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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졸업’ 학원강사와 학교교사의 옥신각신에서 느껴지는 점[서병기 연예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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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드넓은 지식의 망망대해에 발을 들이기엔 댁의 자녀는 너무 늦었습니다. 창의적인 주입식 교육과 훈련의 힘을 믿게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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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졸업’ 1회에서 학원강사 서혜진(정려원)이 이 말을 할 때, 나는 갑자기 '전현무'가 생각났다. 전현무는 방송 틈틈이 자신이 "주입식 교육의 최대 희생자"임을 강조하곤 했다. 두 말은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정려원의 이 말은 학원강사가 학생에게, 아니 학생 엄마를 학원으로 유혹할 수 있는 가장 달콤한 마케팅 무기일 것이다.

이렇게 안판석 감독의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이 시작됐다. ‘멜로거장’ 답게 감성의 깊이도 달랐다. 다양한 군상을 대사에 응축시켜 풀어낸 박경화 작가의 필력 역시 탁월하다.

11일 첫방송된 tvN ‘졸업’은 대치동 학원가라는 특수한 공간속에서 이뤄지는 정려원과 위하준의 로맨스물이지만, 첫 회부터 학원강사라는 일에 대한 핵심을 찔렀다.

이날 방송은 국어를 가르치는 14년 차 베테랑 강사 서혜진(정려원)의 일상으로 시작됐다. 뛰어난 강의력과 특유의 빈틈없는 단정함으로 대치동에서 스타 강사로 통하는 그는 소속 학원인 ‘대치 체이스’의 간판이기도 했다. 버스 정류소에 걸린 그의 광고판에는 "경쟁을 즐겨라. 승리를 거둬라"라는 카피가 쓰여있었다.

매일을 정신없이 학생들에게만 몰두하며 살아가던 그의 삶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찬영고 중간고사 국어 문제에서 성하율 등 학생의 해석과 교사가 정한 정답이 엇갈린 상황이 벌어진 것. 이의 제기를 하라고 권한 서혜진의 말대로 학생들은 찬영고 국어 교사인 표상섭(김송일 분)에게 찾아갔지만 표상섭은 학생들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부모들의 걱정에 서혜진은 직접 학교로 표상섭을 찾아갔다. 서혜진이 학부모가 아닌 학원 강사임을 알게 된 표상섭과 재시험을 요청하는 서혜진 사이에는 갈등이 일기도 했다. 장소가 교사들이 모여있는 교무실이라 소란을 피운 듯 큰 소리도 났고 교사는 서혜진 강사의 어깨를 잡는 등 과한 행동도 했다.

해당 문제는 신경림 시인의 '농무'(農舞)라는 시에서 "가난한 농부가 소를 파는데, 그때의 심정을 신명이 난다고 표현했는데, 이를 두고 선생님은 논리의 모순이 있어 역설법이 정답이라고 했고, 몇몇 학생은 반어법이라고 했는데 오답으로 처리됐는 것.

이 문제의 정답에 대한 학원 강사와 담당 교사의 설전은 해당 문제에만 그치지 않았다. 공교육의 대표와 사교육 대표가 싸우는 것 같았다. 권위를 앞세운 교사는 서혜진 강사에게 "애들 시켜 점수 앵벌이나 하고, 등급을 교란하는 짓 부끄럽지 않아요"라고 했다.

이에 서혜진 강사는 표 교사에게 "문제가 낡았다, 의인과 활유, 역설과 반어 같은 걸 개념적으로 구분짓는데 목매는 문제는 수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낡았으니까. 그런데도 학생부 때문에 선생님들이 세게 이의 제기를 못 한다는 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냐. 재시험 요청드리겠다"고 말하고 떠났다.

이 과정에서 서혜진은 "애들 앞에서 앵벌이 하는 제가 나쁩니까? 인질로 잡혀있는 학생부 앞세워 교권을 참칭하는 게 나쁩니까?"라고 맞섰다.

표 교사는 "공교육을 감히~"라고 속으로 화를 내고는 결국 서혜진을 붙잡고 "기생충 같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날 서혜진은 뜻밖의 상황과 마주했다. 표상섭으로부터 재시험을 치를 것이란 연락을 받은 것. 표 교사는 서 강사에게 "직전에 학군지가 아닌 동네 일반고에 근무했는데... 오류를 인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고 사과한다. 여기서도 현실이 아닌데 더 현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나의 에피소드인 이 정도만 봐도 대치동에서 연애하는 로맨스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치동을 메우고 있는 다양한 입장의 학생과 학부모들부터 각기 다른 신념의 충돌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대치동 라이프는 정치판 못지 않게 복잡하고도 치열했다.

'졸업'의 하이퍼 리얼리즘은 캐스팅에도 존재한다. 국어선생 표상섭 역할은 배우가 맡고 있는데, 실제 교사보다 더 교사 같이 생겼다.

또한 드라마이기 때문에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국어교사와 학원강사가 옥신각신할 때 창문으로 이를 엿보던 학생들중 하나가 "대박. 미쳤다. 찢었다. 야, 근데 참칭이 뭐야?"라고 묻자 또 다른 학생이 "몰라. 생선 같은 건가"라고 말한다.

학교에 찾아간 날의 녹록지 않던 하루의 끝, 서혜진은 모두가 떠난 학원 로비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대치 체이스의 장학생 명단을 보며 위안을 가지던 그때, ‘1호 장학생’ 장본인이 나타났다. 서혜진의 노력으로 8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라가는 기적을 선보이며 모두를 놀라게 했고,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이준호(위하준)였다. 서혜진은 자신이 만든 ‘기적’을 보자 낮에 있던 일은 잠시 잊은 채 들뜬 기분으로 그와 회포를 풀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또 한번 서혜진을 놀라게 한다. 대치 체이스 신임 강사 필기시험이 진행 중인 시험장에 앉아 있는 이준호를 봤기 때문. 깜짝 놀란 서혜진은 이준호를 따로 불러냈다. 이준호는 퍼붓는 서혜진의 질문에 “회사 십 년 치보다 수십 배 정도 더 벌어야겠어서”라는 지원 동기부터 시작해, 가볍고 명쾌한 답을 이어갔다.

그럴수록 더욱 답답해진 서혜진은 연애도 못 한다며 학원 강사의 단점을 줄줄이 늘어놓았지만, 이준호는 “알아서 할게요”라며 웃어넘겼다. 그러던 이준호는 문득 “선생님이라고 불러보세요. 꽤 기분 좋을 것 같은데”라며 발칙하기까지 한 농담을 던졌다. 당황과 황당 사이, 그 어디쯤의 감정에 휩싸인 서혜진과 그 어떤 것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이준호. 서로를 마주한 두 사람의 엔딩은 사제(師弟)를 넘어 경로를 이탈하기 시작한 두 사제의 달라진 관계를 보여주며 설렘 지수를 높였다. 경로를 이탈할수록 더 재미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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