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체픈게티 세계 신기록
루스 체픈게티가 13일(현지 시각) 여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미국 시카고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케냐 국기를 들고 달리며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여자 마라톤 ‘2시간10분 벽’이 깨졌다.
케냐 출신 루스 체픈게티(30)가 13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9분56초 만에 결승선을 통과해 세계 기록을 새로 쓰며 우승했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티지스트 아세파(28·에티오피아)가 작성한 2시간11분53초였는데, 이를 2분 가까이 앞당겼다. 여자 마라톤 ‘2시간10분’은 남자 마라톤 ‘2시간’의 벽과 비교되는 꿈의 기록으로 여겨져 왔다.
체픈게티는 이날 첫 5km를 15분 만에 거침없이 내달렸고, 하프 지점을 1시간4분16초 만에 통과했다. 여자부 2위 수투메 케베데(30·에티오피아·2시간17분32초)를 7분 이상 앞서는 압도적 기록으로 골인했다. 이날 남자부 우승자 존 코리르(28·케냐)의 기록은 2시간2분44초였다. 이번 대회 남자부에서 여자부 우승자 체픈게티보다 더 빨리 달린 선수는 9명뿐이었다.
2017년 마라톤에 데뷔해 2019년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한 체픈게티는 시카고 마라톤에서는 2021·2022년에 이어 올해 3번째로 우승했다. 지난해엔 준우승했다. 2022년 이 대회 우승 기록 2시간14분18초는 이번 대회 전까지 체픈게티 자신의 최고 기록이자 역대 여자 선수 중 넷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이날 4분 이상 단축했다.
이날 출발할 때 기온은 10도 정도였고 구름 낀 흐린 날씨에 바람이 적었다. 체픈게티는 “세계 기록은 꿈이었고 이제 실현됐다. 날씨가 완벽했고 나는 준비를 잘했다”며 “이 기록을 켈빈 킵툼에게 바친다”고 했다. 케냐 출신 킵툼은 작년 이 대회에서 2시간35초로 종전 기록을 34초 앞당기며 남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서브2(2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의 거대한 벽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지난 2월 교통사고로 25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여자 마라톤 세계 기록은 최근 5년 사이 급격히 단축됐다. 2003년 폴라 래드클리프(51·영국)가 세운 2시간15분25초 기록이 16년 동안 유지되다가 2019년 브리지드 코스게이(30·케냐)가 시카고 마라톤에서 2시간14분4초로 경신했다. 이후 지난해 티지스트 아세파가 2시간 14·13·12분 벽을 한 번에 깼다.
그래픽=김성규 |
최근 마라톤 기록이 극적으로 향상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수퍼 슈즈’다. 완충 기능과 복원력이 뛰어난 초경량 중창 소재와 뻣뻣한 탄소섬유를 활용해 스프링 효과를 만들어낸 고기능성 신발이다. 지면을 박찰 때 더 많은 추진력을 얻게 하며 에너지 손실을 줄여 기록 단축을 이끈다. 리듬과 균형, 보폭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작년 티지스트 아세파는 여자 세계 기록을 세울 때 아디다스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1을 신었다. 이날 체픈게티는 나이키 알파플라이3을 신고 아세파 기록을 깼다. 지난해 킵툼이 남자 세계 신기록을 작성할 때도 나이키 알파플라이3을 신었다. 지난 1월 시중에 발매된 알파플라이3은 추진력과 안정감을 더하기 위해 신발 전체 길이에 폭을 넓힌 탄소섬유판을 중(中)창에 삽입했고, 가벼우면서도 두꺼운 중창 소재를 썼다. 발 앞부분에는 내디딜 때 충격을 완화하고 다음 걸음을 이어가도록 돕는 에어 줌을 달았다. 이날 체픈게티의 우승으로 수퍼 슈즈 전쟁에서 나이키가 아디다스를 앞질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퍼 슈즈는 2016년 처음 등장했다. 엘리우드 킵초게(40·케냐)가 나이키 베이퍼플라이 시제품을 신고 그해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에너지 반환율을 높여주는 자체 개발 폼, 뛸 때 힘을 덜 들이도록 돕는 탄소섬유판이 장착됐다. 남자 마라톤 세계 기록은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1년간 118초 단축됐는데, 수퍼 슈즈 등장 이후로는 8년간 142초를 단축했다. 2020년 세계육상연맹이 밑창 두께를 40㎜ 이하로 제한하고 탄소섬유판은 한 장만 허용하는 등 규정을 만들었으나, 장비 기술과 성능 발전에 의존하는 ‘신발 도핑’이란 논란도 여전하다. 한동안 세계 신기록을 쏟아내다 결국 2009년 금지된 전신 수영복을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체픈게티가 13일 자신이 세운 세계 신기록이 표시된 시간 기록계를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최수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