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유도 여자 -52Kg급 은메달리스트 현숙희(광영여자고등학교 유도부 감독)가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용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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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잊지 못하는 날짜가 있다. ‘7월26일’이다.
1996년 7월26일 미국 애틀랜타 조지아콩그레스센터, 앳된 얼굴을 한 유도소녀는 검은 띠를 꽉 조여 맨 뒤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52㎏급 결승 무대를 밟았다. 당시 세계 최강 마리클레르 레스토(프랑스)를 상대로 고군분투했지만 아쉽게 패했다. 울지 않았다. 은메달을 손으로 꽉 쥐며 앞으로 더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25년이 흘렀다. 2021년 7월26일 일본 도쿄 무도관, 소녀는 어느덧 중년이 돼 선수가 아닌 심판으로 매트에 섰다. 앳된 얼굴을 사라지고 흰머리가 늘었으나 비장한 표정은 그대로였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심판으로 활동한 현숙희 광영여고 감독의 이야기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유도 여자 -52Kg급 은메달리스트 현숙희(광영여자고등학교 유도부 감독)가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용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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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맞았던 유도복
시작은 유도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육상을 배웠다. 서울체중 입학 당시 육상으로 수석 합격할 정도로 운동 능력이 뛰어났다. 일찌감치 그녀의 능력을 알아본 진로 담당 교수는 유도를 권유했다. 유도 인생의 시작점이었다. 남들보다 성장이 빨랐다. 중학교 3학년 때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대학생들을 제치고 3등을 차지했다. 유도 입문 3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현 감독은 “1984 LA올림픽 때 하영주 교수님이 금메달을 따는 걸 봤지만, 당시엔 내가 유도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면서도 “해보니 유도가 잘 맞더라”고 웃었다.
염원하던 올림픽 무대까지 섰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결승 무대, 자신감은 넘쳤다. 상대는 당시 세계 최강 마리클레르 레스토였으나, 타 대회서 이겨본 경험도 있었다. 쉽지 않았다. 효과 3개를 땄으나, 처음에 뺏긴 유효가 발목을 잡았다. 당시엔 비디오 판독도 없었다. 아쉬움은 남지만 은메달을 목에 걸어야 했다. 현 감독은 “아쉬움보단 감사함으로 남겼다. 올림픽 참가만으로도 영광인데, 은메달을 땄지 않나”라며 “사실 올림픽에 가기 전 부상이 있어서 조직위원회에서 선발을 우려하기도 했다. 당시 감독님이 ‘무조건 데려가야 한다’며 믿어주셨는데, 그래도 메달을 땄으니 잘 마무리했다고 볼 수 있다”며 미소 지었다.
두 번째 올림픽을 꿈꿨다. 무수히 많은 땀방울을 흘렸으나, 부상이 문제였다. 일찌감치 은퇴를 선택한 배경이다. 현 감독은 “지금은 선수 관리가 잘 되지만, 그때는 재활 체계가 없었다. 무릎이 너무 안 좋았지만, 수술하면 선수 생활이 끝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냥 버텼다. 몸은 더 안 좋아지더라”며 아쉬워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유도 여자 -52Kg급 은메달리스트 현숙희(광영여자고등학교 유도부 감독)가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용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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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는 아니었다. 선수를 은퇴한 뒤 지도자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며 심판 자격증을 취득했다. 심판으로 매트 위에 선 건 1999년이 처음이었다. 하필이면 국가대표 선발전이란 큰 무대였다. 현 감독은 “안면몰수하고 소신껏 봤다. 가차 없이 절반이면 절반, 한판이면 한판으로 과감하게 심판을 봤다”면서도 “이후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된 소중한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7월26일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지 딱 25년째 되는 2021년 7월26일, 현 감독은 심판으로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섰다. 그는 “여러 번 다짐했다. 심판은 판사처럼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직하고 정직하게 판정을 하고, 나의 실수로 우는 사람이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했다. 손끝 자세 하나하나도 허투루 연습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모니터링 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올림픽을 잘 마칠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유도 여자 -52Kg급 은메달리스트 현숙희(광영여자고등학교 유도부 감독, 흰색도복)가 여자 -52Kg급 유망주 신유미(광영여고)를 지도하고 있다. 사진=김용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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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그 이름
