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여자부 한국도로공사의 신인 이예은이 2일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두 팔을 든 채 화이팅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날 그는 두 개의 서브에이스를 터뜨리며 한국도로공사에 이번 챔피언 결정전 첫 승을 안겼다. /박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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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의 2004년생 ‘수퍼 루키(super rookie)’ 이예은(19)은 달랐다. 그는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렸다.
도로공사는 2일 흥국생명과 벌인 2022~2023시즌 V리그 챔피언 결정전(5전 3선승제) 3차전 홈경기(김천실내체육관)에서 세트스코어 3대1(22-25 25-21 25-22 25-20)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도로공사는 1세트를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다. 인천 원정 경기에서 내리 2연패했던 도로공사는 1세트를 또 지자 3연패로 시리즈를 마감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도로공사 관계자들마저 “(1세트를 보고는) 오늘 질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
특히 도로공사는 2세트에서 한때 17-13으로 앞섰다가 순식간에 20-20으로 따라잡히며 주도권을 넘기는 듯했다. 이때 등장해 분위기를 반전시킨 선수가 ‘무서운 신인’ 이예은이다.
이예은은 20-20에서 캐서린 벨(30·미국·등록명 캣벨)을 대신해 원포인트 서버로 들어가 곧바로 서브에이스를 꽂아 넣었다. 속도가 빠른 서브는 아니었지만, 이예은은 건드리기 애매한 서브를 넣었고, 흥국생명 선수들은 서브가 라인 밖으로 나갈 줄 알고 그대로 지켜봤다. 그러나 공은 엔드라인을 살짝 스쳤고, 흥국생명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기세를 잡은 도로공사는 내리 4연속 득점하며 25-21로 2세트를 잡으며 반격을 시작했다.
3세트에도 이예은은 무서울 게 없었다.
20-21에서 박정아(30) 대신 투입된 그는 22-21로 앞선 상황에서 또 다시 서브에이스 1개를 넣으며 세트를 가져오는데 기여했다. 정규시즌 내내 ‘0점’ 무득점에 그쳤던 이예은이 ‘커리어 하이(career high)’인 2점을 터뜨리는 순간이었다.
프로배구 여자부 한국도로공사의 박정아(왼쪽부터), 배유나, 이예은이 챔피언 결정전 3차전을 마치고 2일 김천실내체육관에서 공동 인터뷰를 갖는 모습. /박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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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마치고 수훈 선수로 박정아, 배유나(34)와 함께 인터뷰실에 들어온 이예은은 긴장하기는커녕 즐거운 경험을 했다며 답변 내내 배시시 웃곤 했다. 그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서브에이스를 넣은 기분에 대해 “경기 도중이라서 솔직히 아무 생각이 안 났는데, 경기가 끝나고 언니들이 잘했다고 해서 이때서야 실감이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심장 면모를 드러냈다. 이예은은 “(출전하는 순간에) 긴장은 안 됐다. 고등학교 때랑 장소와 환경만 다를 뿐이지, 바뀐 게 없다고 생각하니 떨리지 않았다”며 “언니들에게 중요한 경기니 피해를 주지 말고 열심히 하자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언니들인 박정아와 배유나는 “너한테도 중요한 경기 아니니”라며 익살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예은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박정아는 “(예은이가) 큰 경기에서 긴장하는 모습도 없고, 준비가 안 돼 있다가 들어와도 자기 할 몫을 해내 고맙다”고 덧붙였다.
배유나 역시 “처음 왔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감독님과 저희가 요구하는 수비 포메이션 이해를 잘 하는 스타일이다. 작전 수행을 잘 할 수 있는 친구라 감독님이 믿고 신입생이지만 이런 큰 경기에 넣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프로배구 여자부 한국도로공사의 신인 이예은이 2일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의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 서브를 때리는 모습. /한국배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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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여고를 졸업한 이예은은 2022-2023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3순위로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었다. 아웃사이드 히터 치곤 상대적으로 작은 신장(175cm)이 약점으로 지적됐지만, 프로에 와선 탄탄한 수비력과 날카로운 서브를 주무기로 삼아 ‘비밀 병기’로 활약하고 있다.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도 이예은이 이날 경기에서 큰 힘이 됐다는 점을 인정하며 “(20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저는 큰 경기에 강한 ‘똘끼’ 있는 선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유형의 선수를 오랜만에 봤다”면서 “아직 신장이 작아서 공격 쪽으로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수비와 서브 능력이 괜찮은 선수다. 앞으로 지켜봐달라”고 당부하며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팀에서 ‘금쪽이’라 불리는 이예은도 본인의 똘끼를 알고 있었다. 인천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거침없이 “(5차전이 열리는) 인천으로 가자”라고 우렁차게 외친 그는 인터뷰실에서 박정아와 배유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고 했다.
“옆에 계신 언니들은 (제가) 초중고 때부터 TV에서 응원하고 ‘멋있다’ ‘존경한다’고 한 선배들인데, 같이 여기 앉아 있어서 꿈만 같아요.”
두 팀은 4일 같은 장소에서 4차전을 치른다. 이예은은 이제 코트에서 언니들과 더 높은 꿈을 꾸러 간다.
/김천=박강현 기자
[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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