전 건국대 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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