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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 (수)

“우리도 팀 코리아”… 메달 위해 구슬땀 흘리는 ‘그림자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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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올림픽 숨은 영웅 ‘파트너 선수’ PARiS 2024 D-6

몸풀기부터 대련까지 전훈련 소화… 유도-레슬링 등 출전 희비 갈려도

올림픽 현지 훈련 캠프까지 완주… 혼자 암벽 오르는 스포츠클라이밍

효율적 전략 위해 ‘머리’ 빌려줘… “국가대표 선수-파트너 함께 성장”

동아일보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유도 대표팀 파트너 선수들은 15일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깜짝 파티를 열었다. 파트너 선수들은 18일 대표 선수들과 파리로 출국해 현지 사전 캠프에서도 함께 땀을 흘린다. 진천=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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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D-6 국대 ‘파트너 선수’의 세계

파리 올림픽에 한국은 144명의 국가대표 출전 선수 외에 이들의 훈련을 돕는 ‘파트너 선수’ 63명도 동행한다. 63명은 한국 선수단 현지 훈련캠프까지 날아가 태극전사들의 막판 담금질을 위해 함께 땀 흘린다.

26일(현지 시간) 막을 올리는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국가대표 선수는 총 144명이다. 그런데 대한체육회에서 발권한 선수용 파리행 비행기 표는 총 207장이다. 추가로 끊은 63장은 ‘파트너 선수’ 몫이다.


파트너 선수는 이름 그대로 국가대표 선수의 훈련을 돕는 파트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선수나 차세대 기대주가 보통 파트너 선수를 맡는다. 국가대표 선수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기에 이들을 ‘그림자 국가대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번 올림픽 파트너 선수는 국가대표 선수와 파리행 비행기에 함께 오르지만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올림픽 경기장에는 발을 디딜 수 없다. 이번 대회 파트너 선수는 대한체육회가 파리 인근에 마련한 현지 훈련 캠프 일정까지 동행한 뒤 국가대표 선수가 올림픽 경기장에 들어설 때 귀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 배보다 더 큰 배꼽, 파트너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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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유도 78kg 초과급 메달에 도전하는 김하윤(왼쪽)이 남자 파트너 백성민 선수를 상대로 메치기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유도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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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향하는 파트너 선수 63명 가운데는 유도 담당이 24명으로 가장 많다. 국가대표 선수(11명)보다 더 많다. 유도는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던지고 눌러 제압해야 하는 종목 성격상 선수 혼자 훈련할 수가 없다.

유도 종목 파트너 선수는 남자 19명, 여자 5명으로 남자가 네 배 가까이 되는 것도 특징이다. 여자 국가대표 선수 6명도 남자 파트너 선수를 최소 1명씩은 두고 있기에 생긴 일이다. 김미정 여자 유도 대표팀 감독은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와 실력이 비슷한 (여자) 선수가 국내에는 많지 않다. 특히 최중량급 선수는 더 센 힘으로 상대해 줄 선수를 찾기가 정말 어렵다”면서 “그래서 외국 선수와 맞붙는 상황을 가정해 더 큰 힘으로 받아줄 수 있는 남자 선수를 상대로 훈련한다”고 설명했다.

파트너 선수라고 훈련 때 기술만 잘 받아주면 되는 건 아니다. 이들도 국가대표 선수들과 똑같은 훈련 일정을 소화한다. 김 감독은 “남자 파트너 선수는 대부분 대학 1학년이다. 어린 나이에 진천선수촌에서 훈련하는 게 흔치 않은 경험이라 국가대표 못지않게 훈련을 열심히 한다. 군기도 바짝 들어 있다”며 웃었다.

여자 유도 대표팀 주장으로 78kg급 메달에 도전하는 윤현지는 “(파트너 선수들이) 본인 훈련도 힘들텐데 나를 위해 주고 언제든 기술 연습을 받아줘 고맙다”고 했다. 파트너 선수도 국가대표 선수와 똑같이 하루에 6만 원 정도 되는 훈련 수당을 받는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와 별개로 파트너 선수들에게 최신형 휴대전화나 고급 영양제 등을 선물하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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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는 파트너 선수들이 여자 유도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기도 했다. 출국을 사흘 앞둔 15일 파트너 선수들은 “같이 사진 찍자” “산책하자”며 국가대표 선수들을 불렀다. 이들은 국가대표 선수 6명의 얼굴이 담긴 케이크, 응원 메시지를 담은 ‘롤링페이퍼’와 선물을 준비했다.

여자 78kg 초과급 국가대표 김하윤의 남자 파트너 선수 백성민은 “함께 훈련하는 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 올림픽이 끝나면 각자 흩어져야 하니 파트너 선수들끼리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기로 뜻을 모았다. 선수 누나들께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롤링페이퍼에 적었고 파트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넣은 무드등으로 서로 떨어져 있어도 추억할 수 있는 의미를 담았다”고 전했다.

● 너는 나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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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유도 100kg 초과급 김민종(오른쪽)은 3년 전 도쿄 올림픽에 이어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중고교는 물론이고 대학까지 모두 1년 후배인 서동규(왼쪽)가 파트너로 나선다. 진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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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유도 100kg 초과급 국가대표 김민종의 훈련 파트너는 서울 보성중고와 용인대 1년 후배인 서동규다. 서동규는 3년 전 도쿄 올림픽 때도 김민종의 파트너 선수로 호흡을 맞췄다.

