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중징계를 검토해서일까.
절친 손흥민을 대상으로 끔찍한 인종차별을 해놓고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아 지탄을 받았던 토트넘 홋스퍼 소속 우루과이 국가대표 미드필더 로드리고 벤탄쿠르가 자신의 SNS를 통해 2차 사과문을 내놨다. 일주일 전 1차 사과문처럼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기능도 아니고, 보다 장문의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았으나 사람들은 그가 FA의 징계 검토가 나오면서 어쩔 수 없이 사과문 내놓은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는 22일(한국시간) 새벽 SNS를 통해 "난 모든 팬 여러분, 그리고 날 '팔로우'하는 분들과 소통하고 싶다"며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손흥민을 언급한 뒤 그와 대화를 나눴고 우리의 깊은 우정을 알렸고, 그(손흥민)는 이 것이 불행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해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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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누군가가 내 말로 인해 불쾌함을 느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며 "다만 내가 (손흥민 아닌)다른 사람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손흥민에게만 한 얘기다.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다른 누군가를 불쾌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글에 첨부된 사진은 소속팀인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차분하게 패스 건네는 장면이었다. 사과문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동시에 게재됐다.
자신이 조국인 우루과이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충격적인 인종차별 발언한 것에 대한 두 번째 사과문인 셈이다.
앞서 벤탄쿠르는 지난 15일 SNS를 통해 1차 사과문을 올린 적이 있다. 그는 "소니!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할게. 정말 나쁜 농담이었어!"라며 "내가 널 정말 좋아하고 너를 존중하지 않는다거나 너나 다른 사람들을 상처 주지 않으려 한다는 걸 알 거야. 사랑해 쏘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1차 사과문은 곧장 무성의 의혹에 휩싸였다.
글을 게시하고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SNS의 '스토리' 기능을 이용한 데다 손흥민의 별명인 쏘니(Sonny) 대신 일본 전자회사 이름인 소니(Soy)란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결국 16일 오전이 되면서 그의 사과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벤탄쿠르는 이후 추가 사과보다는 21일 미국에서 개막하는 코파 아메리카 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우루과이 대표 선수들과 훈련 캠프인 미국 마이애미에 입성,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이젠 손흥민 발언에 대한 문제가 해결됐다는 듯 다시 SNS에도 몰두하고 있다.
이는 벤탄쿠르의 큰 오산이었다. 글로벌 스포츠 미디어 '디 애슬레틱'은 17일 "벤탄쿠르가 방송 도중 한국 국가대표인 손흥민과 그의 사촌들이 모두 똑같이 생겼다고 말한 뒤 손흥민에게 사과했다"며 "지난 11월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손흥민을 향해 인종차별적인 제스처를 취한 한 팬이 3년간 축구 경기 관람 금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는 말로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알리고는 벤탄쿠르 발언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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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피해자인 손흥민은 20일 자신의 SNS를 통해 "롤로(Lolo, 벤탄쿠르 애칭)와 대화를 했으며 그가 실수를 했고 그도 이를 안다. 그는 내게 사과했다"며 "벤탄쿠르가 뭔가를 공격적으로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우린 형제다. 그리고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자신은 벤탄쿠르를 용서했고 이 문제가 일단락되길 바란다는 뉘앙스도 전했다.
손흥민이 SNS 글을 올리자 토트넘도 기다렸다는 듯 구단 공식 SNS 계정을 통해 "벤탄쿠르의 인터뷰 영상과 이후 선수의 공개 사과 이후, 클럽은 이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보장하기 위해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는 다양성, 평등, 포용이라는 목표에 따라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한 추가 교육이 포함된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우리는 주장 쏘니가 이번 사건에 대해 선을 긋고 팀이 다가오는 새 시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지지한다"라며 "우리는 다양한 글로벌 팬층과 선수단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어떤 종류의 차별도 우리 클럽, 우리 경기, 더 넓은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차별에 맞서 새 시즌 준비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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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손흥민의 용서와 토트넘의 재발 방지 대첵에도 불구하고 축구 관련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에 이어 FA가 징계 가능성까지 내비치면서 벤탄쿠르 인종차별 파문은 판이 제대로 커졌다.
스포츠계 차별을 반대하는 국제단체인 '킥 잇 아웃(Kick It Out)'은 20일 SNS를 통해 "킥 잇 아웃은 벤탄쿠르가 토트넘 팀 동료인 손흥민에 대해 언급한 내용에 대한 제보를 상당히 많이 받았다. 이 제보들은 이미 토트넘 구단과 관련 당국에 보내진 상태다"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벤탄쿠르가 자신의 잘못을 인지했다는 점을 시인했으나, 이것은 동아시아와 더 넓은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다가오는 시즌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면서 "보거나 들을 경우 제보해달라"라고 했다. 벤탄쿠르의 또다른 인종차별 발언 여부도 들여다보겠다는 얘기다.
영국 유력지 '더 타임스'에 따르면 FA는 손흥민의 용서와 관계 없이 최대 3경기 출전 정지 중징계를 고려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벤탄쿠르의 2차 사과문은 2차 사과문보다는 진지하고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기 위한 진정성도 어느 정도 담겨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간 진지한 사과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FA 징계 검토 보도가 나오자마자 올렸다는 점에서 점수가 크게 깎였다. '억지춘향'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벤탄쿠르의 인종차별 발언은 지난 15일 드러났다.
벤탄쿠르는 우루과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한 뒤 자녀와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토트넘 간판 선수는 당연히 손흥민이다. 벤탄쿠르는 진행자로부터 손흥민의 셔츠를 받을 수 있겠냐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자 벤탄쿠르가 내뱉은 본능적인 한 마디가 지금의 긴 파문을 몰고 왔다. 벤탄쿠르가 "쏘니 거? 쏘니 사촌 거는 어때? 어차피 걔네 다 똑같이 생겼잖아?"라고 받아친 것이다. 남미 사람들이 아시아 사람들을 크게 구분하지 못한다는 저질 농담이었고, 당연히 인종차별적 발언이었다. 벤탄쿠르 입장에선 크게 개의치 않고 한 발언이었을 테지만 한 번만 생각해보면 엄청난 실수라는 것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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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손흥민 SNS, 방송화면, 벤탄쿠르 SNS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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