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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이슈 스타와의 인터뷰

다크써클마저 연기한 이병헌 “연기는 진실 향한 끝없는 발버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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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 프런트맨

무수한 질문과 고민으로 만든 디테일

한 사람 안에 담아낸 세 인물의 이야기

“인물의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발버둥”

헤럴드경제

넷플릭스 ‘오징어게임2’ 프런트맨으로 다시 한 번 연기신의 면모를 입증한 배우 이병헌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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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세 사람의 그림자를 품었다. 생존게임에 뛰어들어 우승자가 된 전직 경찰 황인호, 게임의 세계를 떠나지 않고 ‘지배자’가 된 프런트맨, 게임을 파괴하러 온 456번의 대항마인 001번 오영일. 삼원색처럼 뚜렷한 세 자아를 품다 보니 배우 이병헌(55)은 “다중인격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오징어게임’ 시즌2에 함께 출연한 이서환은 그에 대해 “안구를 바꿔끼우는 연기”라며 감탄했다.

또 다시 찬사가 쏟아졌다. 이제는 논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연기신(神)’의 강림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악마의 재능’에 이번엔 세계가 놀랐다. ‘진짜 주인공’이라는 암묵적 합의 위로 ‘경이’에 가까운 성찬이 차려졌다. 지겹도록 듣는 ‘말의 홍수’일 텐데도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여전히 듣기 좋다고 한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뭔가 새롭다, 안 보여줬던 눈빛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되게 좋다”며 웃었다 .

넷플릭스 사상 최고의 히트작인 ‘오징어게임’ 시즌2 공개 15일차. 2주 연속 글로벌 시청 1위에 올랐다. 누적 시청 시간은 9억470만(시즌2 기준). 그 중심에 이병헌이 있다. 시즌1이 456번 성기훈(이정재 분)의 차지였다면, 이번엔 001번 오영일의 차례였다.

‘오징어게임’은 456명의 참가자가 456억원의 우승 상금을 놓고 벌이는 생존 게임이다. 시즌1에선 게임을 진두지휘하는 프런트맨으로 마지막에서야 얼굴을 보여준 그는 전 시즌 최고의 반전이었다. 시즌2에서의 프런트맨은 정체를 숨긴 채 오영일이라는 이름으로 게임 안에 잠입, ‘게임의 세계’를 부수러 온 기훈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이병헌은 “저와 시청자만 아는 비밀을 은밀하게 건드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위장한 프런트맨’이라는 진실의 공유는 짜릿한 쾌감이다. 시즌1에서 오일남(오영수 분)이 정체를 숨기다 극의 후반부에 공개된 것과는 정반대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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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2’ 프런트맨 이병헌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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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듯, 이번에도 이병헌은 무수히 묻고 고민하기를 반복했다. 한 사람이면서 세 사람의 내면을 모두 담기 위해서다.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했고, 황 감독에게 수도 없이 물으며 ‘게임 참가자’ 001번 오영일을 만들어갔다. 배우로서 자신을 설득하는 방법이었다.

“배우는 연기로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스스로 설득력이 생기지 않으면 반드시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해요. 배우는 스스로의 이해와 설득에 기대 연기를 하는 사람이거든요. 억지로 연기를 하는 순간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니까요.”

그는 집요하고 세밀하게 캐릭터를 구축한다. 사소한 부분까지 연구하고 계산한다. 한 인물을 낱낱이 해부한 뒤에야 카메라 앞에 선다. 이병헌은 “애초에 글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고스란히 내게로 가져오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했다. 하나의 캐릭터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던진 여러 질문들이 결국 한 사람의 생을 완성했다. 황인호였다가 프런트맨이 됐고, 다시 오영일로 위장한 한 남자로 말이다. 황 감독이 “(이병헌) 선배가 하도 질문을 많이 해서 서사가 완성된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병헌이 그리는 황인호는 “삶의 희망을 모두 잃은 상태에서 게임에 참여했다가 무자비한 죽음과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본 뒤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한 인물”이었다.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에 대한 절망과 환멸로 프런트맨을 자처한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도 ‘희망’과 ‘인간성’을 지키려 게임을 끝내야 한다고 믿는 성기훈과 달리 프런트맨은 게임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456명 중 한 사람이 된다.