135kg인 김민종보다 25kg가 덜 나가는 서동규는 “모든 훈련마다 최대한의 힘을 써 지쳐 쓰러질 때까지 한다. 실전 훈련 때 여러 잡기를 시도해 형이 더 다양한 잡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극한까지 스스로를 다그치는 민종이 형을 보며 마인드적인 부분을 많이 배웠다”며 “민종이 형 훈련량은 다른 운동 선수들이 따라 하기 엄두가 안 날 정도다. 하늘이 감동해 금메달을 주는 게 아니라 하늘도 이 훈련량을 보고 경이로워서 금메달 줄 것 같다”고 했다. 서동규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김민종의 뒷모습이다.

후배를 돕는 선배도 있다. 남자 태권도 58kg 국가대표 박태준은 경희대 1년 선배 박지훈과 지난해부터 1년 넘게 호흡을 맞추고 있다. 박태준은 이전까지 6전 6패를 당했던 장준을 이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처음 꺾고 파리행 티켓을 땄다. 박지훈은 박태준과 선발전을 함께 준비하면서 장준처럼 왼발을 앞에 두고 박태준과 겨뤘다.

박지훈은 “그전까지는 저도 태준이가 (장준에게는) 안 된다고 느꼈다. 그런데 계속 훈련하다 보니 태준이가 발 힘도 세지고 스피드도 늘어서 ‘이번에는 될 것 같다’고 말했다”며 “이제는 올림픽에서 만날 선수들로 빙의하고 있다. 태준이가 ‘힘 센 스타일로 해줘라’ ‘반칙 많이 하는 선수처럼 해줘라’ 이렇게 주문하면 최대한 맞춰준다. 그래도 키는 더 커질 수 없으니 키 큰 선수 상대 훈련은 다른 파트너가 해준다”며 웃었다.

박태준과 훈련하면서 박지훈도 발기술이 늘었다. 박지훈은 “태준이가 변칙 발차기가 좋아 노하우를 좀 배웠다. 그걸 다른 선수들에게 써보면 선수들이 ‘와, 이런 발차기가 다 있냐’며 넋이 나간다. 또 태준이가 실전 경험이 많아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시간 관리 꿀팁도 많이 알려줬다”고 했다.

파리는 많은 이들에게 ‘로망’인 도시다. 이번이 첫 파리 방문인 박지훈은 사전 훈련 캠프에만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면 아쉬움이 남지 않겠냐’는 질문에 박지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태준이가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 것 같다.”

● 오늘은 파트너, 내일의 올림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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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와 겨루지 않는 종목도 파트너 선수가 있다. 클라이밍 볼더링-리드에서 한국 최초 메달에 도전하는 서채현(왼쪽)과 마지막 훈련을 함께 하고 있는 볼더링 국가대표 정예진. 군산=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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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선수가 ‘몸’만 빌려주는 건 아니다. 본인이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이기도 한 정예진은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서채현의 파트너 선수로 진천선수촌에 입촌해 ‘머리’를 빌려주고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은 △미리 정해둔 홀드(손과 발로 잡거나 디딜 수 있는 부분)만 활용해 가장 적은 횟수에 4, 5m 벽을 오르는 선수가 우승하는 볼더링 △높이 15m 암벽에 매달려 6분 동안 더 높이 오르는 사람이 이기는 리드 △15m 암벽 정상까지 가장 빨리 오르는 사람이 이기는 스피드 등 세 종목으로 나뉜다.

올림픽 때는 볼더링-리드가 한 종목으로 묶인다. 볼더링과 리드 모두 선수 혼자 정상까지 등반하면 되는 종목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등반을 마치고 나면 파트너 선수와 함께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떠냐’며 같은 루트라도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 동작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국가대표 선수와 파트너 선수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올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정예진은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언니, 오빠들은 어려운 문제가 나와도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시도한다. 새로운 동작도 정말 많이 배웠다. 앞으로도 언니 오빠들의 끈기를 많이 보고 배워서 저도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때는 꼭 출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대회에도 파트너 선수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된 이들도 있다.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97kg급 국가대표 김승준과 130kg급 이승찬은 3년 전 도쿄 올림픽 때 파트너 선수였다. 안한봉 레슬링 국가대표팀 감독은 “레슬링은 체급당 한 명만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자기 체급 1등이 아니면 무조건 파트너 선수 시절을 거치게 돼 있다”고 말했다.

레슬링에는 파트너 선수와 국가대표 선수가 역할을 맞바꾼 경우도 있다. 심권호는 파트너 선수 임대원과 훈련하며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연달아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임대원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로 뽑혔을 때는 당시 대표팀 트레이너였던 심권호가 파트너 선수를 맡았다.

역시 체급당 한 명만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역도는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 파트너 선수로 적합한지 아닌지까지 따진다. 손영희는 국제역도연맹(IWF) 여자 87kg 초과급 랭킹 3위인데 하필 2위가 한국 선수 박혜정이어서 파리행 티켓을 내줘야 했다. 사실상 올림픽 출전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 그러고도 진천선수촌에 남아 출국 전까지 박혜정의 훈련을 돕고 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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