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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둘이라서 힘났다" 배 속 아기와 함께한 올림피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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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파리올림픽 ◆

매일경제

임신 6개월 반의 몸으로 출전한 아제르바이잔의 얄라굴 라마자노바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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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배 속의 아기와 함께 2024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올림피언들이 있다.

임신한 상태로 올림픽 무대에 오른 '예비 엄마'들의 활약에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슈퍼맘'들의 도전도 지속되고 있다.

양궁에서 등장한 예비 엄마 궁사의 사연이 대표적이다. 아제르바이잔 출신인 얄라굴 라마자노바(34)는 임신 6개월 반의 몸으로 70m 떨어진 작은 표적지에 화살을 쐈다.

그는 양궁 여자 개인전 32강에서 중국의 안치쉬안(24)을 상대했는데 초접전 끝에 연장 슛오프까지 치러야 했다. 슛오프에서 활시위를 과녁에 정조준하던 그 순간 그에게 배 속의 아기가 신호를 보냈다.

라마자노바는 즉시 활시위를 당겼고 화살은 10점에 명중했다. 결국 라마자노바는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라마자노바는 인터뷰에서 "배 속의 아기가 발로 차면서 지금 쏘라고 신호를 준 것 같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의 도전은 함께 올림픽에 출전한 동료 선수들에게도 울림이 되고 있다. 양궁 미국 대표로 출전한 캐시 커폴드(20)는 라마자노바의 사례를 가리켜 "매우 멋진 일"이라며 "나중에 아이에게 '엄마가 올림픽에 나갔을 때 너도 함께였단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면서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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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7개월째 대회에 나선 하페즈. 하페즈 SNS


이집트의 펜싱 선수인 나다 하페즈(26)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대회 펜싱 사브르 종목에 도전장을 내민 그는 지난달 29일(한국시간) 펼쳐진 개인전 16강에서 한국의 전하영에게 패해 탈락했다. 경기 후 하페즈는 자신이 임신 7개월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경기장에 두 명의 선수가 올라간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3명이었다"며 "나와 상대 선수 그리고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내 작은 아기가 함께했다"고 적었다.

사실 하페즈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와 2021년 도쿄 무대에서도 얼굴을 비춘 베테랑 선수다. 앞선 두 번의 올림픽에서는 홀로 상대 선수와 겨뤘다. 펜싱은 간발의 차로 상대의 허점을 찔러야 하는 만큼 순발력이 중요하다. 임신 상태로 경기에 임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하페즈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배 속의 소중한 생명과 함께 싸워 외롭지 않았고 세 번째 파리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16강)을 이뤄냈다. 하페즈는 "(임신 이후) 삶과 운동의 균형을 맞춰야 했고 많은 상황과 싸워야 했다"면서도 "올림픽은 그런 상황을 겪고도 출전할 가치가 있는 무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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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현이 딸 정서아 양을 안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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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올림픽 무대에 도전한 슈퍼맘들도 있다. 사격 공기소총 10m 혼성에 출전한 금지현(24)은 지난해 5월 딸을 낳았다. 금지현은 "출산으로 선수 경력이 단절되지 않는다고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2022년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경기장 내 워밍업 룸에서 딸에게 모유를 먹여 화제가 된 프랑스의 유도 여왕 클라리스 아그베그네누(32)도 이번 대회 유도 여자 63㎏급에 출전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과거 임신한 상태로 금메달을 목에 건 신화적인 인물도 있었다. 바로 2012년 런던올림픽 비치발리볼 종목에 출전한 케리 월시 제닝스(45·미국)가 대표적이다. 제닝스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올림픽에 나와 3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사실 그는 2012년 대회 당시 임신 5주째라는 사실을 모르고 출전해 우승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제닝스는 올림픽이 끝난 뒤 한 미국 TV 방송에 나와 "두려움 없이 몸을 던지고 조국을 위해 금메달을 노릴 때 임신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2012년에 임신 중이던 아이는 그의 세 번째 출산이었다.

보통 임신한 여성이 0.01~0.1초에 승부가 결정되는 올림픽 종목에 나서는 건 쉽지 않다. 평소 몸 상태보다 움직임이 더딜 수밖에 없고 심리적인 이유로 100% 컨디션을 발휘하기 힘들 수도 있다. 캐서린 애커먼 미국올림픽위원회 여성건강위원장은 "여성이 임신 중에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있다"며 "펜싱·양궁·사격 등에서는 임신 중인 여성이 충분히 경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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