그의 눈빛은 복잡다단하다. 아귀 다툼을 벌이는 사람들 속에서 게임을 멈추겠다는 456번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진정한 게임꾼이다. 그러면서도 자신과는 다른 신념으로 무장한 성기훈을 향한 조소와 냉소도 품는다. 내면 깊은 곳엔 여전히 인간성도 가지고 있다. 이병헌은 “프런트맨에겐 양가 감정이 있다”며 “기훈을 향해 ‘너의 신념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그의 신념이 맞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고 했다. 성기훈에게 황인호 시절의 자신을 비춰봤기 때문이다.

“매 장면마다 황인호와 오영일, 프런트맨의 모습을 몇 퍼센트의 비율로 나눠 보여줄지 고민하고, 그 사람의 모습이 시시각각 비추며 어우러지길 바랐어요. 그 비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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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병헌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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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운 장면은 ‘둥글게 둥글게’ 노래에 맞춘 짝짓기 게임이었다. 정해진 숫자에 맞춰야 살아남기에 또 다른 참가자를 죽이는 장면에선 “0.1초 단위로 황인호, 프런트맨, 오영일이 왔다갔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1991년 데뷔해 지난 34년간 TV와 스크린을 통해 무수히 많은 모습을 꺼냈다. 소위 말하는 ‘할리우드 1세대’다. 영화 ‘지.아이.조’ 시리즈(2009·2013)로 한국인 배우로의 한계, 한국영화의 경계를 넘었다. 이후 ‘레드:더 레전드’(2013) ‘터미네이터 제니시스’(2015) ‘미스 컨덕트’(2016) ‘매그니피센트7’(2016)까지 블록버스터 영화가 그를 찾았다. 동시에 한국에서도 걸출한 명연을 남긴 영화와 드라마를 함께 했다.

그에겐 노상 ‘연기 잘하는 배우’, ‘연기 끝판왕’과 같은 진부한 수사가 따라 다닌다. 징글맞은 디테일, 섬세하고 깊은 감정폭, 묵직하고 깔끔한 발성을 가지고 안면의 근육 떨림, 눈 아래 드리운 다크서클마저 연기의 도구로 쓰는 명민한 연기자다. 호흡을 맞춘 배우들은 한결같이 “이병헌은 괜히 이병헌이 아니다. 정말 대단한 배우다” (김혜자), “연기를 할 땐 일상생활에서의 모습이 비춰보이기 마련인데 이병헌은 그런 것이 안 느껴진다. 정말 잘한다”(곽도원)과 말한다.

사실 이병헌의 연기는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그의 오랜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는 “연기를 오래 하면 많은 걸 해봤으니 관성적으로, 자연스럽게 툭툭 나오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고민의 종류가 달라졌을 뿐, 고민의 크기와 시간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아무리 짧은 분량으로 등장해도 주인공을 맡았을 때처럼 캐릭터를 다져간다.

“늘 고민하게 되는 것은 살아온 시간과 관객의 깊이 때문이에요. 관객들은 배우가 연기하는 모든 깊이까지도 들여다 보고 있기에 허투루 할 수 없어요. 또 내가 살아온 세월동안 쌓아온 감정의 레이어가 있으니 웃는 장면, 슬픈 장면도 단순히 표현할 수 없게 되고요. 그러니 모든 상황과 감정을 고려하다 보면 더 복잡하고 힘들어지는 거죠.”

이병헌은 늘 자신을 증명하는 배우였다. 이름 값을 입증하듯 TV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무수히 많은 히트작을 내놨고, 매 작품 다른 캐릭터로 존재했다. 하정우는 그를 ‘열정까지 계산하는 연기 기계’라며 혀를 내둘렀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하선과 광해, ‘협녀, 칼의 기억’ 속 유백 ‘남한산성’의 최명길을 통해 같은 사극도 다른 결로 보여줬고, ‘달콤한 인생’의 김선우와 ‘내부자들’의 안상구를 통해 전혀 다른 세계 속 조폭의 모습을 만들었다. 단 한 작품도 비슷한 연기는 없었다. 올해는 박찬욱 감독과 ‘쓰리 몬스터’(2004) 이후 20여년 만에 만난 ‘어쩔 수가 없다’로 관객 앞에 선다.

“배우로 30년 이상 살아오며 정말 훌륭한 작품인데 내가 못하게 된 작품도 있고, 선택했지만 아쉬웠던 작품도 있어요. 작품 안에서 새로운 연기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단지 어떤 캐릭터든 내가 연기하는 그 인물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거죠. 이미 배우를 시작한 순간부터 배우의 인생은 곧 나의 삶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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