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수는 전력에 큰 비중을 차지
부진에 빠지거나, 태업하거나 부상 입으면
그 해 성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선수를 키우고,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재목을 찾는다. 한 해 농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 선수 구성에도 힘을 쏟는다. 검증된 선수는 눌러 앉히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선수와는 냉정하게 이별한다.
두산은 내년에 뛸 외국인 선수 3명을 모두 새 얼굴로 바꿨다. 왼손 투수 콜 어빈, 오른손 투수 토마스 해치에 이어 좌타자인 제이크 케이브와 계약했다. MLB(미 프로야구)에서 뛴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총 300만 달러(약 42억원)를 쓴다.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조항을 걸지 않고, 신규 외국인 선수 영입 한도 금액인 100만 달러(약 14억원)씩을 전액 보장했다. 올해 와일드카드전에서 KT에 2패를 당하며 ‘가을 야구’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자 쇄신에 나선 것이다. 재계약 선수(투수 2명), 국내 리그 경력자(타자 1명)로 출발했던 2024시즌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키움은 기존 외국인 투수였던 아리엘 후라도, 엔마누엘 데 헤이수스와 재계약하지 않고, 이들이 자유롭게 다른 구단에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올해 130만 달러를 받았던 후라도(10승8패)가 다른 구단에 가려면 ‘신규 외국인’ 자격이 되므로 100만 달러 한도라는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 올해 80만 달러를 쥐었던 헤이수스(13승11패)는 내년 보장액 100만 달러를 제시한 KT와 사인했다. 키움은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둔 헤이수스나 후라도와 재계약하려면 연봉을 올려줄 수 밖에 없었으나 새로 케니 로젠버그를 80만 달러에 잡으면서 비용을 줄였다.
KBO(한국야구위원회) 리그엔 외국인 선수 3명에 대한 샐러리캡(연봉 상한액)이 있다. 연봉, 계약금, 인센티브, 이적료 등을 포함해 총 400만달러(약 56억원)다. 예외적으로 기존 선수와 재계약할 때 연차에 따라 총액 한도를 10만 달러씩 늘릴 수는 있다.
수년 동안 국내 리그에 계속 몸담으며 연봉을 높여가는 ‘장수 외국인’은 희소해지고 있다. 역대 LG 소속 외국인 투수 중 최다승(73승)의 주인공인 케이시 켈리는 지난 7월 방출됐다. 2019년부터 매년 두자릿수 승수를 거두다 올해는 반환점을 돌고 난 시점에서도 5승8패에 그쳤기 때문이다. LG는 2024시즌 13승(6패·평균자책점 4.19)을 올린 디트릭 엔스도 내보내고, 메이저리그 통산 20승 경력의 요니 치리노스를 100만 달러에 영입했다.
전력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가 부진에 빠지거나, 태업을 하거나, 부상 때문에 뛰지 못할 위험은 늘 존재한다. 각 구단은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1년 단위 계약을 한다. 다년 계약으로 선수에게 거액을 보장했다가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손해를 보게 된다. 대체 선수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비용도 들어간다. 외국인 선수 보유에 제한이 없고, 1군 선수 등록 인원만 정해진 일본 리그의 팀들은 종종 스타급 선수와 다년 계약을 한다. 이승엽 현 두산 감독도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4년 계약을 맺은 적이 있다.
NC는 올해 총액 100만 달러를 안겼던 맷 데이비슨이 홈런왕(46개)에 오르자 이례적으로 2년 계약을 했다. 내년에 총액 150만 달러(인센티브 30만 달러 포함), 2026년에 170만 달러(인센티브 40만 달러 포함)를 주는 조건이다. 그런데 2026년 게약은 구단이 연장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FA(자유계약선수) 스타일의 다년 계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
KT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34)는 올해와 같은 총액 150만 달러(인센티브 30만 달러 포함)에 내년 계약을 했다. 2019년 67만 달러에 입단한 쿠에바스는 2020시즌을 마치고 ‘1+1년 계약’을 맺었다. 특정 옵션을 충족하면 2년차 계약이 자동 연장되는 조건이었다. 쿠에바스는 2022년에 부상으로 2경기만 뛰고 한국을 떠났는데, 2023년 대체 선수로 컴백해 18경기에서 12승 무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덕분에 그는 2024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1+1 계약’을 했다. 올해 7승12패로 흔들렸으나 옵션 요건을 채우면서 내년에도 KT 유니폼을 입는다.
한국에 처음 오는 외국인 선수는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초반인데, 이들은 다년 계약에 별 관심이 없다. KBO 리그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인 뒤 미국으로 복귀하거나, 한국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일본 리그에 가고 싶어한다. 실제로 메릴 켈리(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에릭 페디(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상 투수) 등 한국에서의 활약을 앞세워 메이저리그로 돌아가 성공한 ‘역수출’ 사례가 늘고 있다. 이젠 빅리그에서 상당한 경력을 쌓은 선수들이 한국을 택하는 일이 흔해졌다. 수도권 A팀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활약하다 기량 하락기에 접어든 선수 중에선 가족과 지내기 좋은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려고 다년 계약을 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구단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25년 재계약이 확정된 외국인 선수 중 최고 연봉자는 KIA 투수 제임스 네일과 SSG 타자 기예르모 에레디아다. KIA 통합 우승의 주역인 네일은 총액 180만 달러(인센티브 20만 달러 포함)에 사인했다. 총액 70만 달러였던 올해와 비교하면 2배 이상의 대우다. 그는 몇몇 메이저리그 구단의 영입 제안을 받았다고 알려졌는데, KIA와 동행하기로 했다. 2024년 타격왕 에레디아(타율 0.360)는 연봉 총액이 100만 달러에서 180만 달러(인센티브 20만 달러 포함)로 올라갔다. KT와 협상 중인 멜 로하스 주니어도 최고 대우를 기대한다고 알려졌다.
KBO는 외국인 선수 풀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차원에서 아시아쿼터 도입을 검토 중이다. 국내 프로농구, 프로배구에선 이미 시행 중인 제도다. 프로축구 1부 리그는 아시아 쿼터를 없앴으나 국적에 관계없이 외국인 선수를 6명까지 등록(4명 동시 출전 가능)할 수 있다.
프로야구 구단들이 기존 외국인 선수 1명을 영입하는 데 드는 비용의 30% 정도로 일본, 대만, 호주 출신 선수를 쓰면 국내 FA 시장의 과열 경쟁을 줄이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이 같은 취지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 이르면 2026년 무렵엔 팬들에게 아시아쿼터 선수들을 선보일 수 있을 전망이다.
[성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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