“잊지 못할 친구가 하나 있다. 정말 친한 동생”이라며 현 감독이 운을 뗀 주인공은 북한의 유도스타 계순희다. 인연의 시작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었다. 23살 현숙희는 16살의 계순희를 처음 마주했다. 몸 풀 사람이 없어서 혼자 허둥지둥하던 계순희의 손을 붙잡았다. 현 감독은 “파트너가 없더라. 한국어가 통하니까 같이 몸을 풀었다. 젊은데 힘도 좋더라. 배포도 있고 자신감도 넘쳐 보였다”면서 “그냥 격려의 말로 ‘너 잡아보니 다무라 료코(일본)는 상대도 안 되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유도 여자 -52Kg급 은메달리스트 현숙희(광영여자고등학교 유도부 감독)가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용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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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계속됐다. 1997년 세계선수권대회에 다시 만났다. 계순희가 체급을 52㎏으로 올렸다. 현 감독과 도복을 맞잡게 된 배경이다. 현 감독은 계순희에게 패해 동메달을 땄고, 계순희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현 감독은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올림픽 때보다 힘이 더 좋아진 것 같았다”며 “당시에 계순희가 올림픽 때 고맙다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쉽게 만날 수 없음을 알기에 우정은 더욱 애틋했다. 현 감독은 “선물도 주고받았다. 내가 선물을 하나 했었는데, 뺏기더라. 순수한 마음이었어서 그런 부분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 감독이 올림픽 심판을 준비하던 시기에도 다시 만났다. 직접 대화할 수는 없었다. IJF 직원을 통해 안부인사만 겨우 주고받았다. 현 감독은 “내가 말하면 직원이 계순희에게 전달해 주고, 또 계순희의 말을 전해줬다. 계순희가 ‘나중에 지도자로 나오면 다시 만나요’라고 했다”면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계순희를 만난 건 소중하고 귀한 인연이자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설명했다.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유도 여자 -52Kg급 은메달리스트 현숙희(광영여자고등학교 유도부 감독, 흰색도복)가 여자 -52Kg급 유망주 신유미(광영여고)를 지도하고 있다. 사진=김용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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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나의 힘… 유도 인생은 계속!’
이식을 결정하기까지 가족 모두의 큰 결심이 필요했다. 현 감독은 “가족이라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정말… 고맙다. 남편이 알아볼 거 다 알아보고 교수님과 상담해서 ‘신장 하나로 살아도 아무 이상 없다더라. 그러니까 받자’고 설득해 줬다”며 “남편이 유도를 했어서 신체조건이 좋다 보니 교수님이 ‘이렇게 큰 신장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 그 덕분에 회복속도가 배로 빨랐다. 정말 고맙다”면서 울먹였다.
프로농구 SK 신인 김태훈(왼쪽)과 현숙희 감독. 사진=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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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아팠던 탓에 잘 챙기지 못했던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현 감독에겐 부부의 운동신경을 물려받은 두 아들이 있다. 차남은 2024 한국농구연맹(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로 SK의 지명을 받은 김태훈이다. 현 감독은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 특히 첫째 태환이 덕에 동생들을 운동선수로 키울 수 있었다. 태훈이는 씩씩하게 프로에 가줬다. 막내 태후도 홍대부고에서 열심히 농구를 하고 있다. 가족이 있었기에 어려운 일들도 다 이겨낼 수 있었다.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말했다.
현 감독은 자신의 삶을 ‘복’ 받은 인생이라 표현했다. 건강을 되찾은 만큼, 유도를 위해 더 힘을 쓰겠다는 의지가 넘친다. 그는 “심판을 보는 경험을 쌓으면서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었다. 아직 많은 나이가 아니다. 영어 공부도 더 하고, 체력도 더 쌓으면 다시 심판 활동을 할 것”이라며 “그보다 먼저 할 일이 많다. 우리 광영여고 유도부 애들을 잘 키우는 것이 우선순위의 목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스포츠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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